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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하느님의 갈망과 나의 갈망이 만나는 거룩한 현존의 시간.

 

기도는 하느님의 갈망과 나의 갈망이 만나 영의 현존 아래 머무는 가장 아름다운 시간입니다. 기도란 하늘을 향해 말을 쌓아 올리는 일이 아니라 머리와 가슴과 몸이 하나의 숨결로 모여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내는 일이며, 흩어진 생각들이 하나의 중심으로 돌아오고, 방황하던 마음이 제 집을 찾으며, 몸이 마침내 존재의 침묵 안으로 들어가는 일입니다.

 

우리는 너무 자주 과거의 상처 속에서 이미 지나간 시간을 다시 살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두려워하며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고통을 미리 짊어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언제나 지금 여기 계십니다. 그분은 어제도 아니고 내일도 아니며, 영원히 지금이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기도란 시간을 붙잡는 일이 아니라 영원하신 현재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며, 내 존재 전체를 지금 이 순간의 사랑 앞에 조용히 놓아두는 일입니다.

 

그 순간 나는 비로소 알게 됩니다. 내가 하느님을 찾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하느님께서 나를 찾고 계셨음을. 내가 그분을 그리워하기 전에 이미 그분은 내 이름을 부르고 계셨으며, 내가 그분을 사랑하려 애쓰기 전에 이미 그분은 나를 끝없이 사랑하고 계셨다는 사실을. 그래서 기도는 인간이 시작하는 행위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오래전부터 시작하신 사랑의 이야기에 뒤늦게 응답하는 일이며, 내 갈망이 하느님의 갈망과 만나는 거룩한 만남입니다.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서 피어오르는 목마름은 실은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심어 놓으신 당신 자신의 그리움이며, 우리의 눈물이 그분을 향해 흐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느님의 눈물이 먼저 우리를 향해 흘러오고 있었음을 깨닫는 시간입니다

.

기도는 내 생각을 설득하는 시간이 아니라 내 생각을 내려놓는 시간입니다. 내 계획을 주장하는 시간이 아니라 그 계획을 조용히 비워 드리는 시간입니다. 내 뜻을 관철시키는 시간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 내 안에서 숨 쉬도록 자리를 내어 드리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벗어난 바로 그 길을 하느님이 인도하신다."는 말은 참으로 아름다운 복음입니다. 내가 움켜쥐고 있는 길에서는 오직 나만 걸어갈 수 있지만, 내가 비워 놓은 길에서는 하느님께서 걸으십니다. 내가 물러난 자리마다 은총은 흘러들고, 내가 포기한 자리마다 사랑은 꽃피며, 내가 끝났다고 생각한 자리에서 하느님은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십니다.

 

프란치스코가 평생 사랑했던 가난도 바로 이러한 비움이었습니다. 그는 가난을 미화한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머무르실 자리를 끝없이 마련한 사람이었습니다. 내적 가난이란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에도 붙들리지 않는 자유이며,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기에 모든 것을 선물로 받을 수 있는 마음입니다. 손이 가득 차 있으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듯이, 마음이 자기 자신으로 가득 차 있으면 하느님의 사랑도 머물 자리를 찾지 못합니다. 그러나 비워진 마음은 샘이 되고, 가난한 존재는 강이 되며, 낮아진 사람은 하늘을 가장 먼저 비추는 호수가 됩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는 자신을 가장 작은 형제라 불렀고, 가장 작은 사람이 되었기에 태양도 형제가 되고 달도 자매가 되었으며, 새와 바람과 나무와 꽃과 늑대까지도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사랑은 소유하는 사람에게는 오지 않고, 비워진 사람 안에서만 자유롭게 흐르기 때문입니다.

 

현존은 세상을 떠나는 일이 아니라 세상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일입니다. 밥 한 그릇을 먹으면서도 그 안에 스며 있는 햇살과 흙과 농부의 땀과 하느님의 손길을 느끼는 것, 형제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 안에 숨 쉬는 그리스도의 얼굴을 만나는 것, 새 한 마리의 노래를 들으며 창조주의 기쁨을 함께 듣는 것, 병든 몸을 어루만지면서도 그 안에서 함께 아파하시는 하느님의 따뜻한 손을 느끼는 것, 그것이 현존입니다. 삶은 기도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가 이미 기도이며, 일상은 성사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자신을 드러내시는 가장 거룩한 제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결코 우리를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사랑은 명령될 수 없고, 자유를 잃는 순간 사랑도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다만 문밖에 오래 서 계시며 조용히 두드리십니다. 문을 부수고 들어오지 않으시고, 기다리십니다. 그 기다림은 세월보다 길고, 우리의 방황보다 깊으며, 우리의 죄보다 넓습니다. 우리가 문을 열기만을 기다리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랑할 수 있을 때까지, 믿을 수 있을 때까지, 다시 일어설 수 있을 때까지 끝없이 기다리십니다. 하느님의 기다림은 심판보다 오래 견디는 사랑이며, 포기하지 않는 희망입니다.

 

기도는 무엇보다도 머무름입니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해도 괜찮고, 아무런 감동이 없어도 괜찮으며,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다만 사랑 앞에 머무는 것, 사랑받고 있음을 허락하는 것,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햇살 아래 피어나는 꽃이 애써 피어나는 것이 아니듯, 강물이 애써 흐르는 것이 아니듯, 사랑받는 존재도 애써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랑 안에 오래 머물 때 저절로 변화됩니다. 우리가 바뀌어서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사랑받기에 변화되는 것입니다.

 

현존은 하느님 나라가 가장 먼저 피어나는 자리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먼 훗날 죽어서 들어가는 세상이 아니라 사랑이 자유롭게 흐르는 현재의 삶이며, 머리의 진리가 가슴의 사랑이 되고 몸의 실천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생명입니다. 생각은 사랑이 되고, 사랑은 행동이 되며, 행동은 다시 누군가의 희망이 되어 세상을 따뜻하게 적십니다. 과정의 선은 관계를 따라 흘러가고, 관계를 따라 흐르는 선은 또 다른 생명을 일으키며, 그 생명의 물결은 삼위일체 하느님의 끝없는 내어주심을 닮아 세상을 향해 퍼져 갑니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됩니다. 기도는 내가 하느님께 다가가는 길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내 안에서 당신 자신을 살아가시는 길이며, 믿음은 내가 하느님을 붙드는 힘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나를 끝까지 붙들고 계심을 받아들이는 용기라는 것을. 나는 점점 작아지고, 그분은 점점 커지며, 내 목소리는 잦아들고 그분의 침묵은 내 안에서 노래하기 시작합니다. 나의 왕국은 조용히 무너지고 하느님의 나라는 말없이 자라납니다. 나의 시간이 끝나는 자리에서 영원이 시작되고, 나의 계획이 멈추는 자리에서 섭리가 길을 내며, 나의 갈망은 마침내 하느님의 갈망 안에 안식합니다.

 

그 모든 여정의 끝에서 우리는 조용히 고백하게 됩니다. 기도는 하느님을 찾는 시간이 아니라 이미 나를 찾아오신 사랑 안에 머무는 시간이었음을, 현존은 내가 하느님 앞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내 안에 머무르시며 나를 통하여 세상을 사랑하고 계시는 가장 깊고 가장 아름다운 기적이었음을. 그리하여 나는 더 이상 나를 위해 살지 않고, 내 안에 살아 계신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시고 용서하시고 기다리시고 내어주시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바로 그 삶이 복음이며, 프란치스코의 길이며, 형제성의 길이며, 오늘도 세상의 한복판에서 조용히 피어나는 현존의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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