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14,1–1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
이 말씀은
두려움과 불안 속에 있는 이들을 향한
매우 따뜻한 돌봄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약함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그들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면서도
먼저 믿음 안으로 초대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어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보통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이 옳은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묻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답만 주시는 분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바로 그 답이심을 드러내십니다.
주님은 길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걸으시는 길이십니다.
주님은 설명만 하는 진리가 아니라
우리 존재를 바로 세우는 진리이십니다.
주님은 멀리 있는 생명의 원리가 아니라
우리 안에 생명을 다시 불어넣으시는 분이십니다.
성 예로니모는
말씀을 사랑한 교부답게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의 길과 뜻과 생명이 한 번에 드러난다고 보았습니다.
그에게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성경의 문장을 아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말씀의 중심이신 분을 만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는 선언은
신앙의 핵심 전체를 품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참된 길도,
참된 진리도,
참된 생명도 얻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오늘 복음은
회복의 출발점도 보여 줍니다.
회복은
마음이 하나도 흔들리지 않는 상태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흔들리는 마음을 주님께 다시 맡기는 일입니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는 말씀은
걱정을 금지하는 명령이 아니라
걱정 속에서도 누구를 믿어야 하는지를 알려 주는 초대입니다.
주님은 불안 자체보다
불안 속에서 길을 잃는 것을 더 염려하십니다.
그래서 먼저
당신을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필립보가
“주님, 저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하고 말하자
예수님께서는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이는 매우 깊은 위로입니다.
우리는 자주
하느님이 너무 멀리 계시다고 느끼지만,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은 아주 가까이 오셨습니다.
주님의 얼굴을 보면
아버지의 자비를 보게 되고,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
아버지의 마음을 듣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길을 잃은 인간에게
하느님이 얼마나 가까이 계신지를 보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돌봄 주간의 관점에서 보면
오늘 복음은 돌봄의 본질을 가르쳐 줍니다.
돌봄은
상대를 대신 살아 주는 일이 아니라
그 사람이 다시 길을 찾도록
곁에서 빛이 되어 주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모든 문제를 즉시 해결해 주겠다고 하시지 않고
당신 자신을 길로 내어 주십니다.
바로 이것이 사랑의 돌봄입니다.
그리고 회복은
그 길 위에서 조금씩 다시 일어나는 은총입니다.
오늘은 성체의 날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께서는
멀리서 말씀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성체 안에서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내어 주십니다.
성체는 우리에게
“너는 혼자가 아니다.
나는 네 안에 머물고,
너도 내 안에 머물러라” 하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가장 깊은 돌봄입니다.
흩어진 마음이 다시 하나 되고,
지친 영혼이 다시 힘을 얻으며,
길을 잃은 사람이 다시 중심을 찾는 은총이
바로 성체 안에서 자랍니다.
오늘 우리는 묻습니다.
내 마음은 지금 어디에서 산란해지고 있는가?
무엇이 나를 흩어지게 하고 있는가?
나는 길을 묻기만 하고 있는가,
아니면 길이신 주님과 함께 걷고 있는가?
나는 성체를 단지 익숙한 예식으로 받아들이는가,
아니면 나를 다시 살리시는 주님의 돌봄으로 모시고 있는가?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회복은
빠른 해결이 아니라
깊은 동행이며,
성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생명의 일치입니다.
주님,
산란한 제 마음을 당신 안에서 다시 모아 주소서.
당신이 길이시니 헤매지 않게 하시고,
당신이 진리이시니 속지 않게 하시며,
당신이 생명이시니
지친 제 영혼을 다시 살려 주소서.
성체 안에서 당신을 깊이 모시며
돌봄과 회복의 은총 안에 머물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