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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6월 15일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모후’(찬미받으소서 241항)로 모시며 중동과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생태적 회심(인간영혼과 자연의 회복)을 지향하는 온라인 기도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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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15일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고 도미니코 신부
교회는 성령강림 대축일 다음 주에 삼위일체 대축일을 기념합니다. 삼위일체는 하나의 실체(實體) 안에 세 위격(位格)으로 존재하는 하느님의 신비를 말합니다. 삼위일체 신비는 한 분이신 하느님 안에 삼위가 계시다는 신앙교리입니다. 이 신비는 인간의 지혜로는 완전히 알아듣기 힘들지만 하느님께서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 주신 바대로 한분이신 하느님께서 세 위격, 즉 성부이신 하느님과 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으로 계심을 말합니다.
이는 마치 태양과 태양에서 나오는 빛과 그 빛에서 발하는 열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결합되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바라보며 우리 또한 일상의 삶에서 생각과 말과 행동이 일치된 삼위일체적인 삶을 사는지 성찰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삼위일체적 삶을 드러내는 사람은 참된 회개를 한다고 말할 수 있으며 참된 신앙이며 살아 있는 성인일 것입니다.
삼위일체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가 얘기하는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은 하느님의 자녀답게 생각과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모습을 드러내야 합니다.
이러한 삼위일체적인 삶은 하느님의 영, 특히 분별의 영으로 인도될 때 가능합니다.
분별의 영은 우리가 살아가는데 특별히 다음과 같은 것들을 인도합니다.
분별의 영은 절도 있는 삶을 살게 합니다..
분별의 영은 모든 사람과 상황과 사정에 올바른 태도와 자세를 취하게 합니다.
분별의 영은 현명하고 지혜롭게 비밀을 간직하게 합니다.
분별의 영은 사람과 사정에 따라 잘 생각하여 배려하게 합니다.
분별력은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 조심성 있게 대하게 합니다.
이렇게 분별의 영이 생각과 말과 행동에 깃들게 되면 영으로 충만하여 그다지 말을 많이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게 됩니다. 꼭 필요한 말 외에는 하지 않게 되고 자연 스럽게 절제 있는 말이
나옵니다. 말보다는 행동이 앞서게 됩니다.
하느님의 영에서 오는 이 분별의 영으로 인도되는 삼위일체적 삶은 다른이들이 지켜 보지 않을 때에도 언제나 행동에 항구적 성실성을 지니며 어떠한 비판이나 아첨에도 동요되지 않는 평화를 간직하게 됩니다. 행동은 생각과 말씀의 결실이며 존재의 문이며 창입니다. 우리가 행동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행동하는 신앙이되어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 명령하고 가르치는 것을 말과 표양으로 드러내는 복음의 증거자가 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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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다락방 6월 3주간✝️
<금주간 성서읽기> 마르 14-16장
<생태 문화 주간> 음악/미술/독서 등. 생태 품앗이

✝️ 일요일 성체의 날✝️
성체성사(현존, 희생, 그리고 친교의 신비) / 로렌스 페인골드
제 1부
기초
제 1장
그리스도께서 왜 성체성사를 제정하셨는가?
성체성사에 대한 적합성의 이유들
그리스도께서 왜 성체성사를 제정하셨는가? 이 간단한 질문을 던지면서, 우리는 하느님의 가장 위대한 경이 중 하나에 대한 적합성의 이유를 찾고 있습니다. 이러한 질문을 하는 것은 신학의 핵심 부분으로, 신학은 "믿음이 이해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이 어떤 일을 하셨다는 것을 믿음을 통해 아는 경우, 우리는 그 일을 하신 이유와 그 일이 하느님과 그분의 계획에 대해 우리가 아는 다른 모든 것과 어떻게 맞아떨어지는지를 이해하고자 자연스럽게 열망하게 됩니다. 적합성에 대한 주장은 계시된 진리를 증명할 수는 없으나, 믿음을 전제로 하여 그 이유를 이해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우리는 하느님의 계획을 보다 깊이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영적 양식의 성사
토마스 성인이 『신학대전』에서 성체성사의 신비를 다룰 때, 그는 왜 예수께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시는 것이 적합했는지를 묻는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그는 신체적 삶에 필요한 것과 우리의 은혜로운 초자연적 삶에 필요한 것 간의 유사성을 비유로 들어 설명합니다. 우리의 신체적 삶에서는 출생, 성장, 양식이 필요합니다. 영적 삶에서도 우리는 출생, 성숙으로의 성장, 그리고 양식이 필요합니다. 영적인 출생은 세례에 의해 주어지고, 영적인 성숙으로의 성장은 성체성사에 의해 주어지며, 영적 양식은 성체성사로 주어집니다:
"교회의 성사는 영적 생활에서 사람을 돕기 위해 제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영적 생활은 물질적 생활과 유사하므로, 물질적 사물은 영적인 것과 유사성을 가집니다. 이제 물질적 삶에 필요한 존재가 있듯이, 사람은 생명을 받기 위해 출생이 필요합니다. 또한, 성숙으로 가는 성장도 필요합니다. 따라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음식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영적 삶을 위해서는 영적 출생인 세례가 필요했고, 영적 성장인 확증이 필요하며, 영적 양식인 성체성사가 필요했습니다."(33)
성사는 자연이 우리의 기본적인 삶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방식과 유사하게, 우리에게 초자연적인 생명을 줍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성체성사는 인간이 양식을 필요로 하듯, 초자연적인 차원에서 우리의 영적 양식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우리가 날마다 먹고 마심으로써 육체를 기르고 힘을 보충하고 성장하듯, 우리는 성체성사를 통해 우리의 초자연적인 생명—곧 우리 안에 살아 계신 그리스도의 생명—을 기르고 보충하며 자라게 합니다. 이 생명은 무엇보다도 성화의 은총과 사랑(카리타스)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체성사를 영원한 생명의 양식으로 제정하셨습니다. 따라서 이 성사는 우리에게 은총을 먹이시며, 우리가 실제로 그리스도를 모심으로써 그분과의 깊은 일치를 강하게 해주는 영적 양식을 만들어냅니다.
음식과 음료가 우리의 몸 안에 들어오면, 그것들은 우리 몸의 일부로 변화되어 우리의 생명을 유지하고 힘을 더해줍니다. 이로써 음식과 우리 사이에는 밀접한 일체감이 생기고, 음식은 우리와 하나가 됩니다. 이는 성체성사의 또 하나의 상징적 의미를 보여줍니다. 성체성사는 '친교의 성사'로서, 우리가 받아 모시는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에 깊은 일치를 이루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음식이 우리 몸으로 변하는 것과는 달리,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로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성체성사를 통해 우리가 영적으로 그리스도의 모습에 더욱 가까워지도록 변화됩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그의 『고백록』에서 그리스도의 음성을 이렇게 들었다고 전합니다. “나는 강한 자들의 양식이다. 자라나라, 그러면 너는 나를 먹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너는 네 육신의 음식처럼 나를 너로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네가 나로 변화될 것이다.”(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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