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살아나는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오늘 독서와 복음의 말씀은 우리 관계를 생각하게 합니다.
지금 우리의 관계는 어떻고 미래 우리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지 말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관계는 어떻게 맺어졌고 미래는 어때야 하는지도 말입니다.
우리가 신앙인이라면 우리의 관계는 성소 곧 거룩한 부르심입니다.
프란치스코는 유언에서 “주님께서 나에게 형제들을 주셨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진실한 신앙인은 처음서부터 나와 관계 맺는 사람을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내게 보내주셔서 맺게 됐다고 하거나 그때는 그것을 몰랐지만
이제라도 하느님께서 그를 내게 보내주셨고 관계를 맺게 됐다고 믿습니다.
저희 수도자들은 이런 면에서 뚜렷합니다.
제가 같이 사는 형제자매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우연이 모여 살게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과 관계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이 삶으로 불러주셨고,
이 삶을 같이 살 사람들을 형제자매로 보내주셨다고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재물을 주신 것처럼 형제자매를 주신 것이고,
결혼한 사람에게는 역시 관계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배우자를 주셨고 그 관계를 통해서 자녀도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부르신 모든 목적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행실이 아니라 당신의 목적과 은총에 따라
우리를 구원하시고 거룩히 살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관계는 관계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우리 구원을 위해 맺어주신 거라는 믿음으로 서로를 보고 받아들여야 하고,
미래의 관계도 관계의 주인께서 새로 맺어주시는 대로 맺고 살아야 합니다.
오늘 독서의 바오로와 디모테오 관계가 우리의 모범입니다.
먼저 부르심을 받은 바오로가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디모테오와
영적인 부자 관계를 맺고 자신의 안수로 그가 받은 은사를 불태우라고 격려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가 된 바오로가 사랑하는 아들 티모테오에게 인사합니다.
내 안수로 그대가 받은 하느님의 은사를 다시 불태우십시오.”
그러므로 지금 내 옆에서 나와 같이 사는 분들에게 바오로 사도처럼 안수해줍시다.
서로 안수해줌으로써 서로를 성령으로 불타게 하고 거룩하게 살도록 해줍시다.
그리고 이렇게 같이 살다가 마침내 하느님과 새로운 관계 안으로 같이 들어갑시다.
그것은 현재의 모든 관계를 끝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의 부모 자식 관계를 이제 끝내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현재의 부부 관계를 이제 끝내고 그리스도의 정배가 되는,
지금의 형제자매가 그리스도의 형제자매가 되는 관계로 관계를 다시 맺읍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