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조회 수 434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십자가의 길

( 기도의 초대 ) 해설자

 

모든 크리스챤들은 자기중심적인 생활에서 벗어나 하느님 중심적인 삶으로 옮기는 회개하는 형제자매들입니다. 유혹에 빠지기 쉬운 우리들은 매일 매일 회개함으로써 복음을 생활화 하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사순절은 은총의 시기입니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매일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을 따르기 위해 내 자신이 포기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매일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주님으로부터 배워야 하겠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하느님과 이웃을 위하여 자기 자신을 내어주는 죽음의 길이요, 부활의 영광이 기다리는 길입니다.

우리도 주님께서 걸으신 십자가의 길을 자신의 삶에서 충실히 걸을 수 있도록 도움을 청합시다.

 

시작성가 가톨릭 성가 116 주 예수 바라보라

 

시작기도

지극히 거룩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님,

주님의 거룩하신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 하셨기에 저희는 온갖 수난을 감수 인내하신 주님의 사랑을 본받아 끊임없는 회개를 통하여 잃었던 아들 처럼아버지의 품안으로 되돌아와야 하는 몸이오니, 주님의 수난상처를 저희들의 마음에 박아 주시어, 주님 사랑 까닭에 남을 용서해 주며 연약함과 괴로움을 견디어내게 하소서

     

 

 

1처로 가며...

 

(성가)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1: 예수님께서 사형선고 받으심을 묵상합시다.

 

주님께서는 십자가로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부당한 사형선고 앞에서 예수님은 침묵을 지키십니다. 마음속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에도 입을 다물고 침묵하시며 받아들이십니다.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억울한 일을 당할 때 그리고 불리하다고 생각될 때 자신의 정당성을 큰소리로 외치고 싶은 유혹에 빠지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굴욕이나 모욕감으로 항거하고 싶을 때 침묵하기란 어렵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고통의 대부분은 불완전성과 자신의 한계성에 뿌리를 박고 있습니다. 자신이 수치스럽다고 여길 때. 자신과 남에게 거짓말을 하게 되고. 자기 속에서도 주위에서도 전혀 진실을 분간할 수 없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은 다른 사람이나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거짓말로 인해 일어나는 것입니다. 자신의 수치심을 감추기 위해 자신과 남에게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고통을 피할 수 있을까 하다가 더 큰 고통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들은 오늘날 예수님에게 내린 사형선고를 재현하는 이들입니다. 바른 양심으로 살려고 노력하는 이들을 함부로 대하고 업신여기며, 폭력을 행사하면서 자신들의 거짓과 수치심을 감추려 합니다.

 

주님 !

우리들에게 내려지는 사형선고인 온갖 욕설과 분노와 비난과 모욕 그리고 시기와 질투와 경멸을 사랑 때문에 견딜 수 있게 해 주소서.

나의 수치심을 감추려고 아무 잘못이 없는 내 이웃에게 사형선고를 내리지 않게 해 주소서. 나의 이익을 위해, 나의 편안함을 위해, 나의 쾌락을 위해, 나의 이름을 위해, 나의 만족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 사형선고를 내리지 말게 해 주소서.

 

영광송

 

(성가)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2: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심을 묵상합시다.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매일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나에게 있어서 십자가가 무엇인가? 내가 무엇을 십자가로 여기고 있는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고통,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는 고통, 유능하기 때문에 져야하는 십자가도 있고 무능하기 때문에 져야하는 십자가도 있습니다. 십자가의 이 고통 안에서 우리는 구원의 길을 발견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선택을 하면서 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십자가를 받아들일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선택에는 생명과 죽음이라는 결과가 달려있습니다.

마지못해 지는 십자가보다 무거운 십자가는 없습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자진해서 지는 십자가는 가볍습니다. 피할 수 없는 십자가 앞에서 마지못해 져야하는 사람처럼 비참한 사람이 없습니다.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방해를 받아야 합니다. 안전한 둥지에서 밀려나는 거기서 보여주는 만큼만 진실입니다. “해가 될 듯한 말 한마디만 들어도화를 내는 현실입니다. 힘든 일, 귀찮은 일, 궂은일, 이름을 빛내거나 명성을 얻는 것과는 무관한 일, 남이 알아주지 않는 일, 이익이 없는 일들을 다른 사람에게 미루고 회피해 버림으로서 자기 몫의 십자가를 남에게 지게 하는 것은 불의입니다. 각자가 자기 몫의 짐을 지는 것 바로 이것이 정의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십자가를 없애 주시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가볍고 편하게 질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사랑을 실천하다가 겪는 고통과 아픔은 모두 십자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일생동안 크고 작은 십자가를 무수히 져야 합니다. 나의 이익과 즐거움과 편안함만을 찾으며,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노동할 수 없고 생산할 수 없는 이들을 사람 취급도 하지 않는 현실 속에서 사랑 때문에 지는 십자가는 구원의 힘이 있습니다.

 

주님 !

나의 삶을 바른길로 인도해 주소서. 바보취급 당하고 멸시 당하면서 험난한 삶을 살아야 할지라도 당신이 걸으신 그 길을 나도 걷게 해주소서. 내 몫의 십자가를 질 때마다 당신을 바라볼 수 있게 하시어 최선을 다하여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영광송


(성가)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3: 예수님께서 기력이 떨어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십자가의 무게가 너무 힘에 겨워 예수님께서 땅바닥에 넘어지셨습니다. 감당할 수 없는 커다란 고통에 짓눌릴 때 우리 역시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넘어짐은 실패입니다. 실패 앞에서 남에게 탓을 돌리지 않는 침묵, 그것은 하늘나라의 체험이며 넘어짐에서 다시 일어나게 하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자유롭기를 원한다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내 것으로 여기지 말고 하느님께 돌려드려야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 자신마저도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 것도 내 것으로 여기지 않고 아무 것도 내 것으로 소유하지 않는 그 가난함 속에서 비로소 하느님이 주시는 풍요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넘어짐과 실패를 통해서 우리는 자신으로 가득 찬 오만함과 위선과 그릇된 이기주의를 깨달아 겸손함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내 죄의 무게와 우리 모두의 죄의 무게는 예수님과 이웃의 어깨에 감당하기 어려운 짐을 가중시켜 결국 기진하여 넘어지게 만듭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잘못하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기본으로 인식하고 사는 사람은 자신을 높이는데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습니다. 사랑을 질서 짓던 윤리도덕의 타락, 가치관의 타락이 극단에 이르는 오늘의 현실은, 악습과 죄악이 가져온 결과이며 구체적으로는 내 자신의 악습과 죄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고통당하고 비참해 집니다. 온갖 형태의 이기주의와 자만심이 불러온 죄로 인하여 누군가가 희망을 포기하고 죽어갑니다.

 

주님 !

우회를 용납하지 않는 완고함 속에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줄 모르고 모든 일을 밀고, 끌고, 잡아당기고 주무르려하는 저희 마음을 깨닫게 해 주소서, 열심하지만 교만한 이들의 믿음은 마찰을 불러옵니다. 혼자의 힘만으로는 포기할 수 없사오니 우리를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장애물을 견딜 수 있는 힘을 주시어 흔들림 없이 당신만을 따를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영광송

 

(성가)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4: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만나심을 묵상합시다.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피와 땀으로 범벅이 된 채 모든 사람의 조롱과 모욕 속에서 괴로워하는 아들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어머니의 아픔과, 죽음의 길을 걷는 예수님의 아픔이 만났습니다. 두 분의 시선이 만났을 때 예수님은 위로를 느끼셨습니다. 자신의 아픔보다 자녀들의 아픔을 더 크게 느끼는 것이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지금 성모님께서 겪고 계신 칼에 찔리는 아픔은 예수님의 고통과 다를 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무거운 십자가를 끝까지 지고 가실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와의 만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힘겨움을 당신 가슴에 품으시고 위로를 주시는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사람을 만날 때 우리는 힘을 얻게 됩니다. 다른 사람이 힘겨운 모습을 볼 때마다. 사랑으로 함께 할 때 우리는 서로서로 자기 몫의 십자가를 끝까지 지고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 !

우리가 목숨처럼 아끼는 사람이 있다는 것,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복일까요. 서로 서로의 만남 안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자기 생각만을 강요하는 거만에 빠지지 않게하시어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과 자비로 아버지께서 창조하실 때 피조물 안에 숨겨놓은 하느님의 선을 발견할 수 있도록 영적인 통찰력을 주소서,

허물없이 나 자신을 내 놓을 수 있는 만남이 되도록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시고 고통과 침묵 속에서 어머니를 만나셨을 때 주님께서 느끼셨던 위로와 용기를 서로의 만남 속에서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영광송

    

(성가)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5: 시몬이 예수님을 도와 십자가 짐을 묵상합시다.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기진맥진하여 더 이상 걸을 수 없는 예수님을 도와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는 시몬은 말이 없습니다. 불완전한 인간인 시몬이 하느님과 하나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자기 자신의 십자가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남에게 지워진 십자가를 함께 져 준다는 것은 오늘날과 같은 사랑이 메마른 세상에서는 생명을 주는 물같이 소중한 사건입니다. 남의 십자가를 대신 지는 행위는 말이 없어야 합니다. 말없이 행하는 선, 흔적을 감추는 선은 다른 사람의 십자가를 대신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자아도취의 중독 속에서 자신을 다른 사람 위에 올려놓고 사는 우리는 얼마나 계산적이고 따지기를 좋아하며 살고 있는지 생각해 봐야 하겠습니다. 인정과 칭찬과 더 나은 사람으로 평가 받기 위해 자신을 속이지 않고 하느님만으로 만족할 줄 아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은 말없이 다른 사람의 짐을 대신 지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는 사랑과 겸손의 결과입니다. 오늘날 사랑과 겸손은 도전 받고 있습니다. 악을 행하는 이들은 자신들의 악행이 드러날까 봐 그들을 적대시 합니다.

 

, 지극히 자비로우신 아버지 !

사람의 눈에는 어리석어 보이는 일일지라도 당신은 겉만 보고 판단하지 않고 속마음을 보고 판단하시니 감사합니다. 당신 아들이 짊어지신 십자가는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는 사랑의 법을 완성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랑의 새 계명이 선포된 날, 아드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말씀 하셨습니다. “나를 보았으면 아버지를 본 것이라고... 제자들의 발 아래서 우리에게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측은한 마음으로 한없이 낮추시는 아버지, 제자들을 올려다 보시는 아버지의 시선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아버지! 저희 모두가 사랑으로 남의 짐을 대신 져 줄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주시고 벗을 위해 자신을 내놓을 수 있게 해주소서.

 

영광송

 

(성가)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6: 성녀 베로니까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 드림을 묵상합시다.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모두가 배척하고 조롱하며 천대하는 예수님께 가까이 가서 피와 땀으로 얼룩진 그분의 얼굴을 닦아드리는 베로니까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십자가를 진 용기 있는 여인이었습니다.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죄인에게 가까이 접근한다는 것은 두렵고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강박적인 사람은 오로지 자신에게 신경쓰느라, 자기가 섬겨야 할 세계를 보지 못합니다. 자신을 중요하게 여길수록 우리는 민감해지고 민감할수록 더 상처받습니다. 불의와 거짓이 판을 치는 세상, 폭력과 범죄가 판을 치는 세상에, 자신의 무관심과 행동 없는 침묵은 그들과 뜻을 같이 하는 공범일 수 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당당하게 자신의 행할 바를 실행할 수 있는 용기와 자유를 지닌 베로니까에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모습을 새겨 주십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힘으로 삼고 살기 시작하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진리와 선을 위해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 마음 안에 당신의 모습을 새겨 주실 것입니다. 고통은 함께 나눌수록 작아지며 든든함과 위안을 줍니다. 이웃의 고통을 못 본체 하거나 외면하는 것은 주님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주님 !

옳은 일 앞에서 몸을 사리거나 자신에게 닥칠 불이익 때문에 비겁해지는 일이 없도록 지혜와 용기를 주시어 불의 앞에 침묵하지 않고 행동하게 해주시고 억압이나 심한 박해를 무릅쓰면서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자신을 바치려는 이들을 도와주소서.

 

 

영광송

 

(성가)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7: 기력이 다하신 예수님께서 두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주님께서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자기를 사랑해 주는 사람, 자신의 마음에 드는 사람, 호감이 가는 사람, 유용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만을 사랑한다면 사람들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거듭 넘어뜨리는 걸림돌이 될 것입니다. 자기가 서 있는 곳에 올바로 서있기 위해 혼신을 다하여 버티는 이들, 양심을 따라 살고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은 거듭 넘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부모와 자녀가 갈라지고, 형제와 형제가 갈라지고, 이웃과 이웃이 갈라지고 지역감정이 생겨나고, 남과 북으로 분단된 우리의 겨레는 찢어지고 갈라져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집착과 의도로 점철된 사람은 반응을 조작해서라도 인정과 칭찬을 기대하지만 늘 혼자일 따름입니다. 그는 외로움을 이기려고 중독성이 있는 대체를 찾습니다.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재능을 자기만을 위해 사용하려합니다. 그러나 재능의 노예가 되면 자신을 성과로만 판단하게 되고. 자기의 재능 뒤에 성공과 갈채가 따르기를 기대합니다. 성공과 갈채라는 마취제가 떨어지면 자기를 무가치하게 여기며 내적 생기를 잃고 영적 침체에 빠집니다. 이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넘어뜨립니다. 가진 자가 더 갖기 위해 못 가진 자를 착취하는 비참한 현실 안에서 주님은 넘어지시고 일어날 기력은 잃어 버리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실하고 순수한 마음과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는 마음으로 넘어진 이들을 부축할 때 그들도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 !

두 번째 넘어지시어 신음하고 계신 당신 앞에서 비로소 우리의 죄를 알았습니다. 우리의 오만불손을 용서해 주시고 자비를 베풀어주시어 바른 길이라면 혼자서도 걷고자 하오니 넘어질 때마다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영광송

 

(성가)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8: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부인들을 위로하심을 묵상합시다.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극심한 고통 중에서도 다른 이를 위로하시는 마음의 여유를 가진 예수님 앞에서 우리는 사소한 아픔 때문에 정신없이 발버둥치는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신이 짊어진 십자가의 고통 중에서도 울고 있는 여인들을 위로해 주시는 예수님은 울고 있는 모든 이들의 위로자십니다. 세상살이가 너무 힘겨워서, 아무리 노력해도 늘 가난하기 때문에, 타인의 멸시와 무시가 속상해서, 인간다운 대우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인정받지 못해서 울고 있는 우리를 위로해 주시는 주님의 목소리는, 침묵과 기도 중에 들을 수 있습니다. 다만 그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은 멈추어 서지 않고 침묵하지 않고 떠들거나 격정을 잠재우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병든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것은 무서운 형벌이나 처벌이 아니라 가엾이 여겨주고 돌봐주는 사랑입니다. 고정관념과 편견에 사로 잡혀 있거나 선입견으로 사람을 대할 때, 완고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려 하지 않을 때, 권위의식에 젖어 나보다 우월한 사람을 용납하지 못하면서 자신의 모든 말과 행동을 합리화 시키는 사람은 사람의 품위를 스스로 망치는 사람입니다. 관대한 마음으로 타인을 위로하고 다른 사람에게 측은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돌보아주는 행위야말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행위입니다. 타인의 고통 앞에서 그들과 더불어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은 자신의 자유를 살리는데 사용합니다. 자유는 사랑에 기여 할 때 가장 위대하기 때문입니다.

 

주님 !

자신의 고통 속에서도 다른 사람을 위로하시는 너그러움을 닮게 하시어 스스로 품위를 높이는 자 되게 하시고 서로를 존중함으로써 품위를 되찾게 해 주소서.

 

영광송

 

(성가)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9: 예수님께서 세 번째 넘어지심을 묵상합시다.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기필코 윗자리에 올라야겠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뭇 사람 위에 군림해야 하며, 모든 일에 내가 아니면 안 되고, 중요한 직책은 내가 맡아야 한다는 무서운 집념을 가진 자들의 위세에 눌려 예수님 께서는 세 번째 넘어지십니다. 그들의 집념은 자꾸만 특혜와 예외와 차별을 확대 해 가기 때문에 사심 없이 순박하게 살고 싶다는 이들에게 상처를 입히거나 심한 경우 삶의 의욕마저 빼앗기도 합니다. 여러 번 넘어지면서 깨지고 터진 볼품없는 모습으로 멸시와 저주를 받으며 살기보다는 차라리 이대로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되는 현실입니다. 세 번씩이나 넘어지신 예수님 안에서 한갓 피조물인 우리가 자주 넘어진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넘어짐은 결코 수치가 아닙니다. 그러나 넘어져서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면 그것은 커다란 수치와 치욕이며, 삶의 의미 자체를 상실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계속 새로 시작해야 합니다. 넘어졌다는 수치심을 감추려고 거짓말을 하게 될 때에 한 번도 진실을 만나보지 못한 채 일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세 번씩이나 넘어지면서도 다시 일어나신 예수님 !

넘어져 있는 우리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해 주시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과 용기와 믿음을 키워주소서.

    

영광송

 

(성가)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10: 악당들이 예수님의 옷을 벗기고 초와 쓸개를 마시게 하였음을 묵 상 합시다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그들은 마침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기 위해 옷을 벗깁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옷을 벗길 때 피땀으로 얼룩져있는 상처에 달라붙는 옷과 함께 살점이 뜯겨져 다시 피투성이가 되십니다. 알몸으로 십자가에 매달려 계신 예수님을 보면서도 사람을 겉모양으로 평가한다면, 우리는 입으로는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미워하고 예수님을 반대하는 위선자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옷차림과 외모로 인간을 판단하려 하고 있습니다. 능력이나 지위, 외모가 그 사람을 결정짓는 기준일 수는 없습니다. 무자비한 태도로 서로 판단하면 우리의 관계는 편협하고 거칠어집니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사람은 예수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사람이며 내면에 예수의 영을 간직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타인의 장점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비판하는 정신으로 눈이 가려졌기 때문이며. 측은함의 눈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주님!

사람을 겉만 보고 평가하려는 우리에게 진실한 내면, 순수하고 성실한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눈을 주시어 진실한 마음으로 당신을 따라가게 해주소서. 당신은 당신을 넘겨준 사람을 벗이라 부르시고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기꺼이 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억울하게도 번민과 괴로움, 부끄러움과 모욕, 고통과 학대를 하는 이들을 위해 우리 자신을 내어놓고 그들을 사랑하게 해 주소서. 우리는 그들이 끼치는 그것들 때문에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영광송

 

(성가)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11: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을 묵상합시다.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맨살에 와 닿는 가시관의 고통과 함께 양손과 발에 쇠못을 박는 망치소리가 날 때마다 온몸의 신경조직은 더 이상 긴장될 수 없을 정도로 아픔이 극심하게 느껴집니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이를 참으면서도 당신을 못 박는 이들을 위해 그들의 잘못을 용서해 주시기를 기도하고 계십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말이나 행동으로 자신의 가슴에 못 박는 사람 앞에서 용서하는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다면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여 그리스도 예수와 일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용서는 하느님 안에서 인간이 가진 최상의 베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를 무서워하고 두려워하여 못 박히는 일을 하지 않으려 합니다.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호감을 사려고 하고 인정을 받기 위해 자신을 겉꾸미는 자들은 성취감과 자부심을 갖고 흐뭇해하겠지만 그 사람은 결코 하느님의 일꾼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의 호감을 가지고 지지해 주는 사람은 결코 못 박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왜 못 박히셨을까요?

잘못을 잘못이라고 말하고 그릇된 것을 지적하고 거짓과 불의를 보고 바른 말을 하고 겸손과 사랑으로 하느님의 일, 곧 가엾이 여겨주고 돌보아 주는 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 !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이들이라면 주님의 인정과 주님의 기뻐하심만을 바라게 해 주소서. 사람들의 인정은 일시적인 것들이지만 주님의 인정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주님 ! 이기심과 위선을 못 박게 하소서. 시기와 질투 때문에 자신과 타인을 괴롭히는 천박한 성향을 못 박게 하소서. 무관심과 오만을 못 박게 하소서. 나 아니면 안 된다는 독선을 못 박게 하시고 태만과 무절제를 못 박게 하소서.

 

영광송

 

(성가)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12: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심을 묵상합시다.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하느님의 사랑은 십자가에서 드러났습니다.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 이것은 나의 피다. 죄를 용서해 주려고 너희들과 많은 사람을 위하여 내가 흘리는 새로운 계약의 피다.”

아버지의 전능하심은 내어주시는 사랑, 섬기는 사랑, 용서하시는 사랑으로 드러났습니다. 사형선고와 모욕, 조롱과 가시관, 맨살이 못에 뚫리고 창에 찔리는 아픔도 죽음의 고통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닐 만큼 죽음은 모든 고통을 다 합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날이 언제 올는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은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명예도 지위도 권세도, 재산도 쾌락도 죽음 앞에서 무력해 지고 말지만 우리가 남에게 준 것, 남에게 베푼 것은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남아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우리는 우리의 한계를 초월한 사랑으로 사랑이신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결정적 죽음 이전의 죽음, 사랑한다는 것은 매일 매일 자신에 죽는 것을 포함합니다. 우리가 죽기 싫어한다면 그것은 사랑하기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자신만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이미 죽은 사람입니다. 행동 없는 믿음 또한 죽은 믿음입니다. 우리가 죄 없이 억울하게 죽으신 분의 발자취를 따르는 사람이라면 그분처럼 다른 사람들의 발을 씻어주는 봉사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고 그것은 벗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 것이라야 합니다.

 

. 사랑하올 주님 !

나 때문에 다른 이들이 상처받고 죽지 않게 해 주시고 오히려 그들을 위해 내가 죽을 수 있게 해 주소서. 아무리 노력해도 좋아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게 해주시고 남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는 어리석은 행동으로 인간관계를 파괴하지 않도록 지켜주소서.

  

영광송

 

(성가)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13: 숨을 거두신 예수님, 십자가에서 내려 성모님의 품에 안기심을 묵상합시다.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이 아기는 반대 받는 표적이 될 것입니다.”

당신의 가슴은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플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칼에 찔린 마음입니다. 어머니와 아들의 공동수난이라 할 만큼 성모님과 예수님의 마음은 일치되어 있습니다. 홀어머니를 남겨두고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시는 예수님의 마음과 자녀들의 상처와 고통을 더 크게 아파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만난 곳, 그것은 어머니의 품을 떠났던 분이 다시 어머니의 품에 안기는 십자가 밑에서 그 절정을 이뤘습니다.

 

오늘날 우리 곁에서 우리들의 상처를 만져주고 우리의 퇴색된 마음을 본래의 순수한 마음으로 되찾도록 도와주실 분은 마리아이십니다.

 

주님 !

피곤하고 지쳐있을 때 달려가 안길 수 있는 어머니의 품은, 위안과 생기 넘치는 곳입니다. 우리 모두가 어머니의 마음으로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고, 행하게 하시어 모든 이를 품에 안을 수 있는 이 시대의 마리아가 되게 해 주소서.

 

영광송

 

(성가)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 맘속에 주의 상처 깊이 새겨 주소서.

 

    

14: 예수님께서 무덤에 묻히심을 묵상합시다.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예수 그리스도님 경배하며 찬송하나이다.

 

무덤은 영원한 자유를 위하여 통과해야 할 관문입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나 무한한 자유를 살기 위해서는 먼저 죽어 묻혀야 합니다. 자만심과 교만, 이기심과 무관심, 증오, 시기와 질투, 위선과 분노, 어리석음으로 오염된 자신을 묻어야만 영적으로 부활할 수 있습니다.

사랑을 위한 죽음은 부활을 동반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로부터 받은 모든 것은 주기 위한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주시듯 아무런 조건 없이 내어놓는 삶, 더불어 행복한 삶, 삼위일체의 사랑 안에서 누리는 자유에 초대된 우리는 단 한번 밖에 주어지지 않은 일회적인 삶을 가장 완전하게 살 수 있는 비결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배웠습니다. 그분으로부터 사랑받고 있음을 아는 사람은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기에 오직 사랑받고 있음을 알 때만 우리는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랑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주변 세계에 늘 자기를 증명하려 합니다. 자기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를 보여 주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끝없이 자기를 증명하는 일은 결국, 자신은 물론이고 주변사람까지 망치고 맙니다.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노력하고, 불만족스러운 것을 해결하면 더 행복하고 평온한 삶이 오리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번번히 자기를 증명하고자 뼈아픈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은 만족을 모르는 공허감인 실존적 공허에 빠져 허덕일 뿐입니다. 오직 사랑받고 있음을 아는 사람만이 안식을 누립니다. 그는 자기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사랑하려는 의지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받고 있는 사랑에 대한 확신이기 때문입니다. 받고 있는 사랑을 아는 사람은 영원한 안식을 지금 사는 사람입니다.

 

지극히 높으시고 영광스러운 하느님이시여 !

내 마음의 어두움을 밝혀 주소서,

주여. 당신의 거룩하고 진실한 뜻을 실행하도록

올바른 신앙과 확고한 희망과 완전한 사랑을

주시며 지각과 인식을 주소서.” ‘아멘.’

 

영광송

 

마침성가 가톨릭 성가 264 번 그 외아들



2018330일 성금요일 새벽

키드론 골짜기, 겟세마니에서 기도하시는 주님과 함께 깨어 있으려는 마음으로 십자가의 길 묵상을 정리 하였습니다. 묵상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하려는 이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

 

제주 성글라라 수도원에서 안식년을 보내며

이기남 마르첼리노 마리아 형제 ofm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자유나눔 게시판

자유롭게 글을 남겨주세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884 ★ 2018 포르치운쿨라 도보순례 첫째 날★(2018.7.24) ★2018 포르치운쿨라 도보순례 첫째 날★(2018.7.24) 7월 24일 화요일 장소 : 다락골 성당          (다락골 줄무덤성지) 거리구간 : 25킬로 미사와... file 김레오나르도 2018.07.26 401
883 ★ 2018 포르치운쿨라 도보순례 전날 ★ ★2018 포르치운쿨라 도보순례 전날★ 여러분! 많이 기다리셨지요? 등록작업 사정이 좋지 않아 이제사 순례소식을 보내드려 많이 죄송합니다ㆍ 오히려 40도의 불... file 김레오나르도 2018.07.26 335
882 ★ 2018 포르치운쿨라 행진을 시작하며 바치는 기도 ★ 포르치운쿨라 행진을 시작하며 바치는 기도 주님,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민족이 길을 나선 것처럼 일상생활의 습성에 노예처럼 길들여... file 김레오나르도 2018.07.26 328
881 달팽이 달팽이는 느리다. 달팽이는 무엇을 하던지 느리다. 달팽이가 늦다고하여 굶지도 않고 살지못하는법은 없다. 달팽이가 느려도  자기살것은 다살고 자기가 필요한건... 일어나는불꽃 2018.07.12 271
880 철거작업 오전에 옆마당 풀뽑는 작업을 했다. 군데군데 풀이 나있어서 오전중에 뽑았는데 사방에서 난리가 난 것이었다. 이유는 사람들이 아니라 풀속에 숨어서 살고 있던 ... 일어나는불꽃 2018.05.19 320
879 부활 송가 - 만발하는 4월의 꽃처럼 - 2018년 부활절 부활 송가   알렐루야 주 참으로로 부활하셨도다. 알렐루야   죽음이 살려낸 생명 견딘 자들의 축제 기다린 자들의 잔치   ... 미루나무 2018.03.31 306
» 묵상과 함께하는 십자가의 길 십자가의 길 ( 기도의 초대 ) 해설자   모든 크리스챤들은 자기중심적인 생활에서 벗어나 하느님 중심적인 삶으로 옮기는 “회개하는 형제자매들”입니다. ... 미루나무 2018.03.30 434
877 빗방울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그 비가 생명이되어 세상과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게 된다. 빗방울이 하늘 위에서 머물러만 있으면 세상과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지 못하지만... 일어나는불꽃 2018.02.20 354
876 모래알 해변에서 바라보는 바다의 모습은 아름답다. 수 많은 사람들이 바다를 보기 위해서 오고, 바다의 넓음과 출렁이는 파도와 바다위에 떠 있는 배들을 보기 위해서 ... 일어나는불꽃 2018.02.12 304
875 흐르는 물 물이 고여있으면 반듯이 썩게 마련이다. 물은 반듯이 다른곳으로 흘러가야 살수가 있고 그 자체로서 생명이 되어 다른 존재에게 생명이 되어 줄수 있게 된다. 그... 일어나는불꽃 2018.01.10 396
874 가장 추운 날에 가장 추운 날에   올 겨울 들어 가장 춥다고 한다. 추위에 움츠러드는 가슴과 시려오는 한기에 몸을 녹일 곳을 찾는 이들이 많다. 사람의 추위 가운데 더러... 미루나무 2017.12.15 420
873 하느님의 가난 하느님의 가난   삼위일체 신비 안에서 사랑을 배운다. 하느님의 사랑 안에는 소유의 흔적이 없다 “상호 이타적이면서 완전한 자기 증여.”   사랑은 혼... 미루나무 2017.12.09 476
872 관구창설 80주년 감회 - 이요한(종한)   제목이 어떤 이들에게는 좀 생경스럽지만 이것이 작은형제회라 불리길 몹시 바라는 프란치스코 수도회 한국 관구 홈페이지이니, 프란치스칸 영성과 삶에 사랑과... 2 이종한요한 2017.10.25 748
871 기쁨의 샘 기쁨의 샘   공복의 기쁨 가난이 주는 기쁨 어느 것도 내 것으로 하지 않는 기쁨 돌려드리는 기쁨   보상을 바라지 않는 기쁨 선의 흔적을 지우는 기... 미루나무 2017.10.13 602
870 사목과 정치 사목과 정치   사랑이 빠진 사목은 정치다. 사목은 삼위일체의 하느님의 사랑을 전달하기 위하여 하느님의 소통방식인 자기 비움이라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 미루나무 2017.10.05 553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6 7 8 9 10 ... 59 Next ›
/ 59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