내 젊음을 묻어둔 자리에서 2
우리는 혼자 살아왔다고 생각하지만 한 사람의 인생 안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나라는 사람 안에는 내가 만났던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나를 사랑했던 사람, 나를 기다려 주었던 사람, 나 때문에 마음 아팠던 사람, 내가 충분히 사랑하지 못했던 사람, 미처 고맙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떠나보낸 사람까지 모두 내 안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심원에 다시 온다는 것은 어쩌면 그 모든 사람을 다시 만나는 일입니다. 그들은 이제 대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침묵으로 묻습니다.
“수사님, 잘 살아왔습니까?” 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합니다. 그저 오래된 길 위에 잠시 서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말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얼마나 많이 사랑해 주었는지. 당신들의 상처를 바라보며 내가 하느님을 배웠고, 당신들의 외로움 곁에 앉아 있으면서 형제라는 말을 배웠으며, 당신들의 죽음을 보내면서 삶이 선물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당신들은 나에게 가난을 가르쳐 주었고 기다림을 가르쳐 주었고 사람의 존엄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은 한 사람의 곁을 떠나지 않는 것임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제 나도 많이 늙었습니다. 1986년의 젊은 수사는 어디로 갔을까요. 그때처럼 빨리 걸을 수도 없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던 힘도 없습니다. 세월은 많은 것을 가져갔고, 많은 사람을 데려갔으며, 내게서도 젊음을 가져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세월이 가져가지 못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리움입니다. 사랑했던 것들은 그리움이 되어 남습니다. 그래서 그리움은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워할 사람이 있다는 것은 내 삶에 사랑이 있었다는 뜻이고, 눈물이 난다는 것은 그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뜻일 것입니다.
오늘 성심원의 저녁빛을 바라보며 생각합니다. 이곳에서 보낸 열두 해는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는 시간이었다고. 내가 그들에게 젊음을 주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들은 내 젊음을 받아 하느님께 봉헌해 준 사람들이었다고. 그래서 이제야 조금 고백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성심원에서 젊음을 잃은 것이 아니라 젊음을 바쳤습니다. 그리고 그 젊음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얼굴 속에 흩어져 아직도 살아 있습니다. 이번 한 주 동안 나는 그 얼굴들을 천천히 만나고 싶습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에게는 “평안히 쉬십시오.” 하고 인사하고,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당신과 함께했던 시간이 고마웠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주님, 제가 젊었던 날 저도 모르는 사이에 당신께서는 이곳에서 저를 가르치고 계셨습니다. 제가 그들을 섬긴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을 통하여 저를 섬겨 주셨고, 제가 그들을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을 통하여 먼저 저를 사랑하셨으며, 제가 그들의 상처를 어루만진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의 상처를 통하여 제 안의 더 깊은 상처를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이제 다시 이곳에 왔습니다. 무엇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려놓기 위해 왔습니다. 무엇을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억하기 위해 왔습니다. 무엇인가를 더 가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나온 모든 것이 은총이었다고 고백하기 위해 왔습니다.
그리고 남아 있는 삶도 그렇게 살게 해주십시오. 젊은 날처럼 많은 것을 할 수 없더라도 한 사람의 곁에 머무를 수 있게 하시고, 큰일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누군가의 작은 형제가 되게 하시며, 내 이름을 남기려 애쓰기보다 당신의 사랑이 지나갈 수 있는 작고 가난한 길 하나가 되게 하소서. 언젠가 나 또한 이곳에서 먼저 떠난 수많은 형제자매들처럼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날,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느냐고 묻기보다, 얼마나 사랑했느냐는 그 한마디 앞에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번 성심원의 한 주는 과거를 추억하는 시간이 아니라 남아 있는 삶을 다시 배우는 시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젊음의 자리에서 늙어감을 배우고, 만남의 자리에서 떠남을 배우며, 수많은 죽음의 기억 속에서 영원한 생명을 다시 믿고, 상처 입은 사람들의 얼굴 속에서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다시 바라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피정이 끝나 다시 성심원을 떠나는 날에는 무엇인가를 더 많이 가지고 나가기보다 조금 더 가난해져서 떠나고 싶습니다. 붙잡았던 것을 내려놓고, 미워했던 것을 용서하고, 잊었던 사람을 기억하며, 받았던 사랑에 감사하고, 남은 날들을 더 단순하게, 더 작게, 더 형제답게 살고 싶습니다.
산청 성심원! 내 젊음이 머물렀던 곳. 수많은 만남과 이별이 있었던 곳. 울고 웃으며 사람을 배웠고 상처를 통하여 사랑을 배웠으며 죽음을 통하여 삶을 배웠던 곳. 40년 가까운 세월을 돌아나는 다시 이곳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돌아와 보니 내가 이곳을 찾아온 것이 아니라 이곳이 오래도록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래된 나무와 길과 집들 사이에서 먼저 떠난 수많은 이들의 목소리가 저녁 바람처럼 조용히 들려오는 듯합니다.
“수사님, 오랜만입니다.” 나는 그 목소리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고개를 숙입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내 삶 전체로 대답합니다. 그래요. 참 오래 걸렸습니다. 다시 여기까지 오는 데 참 오래 걸렸습니다. 그러나 이제야 알겠습니다. 당신들과 함께했던 그 열두 해가 내가 당신들에게 내어준 시간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당신들을 통하여 내게 주셨던 시간이었음을. 내가 당신들을 사랑했던 것보다 훨씬 먼저, 당신들이 나를 형제로 받아주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모든 만남과 헤어짐, 눈물과 웃음, 젊음과 늙음, 머묾과 떠남을 지나 결국 내게 남은 것은 하나뿐임을. 사랑했던 것만 남았습니다. 사랑받았던 것만 남았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 한가운데 말없이 나를 기다리고 계셨던 하느님만이 남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