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도전입니다.
이제까지 너무도 확실하다고 여기며 살아온 세속적 가치들에 맞서,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를 선택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종교적인 위안을 택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붙잡아 온 기준과 성공의 방식과 안전의 논리를 넘어서는 결단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늘 익숙한 것에서 낯선 것으로 건너가는 용기이며, 손에 쥔 것을 내려놓고 보이지 않는 손길에 자신을 맡기는 모험입니다.
믿음은 또한 겸허함입니다. 내 힘만으로 이룰 수 없는 것들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이며, 내가 알고 있다고 여긴 것보다 내가 알지 못한 채 살아온 진실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인간은 스스로 식별해 낼 수 있는 것만으로 세상을 다 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믿음은 바로 그 지점에서 멈추어 섭니다. 그리고 고백합니다. 내가 보는 것은 너무 적고, 내가 아는 것은 너무 얕으며, 내가 붙들 수 있는 것은 너무 작다고. 그 고백 위에서 비로소 하느님의 지혜가 열립니다. 그 엄청난 너비와 깊이와 높이 앞에서 사람은 자신이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바로 그 자리에서 회심이 시작됩니다.
회심은 단지 죄를 뉘우치는 감정이 아니라, 세계를 바라보는 눈이 바뀌는 사건입니다. 이전에는 내 몫, 내 성취, 내 이름, 내 영광이 중요했다면, 이제는 선이 어떻게 흘러가는가를 보게 됩니다. 한 사람에게만 영광이 집중되면 그곳에는 곧 갈등의 씨앗이 자랍니다. 빛이 한 곳에만 머물면 그림자도 짙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쁨이 함께 나누어지고, 영광이 서로에게 분산되고, 감사가 공동체 안에 고르게 스며들면, 사람들은 경쟁 대신 축복 속에 머물 수 있게 됩니다. 참된 믿음은 나만 빛나는 자리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빛나는 자리를 기뻐하는 마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십자가는 패배의 표지가 아니라 자비의 백신입니다.
상처를 상처로 되갚지 않게 하고, 미움을 또 다른 미움으로 번식시키지 않게 하며, 폭력의 기억이 더 큰 폭력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막아 주는 하느님의 거룩한 면역입니다. 십자가는 고통을 없애 주는 마술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악에 물들지 않게 하는 은총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고통의 면역이며, 자비의 항체이고, 치유의 은혜입니다. 상처 입은 인간이 상처만을 남기며 살지 않도록, 아픈 기억이 또 다른 아픔의 원인이 되지 않도록,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심어주신 사랑의 깊은 방어막입니다.
그 사랑은 추상적이지 않습니다. 내어주는 사랑으로 우리 곁에 옵니다. 쏟아내는 사랑으로 메마른 마음을 적십니다. 용서받는 사랑으로 무너진 존재를 일으키고, 용서하는 사랑으로 닫힌 관계를 다시 엽니다. 놓아주는 사랑으로 집착의 사슬을 끊고, 허용하는 사랑으로 타인의 미숙함을 품어 줍니다. 견뎌내는 사랑으로 쉽게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는 사랑으로 아직 오지 않은 열매를 재촉하지 않습니다. 육화되는 사랑으로 말에 머물지 않고 삶이 되며, 살려내는 사랑으로 죽어가던 마음에 다시 숨을 불어넣습니다.
믿음은 결국 이 사랑을 선택하는 일입니다. 더 높아지려는 본능보다 더 낮아지려는 은총을 선택하는 것, 더 많이 가지려는 욕망보다 더 깊이 내어주려는 마음을 선택하는 것, 내 이름을 남기려는 열심보다 선의 흐름 속에 조용히 자신을 내어놓는 삶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언제나 나를 비우고 하느님을 넓히는 길이며, 내 공로를 주장하기보다 은혜의 흐름 안에 머무는 길입니다. 우리는 너무 자주 강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만, 믿음은 먼저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칩니다. 우리는 너무 자주 모든 것을 해내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만, 믿음은 해내지 못하는 나를 인정하는 자리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바로 그곳에서 사람은 비로소 자비를 배웁니다. 자신이 용서받아야 할 존재임을 아는 사람만이 용서할 수 있고, 자신이 붙들려 살아가는 존재임을 아는 사람만이 누군가를 끝까지 붙들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사상이나 감정이 아니라 삶의 방향입니다. 세속의 확실성에서 하느님의 신비로, 자기 확신에서 겸허한 경청으로, 독점된 영광에서 함께 나누는 기쁨으로, 심판의 손에서 자비의 손으로 건너가는 길입니다. 그리고 그 길 한가운데에 십자가가 서 있습니다. 그 십자가는 우리를 억누르는 무게가 아니라, 우리를 살려내는 백신입니다. 상처 입은 세상 속에서 끝내 사랑을 포기하지 않게 하는 하느님의 깊은 처방입니다.
믿음은 도전입니다. 그러나 그 도전의 끝에는 더 큰 평화가 있습니다. 믿음은 비움입니다. 그러나 그 비움의 끝에는 더 깊은 충만이 있습니다. 믿음은 십자가를 통과하는 길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십자가 안에서 우리는 자비의 항체를 얻고, 고통을 견디는 면역을 배우며, 마침내 누군가를 살려내는 사랑으로 다시 태어납니다.나의 것이 아닌 것들이 나를 통해 흘러갈 때, 나는 비로소 도구로 살아가는 자유를 알게 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자신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기도는 시간을 따로 떼어내는 일이 아니라 삶 전체를 하느님께 돌려드리는 일입니다. 길 위에서, 병상 위에서, 고통 속에서, 기쁨 속에서, 숨 쉬는 모든 순간이 하느님을 향한 응답이 되는 것. 그래서 기도는 입술의 소리가 아니라 삶의 방향입니다. 그리고 감사는 그 기도의 완성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자신을 쌓아 올리지 않습니다. 그들은 흐릅니다. 하느님의 선이 흐르듯, 자비가 흐르듯, 생명이 흐르듯. 흐릅니다. 그래서 흐름이 있는 곳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믿음은 도전이면서 동시에 안식입니다. 기도는 비움이면서 동시에 충만입니다. 감사는 가난이면서 동시에 기쁨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길 위에서 우리는 조금씩 십자가를 닮아갑니다. 상처를 주지 않는 존재로, 상처를 품는 존재로, 상처를 치유하는 존재로. 그리하여 마침내 우리의 삶 전체가 하느님께 드리는 하나의 기도, 하나의 감사, 하나의 사랑이 됩니다. 도구적 존재로 살아가는 기쁨과 자유와 평화가 언제나 너를 향해 흐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