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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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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 떠나는 관계의 여행

 

프란치스코에게 있어서 그의 삶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이 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산이 더 푸르게 된 것도 아니었고, 하늘이 더 높아진 것도 아니었으며, 사람들의 얼굴이 더 아름다워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변한 것은 오직 한 사람의 마음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자기 두려움과 자기 욕망과 자기 영광이라는 좁은 방 안에 갇혀 살던 한 인간의 마음속으로 하느님의 숨결이 조용히 스며들기 시작했고, 그 숨결은 메마른 흙에 스며드는 새벽의 이슬처럼 아무 소리 없이 그의 존재를 적셔 갔으며, 그때부터 세상은 예전과 똑같은 모습이었지만 전혀 다른 얼굴로 그 앞에 서기 시작했습니다.

 

회개란 죄책감에 짓눌려 눈물을 흘리는 일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내 안에서 숨 쉬실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을 여는 일이라는 것을 프란치스코는 자신의 삶으로 배웠습니다. 하느님은 그의 삶을 억지로 바꾸지 않으셨고, 그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려고 강요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다만 사랑으로 기다리셨고, 기다림 속에서 그의 굳게 닫힌 마음을 조금씩 녹이셨으며, 마침내 프란치스코는 자신의 생애를 붙들고 있던 거짓 자아의 성벽을 내려놓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그는 비로소 하느님께 기도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의 기도가 되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기도는 입술이 하는 일이 아니라 존재가 하는 일입니다. 말이 많아질수록 하느님께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 투명해질수록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 안에서 더욱 자유롭게 숨 쉬십니다. 그래서 프란치스코의 침묵은 기도였고, 그의 눈물도 기도였으며, 그의 걸음과 나환자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그의 손끝마저 기도가 되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하느님을 찾아다니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 그의 심장 안에서 살아 움직이셨기 때문입니다.

 

한때는 그의 몸을 떨게 만들었던 나환자의 얼굴이 어느 날 문득 그리스도의 얼굴이 되었습니다. 코를 막고 외면하고 싶었던 상처가 하느님의 상처가 되었고, 가까이 가기조차 싫었던 냄새가 자비의 향기가 되었습니다. 세상이 바뀐 것이 아니라 그의 눈이 바뀌었고, 나환자가 달라진 것이 아니라 그의 마음이 달라졌으며, 그 마음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이 새로운 시력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쓰디쓴 것은 달콤함이 되었고, 혐오는 포옹이 되었으며, 두려움은 형제애가 되었고, 죽음처럼 보이던 곳에서 생명의 샘이 솟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참으로 하느님의 은총은 사람을 세상 밖으로 데려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을 향하여 더 깊이 걸어가게 합니다. 십자가 앞에서 오래 머문 사람은 반드시 상처 입은 사람들 곁으로 걸어갑니다. 침묵 안에서 하느님의 숨결을 들은 사람은 반드시 세상의 신음소리를 듣게 됩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사람을 외면하는 길은 프란치스코에게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기도는 언제나 사람의 얼굴을 향했고, 그의 관상은 언제나 형제를 향해 열려 있었으며, 그의 찬미는 들꽃과 새와 바람과 태양과 달과 가난한 이들의 눈동자 안에서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그는 마침내 자기 자신도 혼자 존재하는 생명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나는 너를 통하여 비로소 내가 되고, 너는 나를 통하여 너 자신을 발견하며,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만 참된 이름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그는 온몸으로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를 밀어내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을 밀어내는 일이었고, 형제를 받아들이는 것은 자기 존재의 잃어버린 조각을 다시 받아들이는 일이었습니다. 나환자를 끌어안던 그 순간 프란치스코는 사실 자기 안의 가장 깊은 나병을 끌어안고 있었고, 가난한 이를 사랑하던 순간 그는 자신의 가난을 받아들이고 있었으며, 병자의 눈물을 닦아 주던 순간 그는 자신의 상처를 하느님의 손에 맡기고 있었습니다.

 

기도는 하느님께 무엇을 얻어 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서 숨 쉬실 수 있도록 우리의 존재를 열어 드리는 일입니다. 프란치스코가 기도가 되었다는 말은 그가 기도를 많이 했다는 뜻이 아니라, 그의 삶 전체가 하느님의 호흡이 머무는 공간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하느님의 숨결이 그의 심장을 통과하자 그의 판단은 연민으로 변하고, 그의 두려움은 신뢰로 변하며, 그의 욕망은 사랑으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자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살아가지 않았고,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사람들을 이용하지도 않았습니다. 거짓 자아가 무너질수록 참된 자아가 드러났고, 그 참된 자아 안에서 그는 비로소 자유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프란치스코가 발견한 가장 놀라운 진실 가운데 하나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서로 다른 길이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는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세상을 떠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만났기 때문에 다시 세상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흘린 눈물은 나환자의 상처를 만지는 손으로 이어졌고, 침묵의 기도는 가난한 형제와 빵을 나누는 식탁으로 이어졌으며, 하느님께 드린 찬미는 모든 피조물을 형제자매라 부르는 노래가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언제나 관계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시는 분이셨고, 프란치스코는 그 관계 안으로 더욱 깊이 들어갈수록 더욱 깊이 하느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마침내 자기 자신도 타인과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인간은 홀로 존재하는 섬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만 자기 자신이 되는 존재입니다. 나는 너를 통하여 나를 만나고, 너는 나를 통하여 너 자신을 발견하며, 우리는 모두 하느님 안에서 비로소 누구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밀어내는 순간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서도 멀어지고, 다른 사람을 품는 순간 우리는 우리 자신의 참모습에 가까워집니다. 프란치스코는 나환자의 얼굴에서 자신의 나병을 보았고, 가난한 사람의 굶주림 속에서 자신의 가난을 보았으며, 병자의 상처 속에서 자신의 상처를 보았습니다. 그 만남은 동정심이 아니라 존재의 일치였고, 자선이 아니라 형제애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관계 속에서 말씀하십니다. 바람만으로 숲을 이루지 않으시고, 물방울 하나만으로 강을 이루지 않으시며, 사람 하나만으로 당신 나라를 세우지 않으십니다. 서로 내어주는 관계 안에서, 서로를 살려 내는 사랑 안에서, 서로의 부족함을 품어 주는 형제성 안에서 당신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영원한 사랑이 바로 그러하듯이, 존재는 홀로 완성되지 않고 사랑을 통하여 완성됩니다.

 

그러므로 프란치스코는 하느님께 가까이 갈수록 사람들에게서 멀어진 것이 아니라 더욱 가까워졌습니다. 그는 높은 산으로 올라갔지만 결국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왔고, 하늘을 바라보았지만 결국 가장 낮은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게 되었으며, 십자가를 바라보았지만 결국 세상의 고통을 끌어안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참된 관상이었습니다. 눈을 감아 세상을 잊는 것이 아니라 눈을 뜨고 세상을 그리스도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나의 하느님, 나의 전부시여."

 

이 짧은 한마디는 그의 생애 전체를 담고 있는 끝없는 강물과 같습니다. 하느님이 전부가 되실 때 비로소 나는 더 이상 나를 증명하려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하느님이 전부가 되실 때 비교는 조용히 사라지고, 경쟁은 힘을 잃으며, 소유는 무의미해지고, 명예는 먼지처럼 흩어집니다. 오직 사랑만이 남고, 내어줌만이 남으며, 형제라는 이름만이 남습니다. 하느님이 전부가 되시는 순간 나는 비로소 나 자신을 잃는 것이 아니라 처음으로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마음속에 하나의 나병을 품고 살아갑니다. 인정받고 싶은 갈망, 비교하려는 습관, 상처받지 않으려는 방어, 용서하지 못하는 기억, 끝없이 자신을 증명하려는 두려움, 사랑받기 전에 먼저 사랑하려 하지 않는 인색함, 이것들이 우리 존재를 조금씩 병들게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은총은 그 나병을 숨기지 않습니다. 햇빛 아래로 데려오고, 사랑 안으로 데려오며, 형제의 품 안으로 데려옵니다. 상처를 감추는 동안에는 치유가 시작되지 않지만, 상처를 사랑 안으로 가져오는 순간부터 은총은 조용히 숨 쉬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기도는 세상을 바꾸어 달라고 외치는 일이 아니라 내 마음이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새로 창조되도록 허락하는 일입니다. 기도는 사람들을 내 뜻대로 움직이게 하는 능력이 아니라 내가 하느님의 사랑에 움직여지는 자유입니다. 기도는 하느님을 내 삶 안으로 모셔 오는 일이 아니라, 언제나 내 안에서 기다리고 계셨던 하느님께 내 삶을 내어드리는 일입니다.

 

마침내 프란치스코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 한 가지를 배워 갔습니다. 사람이 하느님께 가까이 갈수록 더 인간다워진다는 것, 하느님 안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할수록 더 많이 사랑하게 된다는 것, 사랑할수록 더 많이 내어주게 된다는 것, 내어줄수록 더 많이 자유로워진다는 것, 그리고 자유로워질수록 더 이상 자기 자신의 목소리가 아니라 하느님의 목소리가 자신의 삶을 통하여 세상에 울려 퍼지게 된다는 것.

 

그때 비로소 한 사람의 생애는 한 편의 기도가 됩니다. 한 사람의 침묵은 복음이 되고, 한 사람의 미소는 성체가 되며, 한 사람의 눈물은 세상을 적시는 축복이 되고, 그의 존재는 세상 한가운데에서 지금도 끊임없이 육화하시는 그리스도의 살아 있는 숨결이 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을 통하여 오늘도 조용히 세상을 사랑하시며, 상처 입은 형제들의 얼굴을 어루만지시고, 가난한 이들의 손을 붙드시며, 모든 피조물과 함께 끝없이 말씀하십니다.

 

"나의 하느님, 나의 전부시여. 당신이 나의 전부가 되실 때, 비로소 나는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의 최종 목적지는 관계였습니다. 하느님과 나, 너와 나, 그리고 피조물과 나 사이에서 창조 때부터 시작된 나를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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