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
루카 9,23-26
순교자들의 대축일에 교회가 펴 드는 복음입니다.
주님께서는 세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특히 ‘날마다’라는 말씀이 마음을 붙듭니다.
십자가는 한 번의 극적인 사건만이 아니라,
‘날마다’ 짊어지는 일상의 충실함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순교자들은 이 말씀을 그대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순교는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날마다’ 신앙을 지키고, 이웃을 돌보고,
책을 읽어 진리를 익히고, 성사를 갈망하며 살던
그 ‘일상의 십자가’가 쌓이고 쌓여,
마침내 피의 증언으로 활짝 피어난 것입니다.
여기서 한국 교회의 남다른 아름다움을 기억합시다.
우리 신앙은 밖에서 선교사가 들여온 것이 아닙니다.
조선의 선비들이 ‘책(서학)을 읽고’ 진리를 알아본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이승훈이 세례를 받고 돌아와 공동체가 생겨났고,
신앙은 신분을 넘어 온 백성에게 번져 갔습니다.
곧 한국 신앙은 ‘독서와 배움(문화)’에서 태어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신앙은 성 예로니모가 성경을 옮겨 심었듯,
말씀을 읽고 새기는 ‘독서의 사랑’ 위에서 자랐습니다.
바로 여기에 ‘문화 주간’이 오늘 시작되는 뜻이 있습니다.
문화 주간은 음악·미술·시·‘독서’로
영혼을 살찌우는 주간입니다.
어제 복음의 ‘좋은 땅’이 백 배의 열매를 맺듯,
순교자들의 좋은 땅은 이 땅에 풍성한 ‘신앙의 문화’ ―
성가와 성화와 시와 수많은 책― 를 열매 맺었습니다.
참된 문화는 이렇게 ‘자신을 내어 주는 사랑’에 뿌리를 둡니다.
주님께서는 또 물으십니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냐?”
순교자들은 ‘온 세상(목숨·재산·안전)’과 ‘그분’ 사이에서
망설임 없이 그분을 택했습니다.
세상을 다 얻는 것보다 ‘그분을 잃지 않는 것’이 참된 삶임을,
그들은 피로써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조용히 묻습니다.
나는 ‘날마다’ 지는 일상의 십자가에 충실한가?
나는 ‘온 세상’과 ‘그분’ 사이에서 그분을 택하는가?
나는 순교자들이 물려준 ‘신앙과 문화’를 소중히 잇고 있는가?
나는 나와 그분의 말씀을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워하지 않는가?
주님,
순교자들처럼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르게 하소서.
온 세상보다 당신을 택하게 하시고,
그들이 피로 일군 신앙과 문화를 소중히 잇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