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20,24-29
토마스는
다른 제자들의 증언만으로는 믿지 못했습니다.
그는 직접 보고, 직접 만져 보기를 고집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고집을 책망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당신의 상처를 그에게 내어 보이십니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아라.”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 장면을 한 문장으로 꿰뚫습니다.
토마스는 ‘사람’을 보고 만졌지만,
보지도 만지지도 못한 ‘하느님’을 고백했다는 것입니다.
그가 만진 것은 상처 입은 한 사람의 몸이었으나,
그 입에서 터져 나온 고백은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상처를 통해
눈에 보이지 않는 신성을 알아본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노는 또 말합니다.
토마스가 의심한 것은
우리가 의심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그의 의심과 그의 만짐 덕분에
우리는 더 단단한 확신을 얻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의 마지막 말씀은
바로 우리를 향한 복입니다.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몸에
굳이 상처를 간직하신 것도 놀랍습니다.
그 상처는 패배의 흔적이 아니라
사랑의 증표이며, 의심을 치유하는 자리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상처도
부끄러워 숨기라 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그 자리를 통해 당신을 만나게 하십니다.
사랑·기쁨 주간의 관점에서 보면
토마스의 이야기는
의심이 믿음의 끝이 아니라 문턱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주님께서는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시며
의심하는 이에게 먼저 평화로 다가오십니다.
그 평화 속에서 의심은 가장 깊은 기쁨의 고백으로 바뀝니다.
오늘 우리는 조용히 묻습니다.
나는 내 의심을 부끄러워 숨기고만 있지는 않은가?
나는 그 의심을 들고 주님께 다가가는가?
나는 상처(나의, 이웃의) 안에서 주님을 알아보는가?
나는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 고백하며 사는가?
주님,
의심을 부끄러워 숨기지 않고 당신께 들고 가게 하소서.
상처 입은 당신의 손에 제 의심을 대어,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하고 고백하게 하시고,
보지 않고도 믿는 그 복을 살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