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독서와 복음은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그런데 복음의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허풍 같습니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날을 보리라고 즐거워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 기뻐하였다.”
그런데 이런 것이 가능합니까?
믿음이 대단하면 이리 멀리까지 내다볼 수 있는 겁니까?
아브라함과 주님과의 시간 차이가 적어도 2천 년은 될 텐데
아브라함은 주님의 날을 보리라는 희망의 즐거움과
희망하는 것이 이루어질 것을 내다보는 기쁨을 지닌 겁니다.
제 생각에 믿음은 여러 가지입니다.
첫째는 능력의 하느님께 대한 믿음입니다.
한 말씀만 하셔도 다 이루실 것이라고 믿는 백인대장의 믿음,
하시고자 하시면 하실 수 있다고 믿은 나병환자의 믿음
하느님께는 불가능이 없다고 믿으신 마리아의 믿음이 그것입니다.
둘째는 사랑의 하느님께 대한 믿음입니다.
세상의 아비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아는데
하늘의 아비는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요,
그래서 하느님께서 내게 주시는 것은 다 좋은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셋째는 성실하신 하느님께 대한 믿음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을 어김없이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요,
우리는 성실하지 못해도 하느님은 성실한 분이라는 믿음입니다.
이런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도 여러 가지입니다.
이런 하느님께 나의 전부를 열어 보이는 개방의 믿음이요,
이런 하느님께 나의 전부를 맡겨 드리는 의탁의 믿음이요,
이런 하느님을 믿고 욕심과 걱정을 내려놓는 비움의 믿음이요,
하느님께서 부르시면 어디든지 따라가는 추종의 믿음입니다.
제 생각에 아브라함의 믿음은 이 모든 믿음의 총합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약속에 성실하신 하느님께 대한 믿음,
오늘 저는 이것을 톺아보고자 합니다.
그는 늙은 나이의 자기들에게 별과 같이 많은 자식을 약속하신 하느님을 믿습니다.
주신다고 하셨지만 뜸을 들이시는 하느님께 실망하거나 절망치 않고
곧 약속의 시간이 오래 걸려도 희망을 놓지 않고 끝까지 기다립니다.
그는 약속의 시간만 믿은 것이 아닙니다.
약속의 땅을 향해 떠나라는 것도 믿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고향을 떠나야 했고,
가진 것을 포기해야 했으며
그래서 모든 안정을 포기해야 했고
대신 나그네 살이 불안과 불안정을 온통 선택해야 했습니다.
그가 고향을 떠난 것은 정든 곳을 떠나는 것 뿐 아니라
하느님 한 분만 믿고 정든 사람도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천국 여정을 떠나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하느님 한 분만 바라보고 떠나는 것이고,
그분이 약속하신 그 상급만 바라보고 떠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을 바라보고 천국을 내다본 참 관상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느님만 바라봤기에 타향을 본 고향이라고 볼 수 있었던 아브라함처럼,
시간이 아무리 걸려도 본 고향에 갈 날을 희망을 가지고 내다봤던 아브라함처럼
우리도 참 관상의 사람이 되면 참 좋겠습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