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19,25-27
어제 우리는 십자가를 높이 들어 우러렀습니다.
오늘 교회는 그 십자가 ‘곁에 서 계신 분’을 바라봅니다.
복음은 짧지만 그 첫 문장이 모든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가 ‘서 있었다.’”
성모님께서는 쓰러지지도, 달아나지도 않으셨습니다.
아드님이 못 박히는 그 자리에 ‘서서’ 함께 계셨습니다.
일찍이 시메온이 예언한 그대로였습니다.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듯 아플 것입니다”(루카 2,35).
이제 그 칼이 성모님의 마음을 지나갑니다.
성 대 바실리오를 비롯한 교부들이 새겼듯,
이것은 ‘함께 겪는 고통(com-passio)’입니다.
어머니는 아드님과 ‘함께’ 못 박히셨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이심으로써,
아드님의 봉헌에 당신을 사랑으로 일치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숨을 거두시기 직전,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선물을 내어놓으십니다.
사랑하는 이는 더 주고 싶어 애달아하는 법입니다.
이미 목숨까지 다 내어 주셨으면서도,
그분은 ‘가장 소중한 어머니’마저 우리에게 주십니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십자가 위에서도 그분은 어머니를 ‘아끼지(움켜쥐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의 어머니로 내어 주셨습니다.
이렇게 성모님은 ‘교회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아낌 주간의 눈으로 보면
오늘 복음은 두 가지를 가르칩니다.
첫째, 성모님처럼 ‘고통조차 마음에 소중히 간직하라’는 것입니다.
슬픔을 함부로 원망으로 흘려버리지 않고,
사랑으로 간직할 때 그 고통은 헛되지 않습니다.
둘째, ‘사랑만은 아끼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느님도, 예수님도, 성모님도
고통 속에서까지 사랑을 조금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성모님은 지금도 우리 곁에 ‘서’ 계십니다.
우리가 저마다의 십자가 앞에 설 때,
어머니께서 그 곁에 함께 서서 위로해 주십니다.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부속가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오늘 우리는 조용히 묻습니다.
나는 고통이 밀려올 때 도망치는가, 곁에 ‘서서’ 머무는가?
나는 슬픔을 원망으로 흘려버리는가, 사랑으로 간직하는가?
나는 힘겨운 이 ‘곁에 함께 서 주는’ 위로자인가?
나는 고통 속에서도 사랑을 아끼지 않는가?
주님,
고통 앞에서 도망치지 않고 성모님과 함께 서 있게 하소서.
슬픔을 사랑으로 간직하게 하시고,
힘겨운 이 곁에 함께 서서 위로하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