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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레오나르도 2025.09.28 02:12

연중 제26주일-행복의 역전

조회 수 162 추천 수 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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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페이지 루비 2025.09.28 04:32:23
    - 행복의 역전

    거지 나라로와 부자에 대한 오늘의 비유는 잘 이해해야 합니다.

    루카 복음은 가난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병자들, 죄인들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을 다른 복음들보다 더 강조합니다.




    그래서 다른 복음에는 없는 얘기들이 있는데 이 얘기들이

    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강조하는 것들입니다.



    잃었던 아들의 비유,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

    과부의 외아들을 살리시는 이야기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런가 하면 부자들, 율법 학자들, 바리사이 등 사회적 강자에 대한

    예수님의 비판, 불행 선언을 전하는 얘기도 있습니다.




    상속 시비, 어리석은 부자 이야기가 그 예이며

    마태오 복음은 사회적 약자들이 행복하다고만 얘기하는 데 비해

    루카 복음은 사회적 강자들이 불행하다는 얘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도 루카 복음에만 나오는 얘기로

    가난한 사람과 부자의 역전되는 운명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여주는 아주 재미있는 내용이 바로 이름입니다.


    현세에서는 보통 사회적 강자들이 이름을 날리고 약자들은 이름도 없지요.



    예를 들어 대기업 총수는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이 알지만

    서울역 앞의 노숙자는 그저 노숙자라 부르고 아무도 이름을 모릅니다.

    그래서 노숙자를 일컬어 성은 노이고 이름은 숙자라고 농담하곤 하지요.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는 반대로 약자인 라자로는 이름이 있고

    강자인 부자는 이름도 없이 그저 어떤 부자라고만 합니다.

    이것만으로도 하늘나라에서는 재물이나 부자라는 것이

    얼마나 별거 아닌 취급을 받고 있는지 암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비유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부자는 무조건 지옥이고 가난한 사람은 무조건 천국이라고 이해하고,

    주님은 무조건 부자를 증오하고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셨다는 식으로

    이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식의 이해는 예수님을 계급 투쟁적인 공산주의와 같이 보는 것입니다.

    루카 복음 전체가 그렇지만 이 비유도 부자든 가난한 자든

    관계, 곧 사랑을 살았느냐, 아니면 그렇지 않았느냐가 관건입니다.




    따라서 부자의 문제는 돈이 많았던 것, 그 자체가 아니고

    관계를 맺지 않고 살았던 것이 문제입니다.


    어떤 관계입니까?



    먼저 하느님과의 사랑의 관계인데 보통 재물이 많으면

    하느님보다 재물을 더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

    루카 복음뿐 아니라 모든 복음의 관점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물신(物神)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보다

    더 힘 있고, 더 가까우며, 더 만족스럽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과의 사랑의 관계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이 경우 오늘 복음에서처럼 당연히 이웃과의 관계도 단절입니다.



    부자는 라자로의 존재를 분명 알고 있었습니다.

    죽은 다음 아브라함에게 도움을 호소할 때 라자로를 보내

    그 손가락으로 물을 찍어 자기 혀를 식히게 해달라고 하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이렇게 자기가 필요할 때는 라자로라는 존재를 떠올리지만

    자기가 호의호식할 때는 라자로라는 존재를 무시했습니다.



    라자로는 그의 문간에 있었기에 들락날락할 때마다 보았지만

    눈여겨볼 가치가 없는 존재였고 오히려 성가신 존재일 뿐이었습니다.


    나에게 돈이 되지 않을 존재일 뿐 아니라

    내가 조금이라도 인정을 베풀려고 하면 내 돈을 축내게 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니 내 마음에서 이런 존재에 대한 인정은 아예 싹둑 잘라내야 하고

    아예 눈길조차 주지 말아야 합니다.

    보고 나면 마음이 편치 않을 테니 아예 보지 않거나 못 본 체해야 합니다.


    저도 종종 그러합니다.



    서울역에 갈 때 앞으로 가지 않고 뒤로 갈 때도 있습니다.

    앞으로 가면 노숙자들이 진을 치고 있기 때문인데 그러다

    내가 피하면 안 되지! 하고 마음을 고쳐먹고 고작

    화살기도를 그들을 위해 바치며 앞으로 지나쳐가곤 합니다.




    이런 저에게 어제 축일을 지낸 빈첸시오 성인은 “우리 마음의 새로워진 열성으로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하고 무엇보다 가장 버림받은 이들을 찾아내도록 합시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우리에게 주인이요 지배자로 주셨기 때문입니다.”라고 합니다.
    행복의 역전


    거지 나라로와 부자에 대한 오늘의 비유는 잘 이해해야 합니다.

    루카 복음은 가난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병자들, 죄인들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을 다른 복음들보다 더 강조합니다.




    그래서 다른 복음에는 없는 얘기들이 있는데 이 얘기들이

    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강조하는 것들입니다.



    잃었던 아들의 비유,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

    과부의 외아들을 살리시는 이야기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런가 하면 부자들, 율법 학자들, 바리사이 등 사회적 강자에 대한

    예수님의 비판, 불행 선언을 전하는 얘기도 있습니다.




    상속 시비, 어리석은 부자 이야기가 그 예이며

    마태오 복음은 사회적 약자들이 행복하다고만 얘기하는 데 비해

    루카 복음은 사회적 강자들이 불행하다는 얘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도 루카 복음에만 나오는 얘기로

    가난한 사람과 부자의 역전되는 운명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보여주는 아주 재미있는 내용이 바로 이름입니다.


    현세에서는 보통 사회적 강자들이 이름을 날리고 약자들은 이름도 없지요.



    예를 들어 대기업 총수는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이 알지만

    서울역 앞의 노숙자는 그저 노숙자라 부르고 아무도 이름을 모릅니다.

    그래서 노숙자를 일컬어 성은 노이고 이름은 숙자라고 농담하곤 하지요.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는 반대로 약자인 라자로는 이름이 있고

    강자인 부자는 이름도 없이 그저 어떤 부자라고만 합니다.

    이것만으로도 하늘나라에서는 재물이나 부자라는 것이

    얼마나 별거 아닌 취급을 받고 있는지 암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비유를 잘 이해해야 합니다.

    부자는 무조건 지옥이고 가난한 사람은 무조건 천국이라고 이해하고,

    주님은 무조건 부자를 증오하고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셨다는 식으로

    이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식의 이해는 예수님을 계급 투쟁적인 공산주의와 같이 보는 것입니다.

    루카 복음 전체가 그렇지만 이 비유도 부자든 가난한 자든

    관계, 곧 사랑을 살았느냐, 아니면 그렇지 않았느냐가 관건입니다.




    따라서 부자의 문제는 돈이 많았던 것, 그 자체가 아니고

    관계를 맺지 않고 살았던 것이 문제입니다.


    어떤 관계입니까?



    먼저 하느님과의 사랑의 관계인데 보통 재물이 많으면

    하느님보다 재물을 더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

    루카 복음뿐 아니라 모든 복음의 관점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물신(物神)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보다

    더 힘 있고, 더 가까우며, 더 만족스럽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과의 사랑의 관계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이 경우 오늘 복음에서처럼 당연히 이웃과의 관계도 단절입니다.



    부자는 라자로의 존재를 분명 알고 있었습니다.

    죽은 다음 아브라함에게 도움을 호소할 때 라자로를 보내

    그 손가락으로 물을 찍어 자기 혀를 식히게 해달라고 하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이렇게 자기가 필요할 때는 라자로라는 존재를 떠올리지만

    자기가 호의호식할 때는 라자로라는 존재를 무시했습니다.



    라자로는 그의 문간에 있었기에 들락날락할 때마다 보았지만

    눈여겨볼 가치가 없는 존재였고 오히려 성가신 존재일 뿐이었습니다.


    나에게 돈이 되지 않을 존재일 뿐 아니라

    내가 조금이라도 인정을 베풀려고 하면 내 돈을 축내게 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니 내 마음에서 이런 존재에 대한 인정은 아예 싹둑 잘라내야 하고

    아예 눈길조차 주지 말아야 합니다.

    보고 나면 마음이 편치 않을 테니 아예 보지 않거나 못 본 체해야 합니다.


    저도 종종 그러합니다.



    서울역에 갈 때 앞으로 가지 않고 뒤로 갈 때도 있습니다.

    앞으로 가면 노숙자들이 진을 치고 있기 때문인데 그러다

    내가 피하면 안 되지! 하고 마음을 고쳐먹고 고작

    화살기도를 그들을 위해 바치며 앞으로 지나쳐가곤 합니다.




    이런 저에게 어제 축일을 지낸 빈첸시오 성인은 “우리 마음의 새로워진 열성으로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하고 무엇보다 가장 버림받은 이들을 찾아내도록 합시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우리에게 주인이요 지배자로 주셨기 때문입니다.”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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