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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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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성 마르코의 기적(Miracolo di San Marco :1547-1548)
작 가 : 야고보 틴토레토 (Jacopo Tintoretto:1519-1594)
규 격 : 목판 유화 415X541cm
소 재 지 : 이태리 베네치아 아카데미아 미술관

교회 미술은 성서에 나타나고 있는 사건인 주님의 탄생과 십자가의 부활이라는 주제로부터 시작하다가 점점 폭을 넓히면서 성모님의 생애, 예수님 제자들과 성인의 생애로 확대되면서 성서에도 없는 사건들 특히 성인들의 전구로 일어나는 기적이 주제로 등장하게 되는데, 이 작품은 바로 여기에 속한다.

작가의 생애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으나 틴토레토( Tintoretto )라는 그의 이름은 집안의 직업이 염색공이었다는 데서 유래하고 있으며, 당시 유럽을 석권하던 선배 화가 티치아노((Tiziano : 1489- 1576)와는 전혀 다른 귀족적인 풍모보다 서민적인 작품(作風)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진 작가이다.

그가 작가로서 세상으로부터 독립적 작품으로 인정받은 대표작으로 넓은 타원형으로 둘러싼 군중 들 한 가운데 화면으로 튀어나올 것 같이 역동적인 모습으로 노예가 누워 있어 관객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노예에게 향하도록 배려되어 있다.

· 기적의 주인공인 성 마르코는 성 바르나바의 조카로서 성서에 몇 번 나타나고 있는 인물인데, 성 바울로의 첫 번 째 선교여행에 동행했고 나중에 그를 따라 로마에 가서 성 베드로의 제자가 되어 자신의 복음서에 그의 가르침을 반영시켰으며, 베드로의 순교 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Alxandria)에 가서 교회를 세우고 선교하다 순교했다. 그는 베네치아의 수호성인이 되었으며, 따라서 여기에는 어느 국가나 도시에서도 볼 수 없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베네치아는 서기 425년 랑그바르도 족들의 침입을 피해 육지에서 피난 온 피난민들이 갯벌 위에 새운 도시이다. 나라 만들기가 그들의 민족성을 반영하기 마련이인데, 베네치아인들은 삶의 기본인 땅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다른 민족이 상상을 할 수 없는 노력을 치루어야 했고 그 결과로 베네치아는 세상에서 손꼽히는 우수하고 아름다운 도시가 되었다.

갯벌위에 삶의 터전을 이루어 살만해졌을 때 베네치아인들은 지금의 알렉산드리아에 있던 성 마르코의 유해를 모셔다 수호성인으로 모시게 된다. 연대기에 의하면 828년 베네치아 상인 두 명이 알렉산드리아에 무역 차 방문하면서 마르코 성인의 유해를 모신 수도원을 방문했다.

알렉산드리아는 초대교회에서 다섯 개의 대주교구중 하나로 여겨질 만큼 신앙의 바탕이 있는 도시였으나, 새로 시작된 이슬람들에게 점령되면서 교회는 서서히 박해를 받으면서 하루가 다르게 쇠퇴하던 시기였다.

두 상인들은 그 유해를 모시고 있던 수도원 원장에게 무슬림들에게 점령된 이곳에서는 성인의 유해를 보존하기가 너무 위험하니 안전한 곳으로 모실 수 있도록 하자고 설득한 후 후한 돈을 지불하고 베네치아로 운반키로 했다.

그런데 항구를 떠나기 위한 세관 검사가 문제였다. 두 상인은 성인의 유해를 배 밑바닥에 숨긴 후 그 위에 무슬림 교도들이 가장 싫어하는 돼지를 잡아 덮어두자 놀란 세관원들이 통과를 시키게 되어 무사히 베네치아에 도착하게 된다.

이들은 항해 과정에서 폭풍 등 여러 어려움을 당했으나 하느님의 보호를 체험할 수 있는 여러 기적의 힘으로 무사히 베네치아 항구에 도착하게 되고 총독을 위시해서 전 베네치아 시민들의 영접을 받으며 유해가 성 마르코 성당에 모셔지면서 유럽에 많은 순례자들이 베네치아를 순례하게 되고 이때부터 성인의 도움으로 이루어진 여러 기적 일화들이 생기게 되며 이 작품도 그 일화 중 하나이다.

중세기 성인전인 황금전설에 의하면 프로방스 지방 영주에 속한 어떤 노예가 성 마르코에 대해 대단한 신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죽기 전에 한번 베네치아를 순례하는 것을 소원으로 여기며 살다 열정에 사로잡혀 주인의 허락도 없이 성 마르코 대성당의 유해를 참배한 후 성인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봉헌한다는 서약을 하고 주인에게 돌아갔다.

자기의 허락도 없이 순례한 노예의 행동에 격분한 영주는 노예의 눈을 빼고 다리를 자르는 극형을 선고하고 종들을 시켜 이것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기적이 일어나게 된다. 여러 사람이 아무리 고문을 해도 이 노예의 몸에 아무런 상처를 낼 수가 없자, 주인은 이 순수한 믿음을 지닌 노예를 학대한 자신의 행동을 참회하고 자신도 성 마르코 대성당에 가서 참회하고 새 사람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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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작품의 중심에 발가벗겨진 노예가 누워있으며 그 주위로 이 노예에게 형벌을 가하기 위한 고문도구가 진열되어 있고 우악스러운 몸집의 사나이가 창으로 노예를 찌를 자세를 위하고 있으며 그 옆엔 망치를 든 사내가 다음 동작을 준비하고 있다.

그 외에 다른 두 사나이도 이름을 알 수 없는 무기를 들고 노예를 해칠 준비를 하고 있다. 노예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 무방비 상태의 나신이나 노예로 보기엔 그의 모습은 너무 준수하고 기품이 있다. 나체가 주는 관능성이 아닌 십자가에 달린 주님의 모습처럼 경건한 분위기를 창출하고 있다.

작가는 여기에서 하느님만을 의지하는 인간의 고귀함을 제시하면서, 이 노예는 그의 순수하고 열렬한 신앙으로 인해 노예가 아니라 하느님의 귀한 자녀가 되었음을 상징하고 있다.
이것은 마치 마르코 복음에 나타나고 있는 주님의 말씀과 같다.


주님께서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계실 때, 성모님과 형제들이 주님을 만나러 왔다는 전갈을 받게 되고 이때 주님은 참으로 폭탄선언을 하신다.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 그리고 당신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이고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이다”(마르코 3, 34-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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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전구를 통해 주님께로 나아가고자 했던 노예가 신앙 때문에 죽음을 당할 위기에 처하자 하늘에서 성 마르코가 노예를 구하기 위해 내려온다. 노예를 죽이기 위해 동원된 병사들의 일부가 혼비백산이 되는데, 이것은 마치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시는 순간의 모습을 상기시킨다.

“주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더니 무덤으로 다가가 무덤의 돌을 옆으로 굴리고서는 그 위에 앉는 것이었다. ......무덤을 경비하던 사람들은 천사를 보고 두려워 떨다가 까무러 쳤다”(마태오 28, 2- 3).

넘어진 병사 중 하나는 상체를 벗은 몸으로 있고 그 옆의 병사는 진홍색 갑옷을 입고 있다. 마지막의 병사는 날아오는 창을 막을 수 있는 그물 옷을 입고 있는데, 밝은 색과 어두움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하느님의 현현앞에 당황하는 어둠의 인간들의 실상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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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부분에 칭얼대는 아기를 안은 채 뒷모습을 보이는 여인으로 시작되어 연결고리처럼 계속 이어진 군중들은 노예의 발치에서 서서 순례의 죄를 지은 노예의 다리를 자르기 위해 망치를 들고 있는 노란 옷의 형리에 까지 이어지는데 이 물결같은 인간 군상은 바로 당시 유행하던 마네리즘(manerism)의 기법이다.

이것은 르네상스에서 바로크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유행하던 화풍으로 인물들의 표정을 길게 늘어지게 하거나 뒤틀리게 표현함으로서 역동감을 더하고 있다. 작품의 여러 곳에 터번을 쓴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무슬림 교도들이다. 안타깝게도 중세기 교회는 무슬림 교도들을 악마의 화신으로 간주했기에 모든 야만적인 것 잔인한 것, 악한 것의 상징으로 무슬림 교도들을 매도했기에 착한 노예를 처벌하는 악한 형리들 틈에 무슬림 복장의 사람들을 등장히키고 있다.

다행히 오늘의 교회는 이런 부끄러운 과거를 반성하면서 어느 종교 보다 더 무슬림 교도들의 밝은 면을 강조하는 것은 퍽 다행한 일이다.

여인의 머리 위로 보이는 세 개의 검은 기둥은 유명한 건축가인 산소비노((Sansovino)가 만든 베네치아의 상징인 마르차나 도서관에 있는데, 이것은 베네치아 문화의 심볼로 남아 있다.

갯벌에 이룬 작은 도시 국가로서 주위 열강과 겨루기 위해 베네치아 인들은 어느 민족 못지 않게 학문 연구와 정보 수집을 중요시했는데, 여기엔 90만권의 장서와 귀중한 사료가 보존되어 있는 베네치아의 자랑이며 지성의 상징이다.

작가는 이 기적이 오늘 산 마르코 광장에서 일어난 것처럼 그림으로서 사람들에게 기적의 박진감과 현실감을 더하고 있다. 산 마르코 대성당은 말굽 모양의 건물에 둘러 싸여 있으며 나폴레옹이 베네치아를 정복한 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 표현했던 곳이다.

이 작품에 나타나고 있는 기둥 옆에는 분홍빛과 흰돌을 잘 조화시켜 지은 총독관저(Palazzo Ducale : 두칼레 궁전)와 단순한 선으로 대성당과 조화를 이루는 종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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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백미는 바로 성 마르코를 통해 하느님을 자기 삶의 모든 것으로 선택했던 한 순수한 인간을 죽음의 고통에서 구하기 위해 내려오는 성 마르코의 모습이다.
보통 종교화는 정적인 묘사를 통해 보는 사람들에게 안정과 평화를 선사하고 있으나, 이 그림의 역동적인 동선은 전혀 다른 대단한 역동성을 띄면서 보는 사람의 가슴을 설레게하고 흥분되게 만들고 있다.

터번을 두른 형리가 망치로 노예를 살해하기 위한 동작을 취한 위로 우람한 체격의 성 마르코가 내려오면서 “하던 짓을 중지하라”는 듯이 형리의 터번을 잡을듯한 모습을 취하고 있는데, 그의 손은 천치창조 때 하느님의 손처럼 우람차고 힘이있다.

붉은 색의 옷을 입은 성 마르코는 빛을 발하며 위험 중에 있는 노예 위를 덮치듯 내려오고 있다. 이것은 누가 보든지 위험 중에 노예를 구하고자 하는 힘찬 표현이며 시편 45편의 내용을 연상시킨다.

“ 하느님은 우리 힘 우리 숨는 곳,
어려운 고비마다 항상 구해 주셨기에,
성령 땅이 뒤흔들린 단들
산들이 해심으로 빠져 든단들
우리는 무서워하지 않으리라.
......................................
뭇 백성이 울부짖고 나라들이 흔들렸어도
한 소리 크게 치시니 땅은 녹아 버렸도다.
만군의 주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작가는 하느님의 힘에 전적으로 자신을 맡기고 있는 노예를 신앙인의 모델로 사용했다. 세상의 통념적인 노예와 전혀 다른 기품 있는 모습의 사나이가 생명을 앗아가고자 광기에 사로잡힌 형리들 사이에 있다.

결국 승리는 노예의 것이 되고 노예는 주님의 보호속에 새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이 작품을 완성할 당시 작가는 이미 인정받는 작가로서의 위치가 되었다. 성공의 정상에 선 작가는 어린 시절의 쓰라린 기억을 회상하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예술에의 꿈을 키우며 자질을 인정받던 작가는, 12세에 당시 유럽 최고의 화가로 인정받던 베네치아 출신의 티치아노 (Tiziano Veccello: 1489- 1576)의 문하생으로 들어간다.

어느 화가이든 자기 제자를 키우는 것은 자신의 분신을 남기는 것처럼 중요한 것이기에 티치아노 역시 여러 명의 제자가 있었으나, 어린 제자의 그림 솜씨를 본 티치아노는 놀람과 함께 불편한 심기가 되었다. 12세 소년 틴토레토의 솜씨가 보통이 아니기에 잘못 했다간 자기 자리를 빼앗기겠다는 불안감과 시기심에 열흘 만에 이 제자를 쫓아내 버렸다.

중세기의 도제(Apprentice)제도란 위계의 서열을 강조하는 동양의 사고방식과 비슷해서 군사부(君師父) 일체의 사고방식처럼 스승은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으니, 자질이 없고 무능해서가 아니라 유능해서 장래가 촉망된다는 질투에 의해 쫓겨난 어린 소년의 충격은 헤아리기 어렵다. 작가는 어떤 보복도 그 스승에게 돌리지 않고 자기의 길을 초연히 달려서 스승과 다른 성공의 정상에 올랐다.

티치아노는 성공과 명예를 위해서라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류사회와 접촉해서 당시 유럽의 실세였던 카롤로 대제의 초상화를 남김을 위시해서 귀족들과의 교제로 단단한 인맥을 구축한 사이 작가는 자유로운 화풍으로 많은 작품을 남기면서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작가로 성장했다. 아첨과 아부는 누구도 좋게 보지는 않지만 신분상승에는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티치아노는 자기 생애를 통해 잘 증거했다. 나체 모델을 구하기가 그리 쉽지 않았던 시대 영향도 있지만 작가는 자신을 이 작품의 노예 모델로 삼았다. 이것은 작가의 길에 들어서면서 받아야 했던 충격을 상처가 아닌 신앙으로 승화시키고자 했던 작가의 의도인지 모른다.

고대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Publius Ovidius Naso : BC 43- AD 17)는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 위대한 것은 시기의 표적이 되며, 솟아오른 산정은 홀로 바람을 맞는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하느님의 보호에 자신을 맡기는 사람은 어떤 역경에서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아첨과 아부, 질투와 시기의 유혹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선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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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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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페이지 그림자 2015.09.19 03:46:27
    자상하게 해설하시는 내용에서 사랑을 듬뿍담은 마음이 느껴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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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페이지 그림자 2015.09.19 03:44:03
    kyungju46@hanmail.net
  • ?
    홈페이지 이영미 2008.06.21 01:19:27
    성경과 함께 묵상할 수 있는 성화 이야기가 너무 좋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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