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15,1–8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그리고 이어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하십니다.
이 말씀은
신앙이 단지 의무를 수행하는 일이 아니라
생명의 관계 안에 머무는 일임을 보여 줍니다.
가지는 나무에 붙어 있을 때만 살고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처럼 인간도
주님께 붙어 있을 때에만
참된 생명과 열매를 얻을 수 있습니다.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하느님과 점점 더 깊이 결합되어 가는 여정으로 보았습니다.
하느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우리 안에 당신 생명을 나누어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겉으로만 종교적 모양을 갖추는 일이 아니라
내면이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안에 머물러라” 하시는 말씀은
바로 이 참여의 신비를 드러냅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말씀하십니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 말씀은 우리를 작아지게 하려는 말이 아니라
생명의 진실을 알려 주는 말씀입니다.
나지안조의 그레고리오는
인간이 스스로 완전해질 수 있다고 여기기보다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비로소 참된 존재가 된다고 보았습니다.
우리는 홀로 빛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하느님의 생명에 붙들릴 때
비로소 열매를 맺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꾸짖음이기보다
은총의 자리로 돌아오라는 초대입니다.
오늘 복음의 핵심은
결국 머무름입니다.
열매는 조급함에서 나오지 않고
머무름에서 나옵니다.
가지는 스스로 열매를 짜내지 않습니다.
줄기에서 오는 생명이
조용히 흘러들 때
열매는 자연스럽게 맺힙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도, 사랑도, 인내도, 일치도
억지로 만들어 내는 성과가 아니라
주님 안에 머무를 때 자라나는 열매입니다.
돌봄 주간의 관점에서 보면
오늘 복음은 돌봄의 본질을 아주 깊이 보여 줍니다.
돌봄은 말라 가는 가지를 책망하는 일이 아니라
그 가지가 다시 생명의 줄기에 붙어 있도록 살피는 일입니다.
사람이 지치고 메마를 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압박이 아니라
다시 연결되는 은총입니다.
주님과의 연결,
이웃과의 연결,
자기 내면과의 정직한 연결이
회복을 시작하게 합니다.
오늘은 수요일, 그리스도인 일치의 날이기도 합니다.
이 복음은 일치의 신비를 아주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가지들이 서로 직접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나무에 함께 붙어 있습니다.
교회의 일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서로를 억지로 붙드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참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께 깊이 붙어 있을 때
비로소 일치는 자라납니다.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도
교회의 일치를 단순한 조직적 통합이 아니라
같은 하느님의 생명 안에 머무는 친교로 보았습니다.
주님과 멀어질수록 서로도 멀어지고,
주님 안에 깊이 머물수록 서로에게도 가까워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매 맺는 가지도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시려고
깨끗하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때때로 아프게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지치기는 버림이 아니라
더 깊은 생명을 위한 돌보심입니다.
우리 삶에서 덜어 내야 할 것들,
집착, 조급함, 자기중심성, 오래된 상처의 반복이 정리될 때
더 맑은 생명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회복은 때로
무언가를 더하는 일보다
불필요한 것을 덜어 내는 일에서 시작됩니다.
오늘 우리는 조용히 묻습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 붙어 있는가?
성과와 인정, 불안과 비교, 습관과 집착에 붙어 있는가,
아니면 참포도나무이신 주님께 붙어 있는가?
내 삶의 메마름은
혹시 열매가 없어서가 아니라
줄기에서 멀어졌기 때문은 아닌가?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더 많은 일보다
더 깊은 머무름을 청하십니다.
주님,
제가 당신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겸손히 받아들이게 하소서.
메마른 마음을 다시 당신께 붙이게 하시고
조급함보다 머무름을,
성과보다 생명을,
고립보다 일치를 선택하게 하소서.
당신 안에 머무르며
회복의 열매를 맺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