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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 사도가 알려주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길 (2베드 1,4-7)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8단계 영적 성장, 베드로 214-7절은 신앙인의 성장이 믿음에서 시작하여 사랑으로 완성되는 여정임을 보여 줍니다.

믿음 하느님을 신뢰하며 자신을 맡기는 출발점

믿음을 삶으로 실천하는 선한 행동

지식 하느님의 뜻과 사랑을 분별하는 지혜

절제 욕망을 다스리는 영적 자유

인내 희망 안에서 끝까지 견디고 기다림

경건 모든 삶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의식함

형제애 이웃을 품고 함께 살아가는 형제성

사랑 모든 덕의 완성이며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삶

 

삼위일체의 사랑 안에서 믿음에서 사랑으로 오르는 영적 계단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단순히 당신을 믿는 사람으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 당신의 생명에 참여하는 사람으로 부르셨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이가 되게 하셨다"(2베드 1,4)고 말합니다. 이는 인간이 하느님이 된다는 뜻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살아가시는 사랑의 방식에 참여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은 영원한 사랑의 순환 안에 계십니다. 성부께서는 자신을 온전히 성자께 내어주시고, 성자께서는 자신을 남김없이 성부께 돌려드리며, 성령께서는 그 사랑의 기쁨과 충만함으로 두 분을 하나로 묶으십니다. 그 안에는 소유도 없고 경쟁도 없으며, 지배와 통제도 없습니다. 오직 내어줌과 받아들임, 그리고 다시 흘려보냄만이 있습니다.

 

마치 멈추지 않는 사랑의 물레방아처럼, 성부는 성자에게 흐르고 성자는 성부에게 흐르며 성령은 그 사랑의 흐름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이루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느님께서 사랑을 하신다고 말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하느님 자체가 사랑이시라고 고백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오늘 우리에게 그 사랑의 흐름 안으로 들어가는 하나의 계단을 보여 줍니다. 믿음에서 시작하여 사랑에 이르는 여덟 개의 계단입니다. 그것은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성공의 사다리가 아니라, 삼위일체의 사랑 안으로 깊이 들어가는 영혼의 여정입니다.

 

첫 번째 계단은 믿음입니다. 믿음은 모든 영적 여정의 시작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어떤 교리를 머리로 받아들이는 일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이미 나를 사랑하고 계심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느님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이미 나를 붙들고 계심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은 자신이 무가치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스스로를 정죄하고 자신을 방어하며 살아갑니다. "나는 부족하다.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 나는 하느님과 하나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그 모든 두려움보다 더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성령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너는 사랑받고 있다." "너는 이미 받아들여졌다." "너는 내 안에 있고 나는 네 안에 있다." 믿음은 이 복된 소식을 받아들이는 용기입니다.

 

믿음 위에는 덕이 세워집니다. 덕은 믿음이 삶으로 드러난 모습입니다. 사랑받고 있음을 믿는 사람은 사랑하며 살기 시작합니다. 용서받았음을 믿는 사람은 용서하며 살기 시작합니다. 정직과 친절, 배려와 나눔은 모두 믿음이 몸을 입은 모습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아름다운 신앙고백을 하더라도 형제를 외면한다면 그 믿음은 아직 열매를 맺지 못한 씨앗과 같습니다.

 

덕 위에는 지식이 세워집니다. 여기서 지식은 단순한 정보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마음을 알아가는 지혜입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하느님의 시선을 배우는 것입니다. 참된 지식은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사랑인지를 알아보는 능력입니다. 누군가를 판단하기 전에 이해하려 하고, 정죄하기 전에 품으려 하며, 자신의 기준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입니다.

 

지식 위에는 절제가 세워집니다. 절제는 욕망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자유롭게 다스리는 능력입니다.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는 것이 자유가 아니라, 사랑을 위해 자신을 내어줄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자유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보여 준 가난은 결핍이 아니라 자유였습니다. 더 많이 가지려는 욕망에서 벗어나 충분함을 아는 삶이었습니다. 절제는 비움을 통해 더 큰 풍요를 발견하는 길입니다.

 

절제 위에는 견딤(인내)이 세워집니다. 인내는 단순히 참는 것이 아닙니다. 희망을 잃지 않고 기다리는 능력입니다. 씨앗이 땅속에서 긴 시간을 견디며 싹을 틔우듯이 사람의 성장도, 공동체의 변화도, 사랑의 성숙도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인내는 하느님께서 일하시는 시간을 존중하는 믿음입니다.

 

인내 위에는 경건이 세워집니다. 경건은 기도실 안에서만 하느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발견하는 삶입니다. 식탁에서, 노동 가운데서, 형제와 나누는 대화 속에서, 바람이 지나가는 숲길에서, 새소리와 햇살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성 프란치스코가 모든 피노물을 형제라 부르고 누이라 부를 수 있었던 이유는 모든 피조물 안에서 창조주의 숨결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경건 위에는 형제애가 세워집니다. 하느님 사랑은 반드시 이웃 사랑으로 흘러갑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이 성부에서 성자로, 성자에서 성령으로 끊임없이 흐르듯이, 우리 안에 머무는 사랑도 반드시 형제에게 흘러갑니다. 형제애는 단순한 친목이 아닙니다. 서로의 짐을 함께 지는 삶입니다. 기다려 주고, 품어 주고, 용서해 주고, 함께 울고 함께 기뻐하는 삶입니다. 프란치스칸 영성의 핵심인 형제성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경쟁자가 아니라 같은 길을 걷는 순례자입니다. 서로를 이겨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구원의 길을 걸어가는 형제자매입니다.

 

마침내 형제애 위에 사랑이 세워집니다. 사랑은 모든 덕의 완성입니다. 믿음은 사랑으로 꽃피고, 덕은 사랑으로 열매 맺으며, 지식은 사랑으로 빛나고, 절제와 인내도 사랑 안에서 완성됩니다. 이 사랑은 감정이 아닙니다. 존재 방식입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랑에 참여하는 삶입니다. 성부께서 성자에게 자신을 내어주시듯이, 성자께서 성부께 자신을 돌려드리시듯이, 성령께서 그 사랑의 기쁨으로 두 분을 하나 되게 하시듯이, 우리도 자신을 선물로 내어주는 삶입니다. 프란치스칸이 말하는 가난도, 겸손도, 작음도 결국은 사랑의 다른 이름입니다. 가난은 자신을 비워 사랑이 흐를 공간을 만드는 것이고, 겸손은 자신을 낮추어 타인을 받아들이는 것이며, 작음은 자신을 주장하기보다 생명이 자라도록 자리를 내어주는 것입니다.

 

사랑은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려가는 것입니다. 사랑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내어주는 것입니다. 사랑은 붙잡는 것이 아니라 놓아주는 것입니다. 사랑은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어느 날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한다는 것은 특별한 신비 체험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한다는 것은 삼위일체의 사랑의 흐름 안으로 들어가는 것임을. 매일의 삶 속에서 믿음을 선택하고, 욕망을 절제하며, 기다리고, 기도하고, 형제를 품고, 사랑하는 삶임을. 그 순간 우리의 평범한 하루는 더 이상 평범하지 않습니다밥을 나누는 식탁이 성사가 되고, 형제의 손을 잡아 주는 순간이 기도가 되며, 용서하는 마음이 복음이 되고, 함께 걸어가는 길이 하느님 나라가 됩니다.

 

우리는 마침내 알게 됩니다.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한다는 것은 먼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일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삼위일체의 사랑처럼 살아가는 것임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 가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이미 하느님의 생명 안에 살고 있으며, 하느님 나라 한가운데 서 있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믿음은 덕으로 드러나고, 덕은 지혜를 낳으며, 지혜는 절제와 인내를 통해 성숙하고, 경건과 형제애를 거쳐 마침내 사랑으로 완성됩니다. 프란치스칸적으로 요약하면 내려놓고(가난), 허용하고(겸손), 함께 살아가며(형제성),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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