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여러분, 주님께서 얼마나 인자하신지 여러분은 이미 맛보았습니다.”
오늘 베드로 사도의 말은 제가 아주 사랑하는 말씀 가운데 하나입니다.
젖을 갈망하라고, 영적이고 순수한 젖을 갈망하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두 단어 젖도 제가 좋아하는 단어이고 갈망도 좋아하는 단어입니다.
가끔 제가 엄마가 되어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말하곤 하는데
실은 반대로 제가 아기가 되어 엄마의 젖을 물고 빨고 싶은 갈망도 있습니다.
이것은 욕망이 아니고 갈망입니다.
아기의 것은 욕망이 아니고 갈망입니다.
갈망이라는 단어를 사랑하게 된 제법 긴 역사가 있습니다.
미국에 가 살 때 성무일도 주일 아침 기도 시편을 바치면
제 마음을 아주 달콤하게 하는 영어 단어가 있었습니다.
“O, God, you are my God, for you I long! For you my body yearns;
for you my soul thirsts, Like a land parched, lifeless, and without water.”
“하느님, 내 하느님, 당신을 애틋이 찾나이다, 내 영혼이 당신을 목말라 하나이다.
물기 없이 마르고 메마른 땅 이 몸은 당신이 그립나이다.”
영어에서 목말라하고 갈망하는 뜻으로 ‘long for’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아시다시피 ‘long’이라는 말에는 ‘긴’, ‘오랜’의 뜻도 있지 않습니까?
갈망이란 오랫동안 목말라야지만 그 갈망이 진짜이고 강렬하지요.
마침 어제 성무일도 독서의 기도 독서도 제가 너무도 사랑하는
성 아우구스티노의 고백록 한 부분을 들려주어 묵상했습니다.
“늦게야 님을 사랑했습니다.
이렇듯 오랜, 이렇듯 새로운 아름다움이시여, 늦게야 당신을 사랑했삽나이다.
내 안에 님이 계시거늘, 나는 밖에서, 님을 찾았사오니!
향 내음 풍기실 제 나는 맡고 님 그리며, 님 한번 맛본 뒤로 기갈 더욱 느끼옵고,
님이 한번 만지시매 위없는 기쁨에 마음이 살라지나이다.”
성 아우구스티노에게도 그렇고 오늘 베드로 사도에게도 이 갈망은
한번 맛보고 이미 맛본 사람들의 갈망으로서 맛보면 맛볼수록
더욱더 갈증/기갈을 느끼게 하는 갈망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이미 한번 맛본 사람은 그 맛을 자신도 잊지 못하고 다른 이에게도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으라.”라고 권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한번 이미 맛보았다고 해도 자신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다른 맛들로 더럽혀진 입은 맛 고수들이 새 맛을 보기 위해
입을 헹궈내듯 입의 정화와 맛의 정화를 먼저 해야 합니다.
저의 하루 시작은 이것의 반복입니다.
새벽에 일어나면 입이 아주 텁텁하고 씁니다.
그래서 입을 헹구고야 녹차를 끓여 마십니다.
그리고 이런 의식과 함께 어제의 욕망을 헹궈내고
새로운 갈망으로 하느님 말씀을 맛보고 깨닫고 여러분과 나누려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느낄 것입니다.
제가 어떤 날은 욕망이 덜 헹궈진 갈망으로 하느님 말씀을 맛보고 나누고,
어떤 날은 잘 헹궈진 갈망으로 하느님 말씀을 맛보고 나누고 있음을 말입니다.
그래도 저는 희망을 가집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아기가 되어가고 욕망은 사그라들고 갈망이 자라서
“갓난아이처럼 영적이고 순수한 젖을 갈망하십시오. 그러면 그것으로
자라나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라는 말씀처럼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