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성체성사는 우리를 먼저 사랑하시는 분의 혁명적 사건입니다

 

우리가 바뀌어서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게 아닙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가 바뀔수 있는 것입니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주는 몸이며 쏟는 피이다.” 성체성사는 우리를 먼저 사랑하시는 분의 혁명적 사건입니다

 

먼저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혁명은 성체성사의 신비로 드러납니다. 우리는 흔히 생각합니다. 내가 더 착해지면, 더 거룩해지면, 더 많이 기도하면, 하느님께서 나를 더 사랑하실 것이라고. 그러나 복음은 정반대를 말합니다. 우리가 바뀌어서 하느님께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사랑받기 때문에 내가 바뀌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의 선행에 대한 보상이 아니며, 우리의 완성에 대한 칭찬도 아닙니다. 그 사랑은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아직 부족하고 미성숙했을 때, 아직 제대로 사랑할 줄도 몰랐을 때 이미 먼저 다가온 사랑입니다.

 

성체성사는 바로 그 사랑의 가장 혁명적인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을 버리고 도망갈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할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유다가 당신을 팔아넘길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도 마지막 만찬에서 예수님은 조건을 내걸지 않으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끝까지 충실히 따르면 내 몸을 내어주겠다." 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당신을 떠날 사람들에게조차 "너희를 위하여 내어주는 내 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충격입니다. 성체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이 아니라,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만드는 은총입니다.

 

성체는 완전한 사람들의 식탁이 아니라, 상처 입은 사람들이 치유받는 식탁입니다. 성체는 거룩한 사람들의 특권이 아니라, 거룩하게 되도록 초대받은 사람들의 양식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체 앞에서 자신의 공로를 자랑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놀랄 뿐입니다. "주님, 어떻게 이런 저를 사랑하십니까?" 그 놀라움이 감사가 되고, 감사가 변화가 되며, 변화가 사랑이 됩니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생명을 얻지 못한다."는 말씀은 단순히 성체를 받아 모시라는 명령이 아니라, 먼저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라는 초대입니다. 그 사랑을 먹고 마실 때 우리는 조금씩 그분을 닮아 갑니다.

 

판단하던 사람이 이해하게 되고, 미워하던 사람이 용서하게 되며, 붙들고 있던 사람이 놓아주게 되고, 높아지려 하던 사람이 낮아지게 됩니다. 이것이 성체성사의 열매입니다. 프란치스칸의 눈으로 바라보면 성체는 하느님의 끝없는 겸손입니다. 창조주께서 빵이 되시고, 전능하신 분께서 한 조각 음식이 되시며, 높으신 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시기 위해 자신을 완전히 내어주시는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성체를 모신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성체를 받아 모신다는 것은 빵이신 그분이 내 안에서 살아 움직이며 나 또한 형제들을 위하여 내어주는 빵이 되도록 허락하는 것입니다. 결국 성체성사의 가장 깊은 의미는 이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가 존재하게 되었고,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가 변화될 수 있으며,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가 사랑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체는 그 사랑의 기억이 아니라 그 사랑의 현존입니다.

 

오늘도 그분은 조용히 말씀하십니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주는 내 몸이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다." 그리고 그 사랑을 받아들인 사람은 마침내 자신도 세상을 향해 같은 말을 하게 됩니다. "이 몸은 형제들을 위하여 내어주는 몸입니다. 이 삶은 사랑을 위하여 흘려지는 삶입니다." 그때 성체는 제대 위에만 머무르지 않고, 우리의 일상과 관계 안에서 살아 있는 복음이 됩니다.

 

성체성사는 예수님의 생명을 내 안으로 모시는 신비입니다. 그분의 살을 먹고 그분의 피를 마신다는 것은 단순히 거룩한 예식을 행한다는 뜻이 아니라, 그분의 삶의 방식, 그분의 사랑, 그분의 내어줌,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내 존재 안에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세상이 주는 만족으로는 인간의 깊은 허기를 채울 수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빵을 먹고도 다시 배고프고, 물을 마시고도 다시 목마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받아 모시는 사람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성체를 모신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내 안에 들어오시는 분임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 또한 그분의 몸처럼 부서지고, 그분의 피처럼 흘러 누군가의 생명이 되도록 초대받는 것입니다. 성체성사는 받아먹는 사랑이며 머무는 사랑이며, 나누어지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 안에서 우리는 이미 영원한 생명을 맛보기 시작합니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자유나눔 게시판

자유롭게 글을 남겨주세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 성체성사는 우리를 먼저 사랑하시는 분의 혁명적 사건입니다 성체성사는 우리를 먼저 사랑하시는 분의 혁명적 사건입니다   우리가 바뀌어서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게 아닙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가 ... new 이마르첼리노M 2026.06.07 5
1868 깨끗하고 투명한 사람을 통하여 일하시는 하느님의 자비 깨끗하고 투명한 사람을 통하여 일하시는 하느님의 자비   이 글은 침묵과 기다림 안에서 발견한 복음의 핵심을 깊이 있게 담으려 했습니다. 그 중심에는 &quot;하느... 이마르첼리노M 2026.06.06 37
1867 첫째 계명과 둘째 계명은 새 계명인 사랑의 계명입니다. 첫째 계명과 둘째 계명은 새 계명인 사랑의 계명입니다.   ​쉐마 이스라엘,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29절) 예수님의 대... 이마르첼리노M 2026.06.04 48
1866 하느님의 집을 마련하는 사람들 하느님의 집을 마련하는 사람들   하느님 앞에서는 모두가 살아 있다​.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은 세상의 시간 기준으로 보면 이미 아주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 이마르첼리노M 2026.06.03 70
1865 앎이 삶을 바꿉니다. 앎이 삶을 바꿉니다.   베드로 사도는 그의 마지막 권고에서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일에 충실하라고 당부합니다. &quot;우리 주님이시며 구원자... 이마르첼리노M 2026.06.02 77
1864 멈추지 않는 사랑의 물레방아 멈추지 않는 사랑의 물레방아   태초부터 하느님은 홀로 계신 분이 아니셨습니다. 그분은 사랑하는 분이셨고, 사랑을 받으시는 분이셨으며, 그 사랑 자체로 살아... 이마르첼리노M 2026.06.01 78
1863 베드로 사도가 알려주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길 베드로 사도가 알려주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길 (2베드 1,4-7)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8단계 영적 성장, 베드로 2서 1장 4-7절은 신앙인의 ... 이마르첼리노M 2026.06.01 113
1862 삼위일체 신학의 핵심적 요소와 프란치스칸 신학의 영적인 통찰 삼위일체 신학의 핵심적 요소와 프란치스칸 신학의 영적인 통찰   삼위일체 신학의 핵심 존재의 본질은 ‘관계’이며, 사랑은 흐름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의 중심... 이마르첼리노M 2026.05.31 61
1861 거친 세상 속에서 중심을 지키는 믿음 거친 세상 속에서 중심을 지키는 믿음   유다서(17.20ㄴ-25)의 말씀은 거친 세상 속에서 신앙인들이 어떻게 중심을 잡고 살아가야 하는지 강력하면서도 따뜻한 ... 이마르첼리노M 2026.05.30 111
1860 밀알이 죽는 현장에 하느님의 현존이 머뭄니다. 밀알이 죽는 현장에 하느님의 현존이 머뭄니다.   프란치스칸의 가난과 겸손 안에서 한 알의 밀알이 죽는 현장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 이마르첼리노M 2026.05.29 113
1859 관계 안에서 발견하는 하느님의 거처 관계 안에서 발견하는 하느님의 거처   “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계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 이마르첼리노M 2026.05.28 106
1858 슬프도록 아름다운 은총과 고독의 이야기. 슬프도록 아름다운 은총과 고독의 이야기.   고독이 불러온 선율 백야처럼 잠들지 못하는 마음의 가장자리에서 고독은 아주 천천히 한 사람의 영혼 안으로 걸어 ... 이마르첼리노M 2026.05.28 118
1857 썩지 않는 씨앗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썩지 않는 씨앗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프란치스칸 내적 가난과 형제성의 신비 안에서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많은 이들의 ... 이마르첼리노M 2026.05.27 123
1856 성사적 삶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자유 성사적 삶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자유   신앙은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과거를 완벽하게 이해한 뒤에야 오시는 분도 아니고, 죽음 이후의 어느... 이마르첼리노M 2026.05.26 115
1855 성령의 열매로 드러나는 하느님 나라의 현재성 성령의 열매로 드러나는 하느님 나라의 현재성   붙잡는 종교에서 놓아버리는 복음으로 예수님의 복음은 본래 죽은 뒤에야 효력을 발휘하는 내세 보험이 아니었... 이마르첼리노M 2026.05.25 129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6 7 8 9 10 ... 125 Next ›
/ 125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