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인간영혼과 자연의 회복)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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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요한 1,51)
확언의 의미인 ‘진실로 진실로’
우리 구원자께서 ‘진실로’[‘아멘’]라는 말을 때로는 한 번, 때로는 두 번씩 사용하십니다. 당신의 말씀을 확인해 주고자 하실 때 그렇게 하십니다. 이것은 히브리식 어법으로, 그 말 뒤에 이어지는 내용을 너에게 분명히 약속한다는 뜻입니다. 이 경우엔, '하늘이 열리는 것을’ 너는 분명히 보게 될 것이라는 뜻이지요. 그분께서는 하늘이 열리는 것과 천사들이 예수님께 시중들기 위하여 오는 것을 감각으로가 아니라 마음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정말로,진짜로’라고 쓸 수도 있겠지만 ‘진실로’ ['아멘‘]가 여기에 더 잘 맞습니다.
-암모니우스-


마이스터 엑카르트는 이렇게 말했다(대지를 품어 안은 엑카르트 영성) / 매튜 폭스 해제 · 주석
【셋째 오솔길】
돌파하여 자기 하느님을 낳기
어떻께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지 잘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우리가 자녀와 똑같은 본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이 누구와도 닮지 않으셨는데, 어떻게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이며,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을 어찌 알 수 있을까요? 하느님이 누구도 닮지 않았다는 진술은 물론 옳습니다. 이사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이 누구의 모습이라도 닮았다는 말이냐? 어떤 모습이 그를 닮을 수 있다는 말이냐?”(이사 40,18). 하느님은 누구와도 닮지 않았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느님의 본성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지점에 이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지점에서만 우리는 그분 자신과 같은 본질 속으로 옮겨질 수 있습니다. 내가 그 지점에 이르러, 나 자신을 어떠한 상에도 투영하지 않고, 내 속에서 어떠한 상도 상상하지 않고,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내던질 때, 비로소 나는 하느님의 적나라한 존재 - 본질 - 속으로 옮겨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성령의 순수한 본질입니다. 거기에서는 모든 비교가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하느님 안으로 옮겨져, 그분과 하나가 되고, 하나의 실체와 하나의 본질과 하나의 본성이 되고, 마침내 하느님의 자녀가 됩니다.(477)


<금주간 성서읽기> 루카 22-24장 / 1코린 1-2장
<생태 문화 주간> 음악/미술/독서 등. 생태 품앗이


2코린 2,6-16
하느님의 지혜
성숙한 이들 가운데에서는 우리도 지혜를 말합니다. 그러나 그 지혜는 이 세상의 것도 아니고 파멸하게 되어 있는 이 세상 우두머리들의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신비롭고 또 감추어져 있던 지혜를 말합니다. 그것은 세상이 시작되기 전, 하느님께서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미리 정하신 지혜입니다.
이 세상 우두머리들은 아무도 그 지혜를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이 깨달았더라면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되었습니다. “어떠한 눈도 본 적이 없고 어떠한 귀도 들은 적이 없으며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른 적이 없는 것들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련해 두셨다.”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그것들을 바로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그리고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십니다.
그 사람 속에 있는 영이 아니고서야, 어떤 사람이 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영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하느님의 생각을 깨닫지 못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영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오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선물에 관하여, 인간의 지혜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가르쳐 주신 말로 이야기합니다. 영적인 것을 영적인 표현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세적 인간은 하느님의 영에게서 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한 사람에게는 그것이 어리석음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영적으로만 판단할 수 있기에 그러한 사람은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영적인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할 수 있지만, 그 자신은 아무에게도 판단받지 않습니다.
“누가 주님의 마음을 알아 그분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