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No Attached Image

✝️ 오늘의 복음 말씀 묵상 ✝️
요한 20,24-29
토마스는
다른 제자들의 증언만으로는 믿지 못했습니다.
그는 직접 보고, 직접 만져 보기를 고집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고집을 책망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당신의 상처를 그에게 내어 보이십니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아라.”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 장면을 한 문장으로 꿰뚫습니다.
토마스는 ‘사람’을 보고 만졌지만,
보지도 만지지도 못한 ‘하느님’을 고백했다는 것입니다.
그가 만진 것은 상처 입은 한 사람의 몸이었으나,
그 입에서 터져 나온 고백은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상처를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신성을 알아본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노는 또 말합니다.
토마스가 의심한 것은
우리가 의심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그의 의심과 그의 만짐 덕분에
우리는 더 단단한 확신을 얻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의 마지막 말씀은
바로 우리를 향한 복입니다.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몸에
굳이 상처를 간직하신 것도 놀랍습니다.
그 상처는 패배의 흔적이 아니라
사랑의 증표이며, 의심을 치유하는 자리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상처도
부끄러워 숨기라 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그 자리를 통해 당신을 만나게 하십니다.

사랑·기쁨 주간의 관점에서 보면
토마스의 이야기는
의심이 믿음의 끝이 아니라 문턱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주님께서는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시며
의심하는 이에게 먼저 평화로 다가오십니다.
그 평화 속에서 의심은 가장 깊은 기쁨의 고백으로 바뀝니다.

오늘 우리는 조용히 묻습니다.
나는 내 의심을 부끄러워 숨기고만 있지는 않은가?
나는 그 의심을 들고 주님께 다가가는가?
나는 상처(나의, 이웃의) 안에서 주님을 알아보는가?
나는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 고백하며 사는가?

주님,
의심을 부끄러워 숨기지 않고 당신께 들고 가게 하소서.
상처 입은 당신의 손에 제 의심을 대어,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하고 고백하게 하시고,
보지 않고도 믿는 그 복을 살게 하소서.
아멘.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말씀 나눔

매일미사 독서와 복음,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의 글 묵상나눔

  1. No Image 02Jul

    2026년 7월 3일 금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학교 말씀 기도

    오늘의 복음 말씀 묵상 요한 20,24-29 토마스는 다른 제자들의 증언만으로는 믿지 못했습니다. 그는 직접 보고, 직접 만져 보기를 고집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고집을 책망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당신의 상처를 그에게 내어 보이십니다. “네 손가락을 ...
    Date2026.07.02 Category말씀나누기 By고도미니코 Reply1 Views11 new
    Read More
  2. No Image 02Jul

    연중 13주 목요일-심판은 No! 용서는 Yes

    단죄와 용서의 권한은 하느님께만 있다는 것이 구약의 믿음이자 우리 믿음입니다. 다시 말해서 묶고 푸는 권한이 하느님께만 있다는 것입니다.   그 반대를 한번 생각해보면 좋을 것입니다. 단죄도 용서도 인간의 권한이지 하느님은 상관이 없다고 무신론자들...
    Date2026.07.02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2 Views340 new
    Read More
  3. No Image 01Jul

    2026년 7월 2일 목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학교 말씀 기도

    오늘의 복음 말씀 묵상 마태 9,1-8 주님께서 가장 먼저 보신 것은 중풍 병자가 아니라 ‘그들의 믿음’이었습니다. 곧 그를 평상에 누여 데려온 친구들의 믿음입니다. 스스로 일어설 수 없던 한 사람을 주님 앞으로 데려간 것은 바로 그 곁의 사랑과 돌봄이었습...
    Date2026.07.01 Category말씀나누기 By고도미니코 Reply1 Views101 update
    Read More
  4. No Image 01Jul

    연중 13주 수요일-주님과 나 사이의 어긋남은?

    오늘 얘기는 마귀 들린 사람들을 고쳐주신 얘기입니다.   오늘 얘기에서 마귀들이 주님께 상관없는데 왜 왔느냐, 괴롭히려고 왔냐고 따지고 든 것은 그래도 이해되지만, 그리고 돼지 주인들이 떠나달라고 한 것도 이해되지만, 마을 사람들이 몰려와 떠나가 달...
    Date2026.07.01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2 Views439
    Read More
  5. No Image 30Jun

    2026년 7월 1일 수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학교 말씀 기도

    오늘의 복음 말씀 묵상 마태 8,28-34 주님께서는 일부러 호수를 건너 이방인의 땅, 무덤가에 버려진 두 사람에게 가십니다. 아무도 다가갈 수 없을 만큼 사나웠던 그들을 주님께서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가장 멀리 밀려난 이를 찾아가시는 것 ― 그것이 주님...
    Date2026.06.30 Category말씀나누기 By고도미니코 Reply1 Views59
    Read More
  6. No Image 30Jun

    연중 13주 화요일-잠자고 계신 것이 아니라 잠자코 계신 주님

    “그때 호수에 큰 풍랑이 일어 배가 파도에 뒤덮이게 되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주무시고 계셨다.” 오늘 주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호수를 건너십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 제자들과 동행하시는 건데 이는 우리의 인생길에도 주님께서 동행하신다는 뜻이지...
    Date2026.06.30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2 Views413
    Read More
  7. No Image 29Jun

    2026년 6월 30일 화요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학교 말씀 기도

    오늘의 복음 말씀 묵상 마태 8,23-27 같은 배에 주님과 제자들이 함께 타고 있습니다. 그런데 풍랑이 일자 제자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주님께서는 평화로이 주무십니다. 같은 폭풍이지만 한쪽은 공포이고 다른 쪽은 평화입니다. 그 차이는 ‘믿음’에서 옵...
    Date2026.06.29 Category말씀나누기 By고도미니코 Reply1 Views62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6 7 8 9 10 ... 1579 Next ›
/ 1579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