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26,14–27,66
오늘 복음은 길고 무겁습니다.
유다가 은전을 받고 예수님을 넘기는 장면에서 시작해,
최후의 만찬, 겟세마니의 고뇌, 체포와 재판,
베드로의 부인, 십자가, 무덤에 이르기까지
구원의 중심 사건을 따라갑니다.
성 예로니모는
복음을 “읽는 일”이 지식 축적이 아니라
자기 삶을 그 말씀으로 심판받게 하는 일이라고 가르칩니다.
특히 수난기는
남의 죄를 비판하기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내 안의 유다와 베드로를 보게 하는 거울입니다.
• 유다의 배신은 단지 악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보다 계산을 먼저 두는 마음의 유혹을 드러냅니다.
• 베드로의 부인은 단지 약자의 실패가 아니라
두려움 앞에서 관계를 숨기고 싶은 인간의 본능을 보여 줍니다.
• 십자가는 폭력의 승리가 아니라
끝까지 사랑하신 하느님의 방식입니다.
영적 성찰 주간의 일요일, 우리는 묻습니다.
나는 언제 사랑을 팔았는가?
나는 언제 두려움 때문에 침묵했는가?
그리고 주님은 그 자리에서 나를 어떻게 바라보셨는가?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에서
빵을 떼어 “이는 내 몸이다” 하시며
당신 자신을 내어주십니다.
예로니모의 눈으로 보면
성체는 수난의 기억이 아니라
수난을 통과한 사랑의 현재입니다.
우리가 성체를 모신다는 것은
“나는 아직도 배신할 수 있는 사람”임을 인정하면서도
“그럼에도 주님은 나를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자비의 진실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무덤은 끝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새 역사를 준비하시는 침묵의 자리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 침묵 앞에서 성찰합니다.
내가 끝이라 여긴 자리에서
주님은 무엇을 준비하고 계시는가.
그리고 나는 다시 어떤 선택을 하려 하는가.
주님,
수난의 길을 읽으며
남을 판단하기 전에
제 마음을 먼저 보게 하소서.
배신과 두려움의 자리에서도
저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당신의 사랑을 믿게 하시고,
성체로 새로워진 오늘
다시 사랑을 선택하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