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8,51–59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내 말을 지키면 그는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격렬하게 반발합니다.
“아브라함도 죽었고 예언자들도 죽었는데,
당신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하느냐?”
그리고 예수님께서 결정적으로 선언하십니다.
“아브라함이 있기 전부터 내가 있다.”
그들은 돌을 집어 들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 가운데를 지나가십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 대목에서 사람들의 분노를
‘이해 부족’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그는 인간이 자기 기준을 지키기 위해
진리 자체를 거부할 수 있다고 말하듯 경고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위로의 문장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우리의 삶 전체를 바꾸라는 초대입니다.
“내 말을 지키라”는 것은
지식으로 동의하라는 말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나에게 맡기라는 부르심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공격하는 이유는
예수님이 “너무 큰 말”을 해서가 아닙니다.
그 말이 자기 세계를 흔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설명’하지 않으십니다.
죽음을 통과하는 길을 여십니다.
그 길은 ‘내 방식’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입니다.
영성 주간의 오늘, 복음은 묻습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가?
죽음 그 자체인가,
아니면 통제할 수 없게 되는 불안인가.
크리소스토모의 눈으로 보면
주님은 우리에게
두려움의 뿌리를 건드리십니다.
“너는 네가 주인이라고 착각해 왔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있다’.”
즉, 너의 흔들리는 삶의 바닥이
너 자신이 아니라 하느님이라는 것.
그래서 “영원한 생명”은
먼 미래의 보상만이 아니라,
지금 내 안에서
두려움이 줄고
하느님께 대한 신뢰가 자라는
현재의 회복이기도 합니다.
주님,
제가 두려움 때문에 돌을 쥐지 않게 하시고
당신의 말씀을 붙잡게 하소서.
“내가 있다” 하시는 당신 안에서
오늘도 흔들리지 않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