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님의 비유를 잘 뜯어보면 주님의 말씀을 듣는 우리도 문제가 있지만
말씀하시는 주님도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말씀하시는 주님도 그렇게 말씀하시면 되겠습니까?
농부로 치면 씨를 아무 데나 뿌리시는 농부잖습니까?
훌륭한 농부라면 길바닥이나 돌밭이나 가시덤불 밭에 뿌리지 않고,
삼십 배 육십 배 열매 맺는 밭에 뿌리고 더 훌륭한 농부라면
백 배나 열매 맺을 땅만을 골라서 거기에 씨를 뿌리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주님께서 이렇게 비유하시는 것을 보면 뜻이 있겠지요.
선한 사람에게나 악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뿌리시는 분이니
좋은 땅 곧 선한 사람과 나쁜 땅 곧 악한 사람을 가리지 않고
말씀을 내려주신다는 말씀이고 모두를 사랑하신다는 뜻이겠지요.
우리 인간은 이런 말을 종종 하고 아주 쉽게 합니다.
너 같은 사람에게 말하면 입만 아프니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고.
그런데 애써 말했는데 말을 듣지 않으면 입만 아픈 게 아니고
내 말과 내 사랑이 쓸데없는 것이 되기에 무척 속이 상하겠지요.
그리고 속이 상한다는 말은 내상(內傷)을 심하게 입는다는 건데
그 상처가 싫어 더 이상 사랑의 말을 포기해버리는 우리와 달리
하느님께서는 사랑의 말씀을 결코 포기치 않겠다고 하시니
이 사랑에 우리는 얼마나 감지덕지(感之德之)해야겠습니까?
어제와 그제는 요즘 가을 가뭄 때문에 배추 무밭에 물을 줬습니다.
딴 집들은 텃밭에 주기에 호스나 스프링클러로 물을 주지만
저희는 그런 밭이 아니기에 조리 두 개로 물을 날라다 주었습니다.
먼 곳은 한 50m 거리를 길어 나르자니 힘이 무척 들었고
그래서 한 방울도 낭비되지 않도록 한 구멍 한 구멍 신경 쓰면서 물을 줬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느끼는 것이 많습니다.
농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고
하느님의 마음도 더 조금이지만 알게 되었습니다.
타들어 가는 작물을 볼 때 드는 안타까운 마음과
그것을 살리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느끼는 생명의 소중함을 통해
농부의 마음과 하느님의 사랑을 조금이나마 느끼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작물들을 살리기 위해 겨우 조리 몇십 개의 물을 줬지만
하느님께서는 나를 살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은총을 베푸셨는지,
나는 그 물을 아끼고 아껴 줬지만
하느님은 얼마나 아낌없이 은총을 주셨는지 그것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런 느낌은 느껴본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저도 몸소 느껴보기 전에는 추상적으로만 알았던 거지요.
어쨌거나 이렇게 소중한 생명의 말씀과 은총의 비를
우리의 마음 밭에 뿌리시는데 우리는 좋은 밭입니까, 나쁜 밭입니까?
우리를 살리기 위해 주시는 생명의 말씀과 넘치는 은총에
감지덕지합니까? 배은망덕합니까?
감지덕지란 그것을 느끼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라야 덕을 본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은혜를 느끼지도 감사할 줄도 모르는 자는 덕을 못 보고 말겠지요.
어쨌거나 우리는 좋은 밭입니까? 나쁜 밭입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