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지혜서는 의인을 죽이려는 악인과
그 악인에 의해 시련을 겪는 의인의 관계를 얘기하고,
복음에서는 지혜서가 얘기하는 의인이 주님임을 얘기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악인이란 어떤 자인지 보려고 하는데
국어사전을 보면 ‘남을 해치려 하거나 미워하는 악한 사람’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런데 남을 해치거나 미워하는 사람은 무조건 악한 사람인가?
악한 사람을 해치거나 미워하는 사람도 악한 사람인가?
예를 들어 요즘 전쟁을 일으키는 더 악한 자들을
미워하며 망하기를 바라는 저는 악한 사람입니까?
다르게 얘기하면 악을 미워하는 것도 악이고
같은 맥락에서 악을 미워하는 사람도 악인입니까?
악은 선과 반대되는 것이고 선을 해치는 것이 악이지
남을 해치고 미워하는 것이 뭐든지 다 악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은 물리쳐야 하고 그럴 때 저는 악인이 아니지만
선들 다시 말해서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선들을 해치고 미워할 때 저는 악인입니다.
이런 면에서 이제 저는 악인일지라도 그리 나쁜 악인은 아닐 것입니다.
솔직히 요즘 저는 미워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저도 가련하고 하느님 자비가 필요한 사람인 것처럼 이웃도 저와 같은 존재입니다.
요즘 제 입에서 ‘나쁜 놈!’이라고 하는 것은 트럼프나 네타냐휴 같은 자들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는 의인을 거꾸러트리려고 하는 악에 대한 반성보다는
누군가에게 고통과 시련을 받을 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냐 그것입니다.
오늘 지혜서에서 악인들의 말이지만 다음의 말은 맞는 말입니다.
“그를 모욕과 고통으로 시험해 보자, 그러면 그가 정말 온유한지
알 수 있고 그의 인내력을 시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프란치스코도 권고 13에서 같은 말을 했습니다.
“하느님의 종은 자기가 만족스러워할 때는
자기에게 어느 정도의 인내심과 겸손이 있는지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만족스럽게 해야 할 바로 그 사람들이
자신을 반대하는 순간이 왔을 때 그때 지니고있는 만큼의
인내와 겸손을 지니고있는 것이지 그 이상을 지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고통과 모욕이라는 시련은
우리의 인내와 겸손이 어느 정도인지 알게 하기에 유익하지만
또 우리가 시련을 통해 단련되게 하는 측면에서도 유익합니다.
그리고 악인들은 이런 뜻으로도 의인에게 시련을 주고 시험도 합니다.
“의인이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하느님께서 그를 도우시어
적대자들의 손에서 그를 구해주실 것이다.”
악인들의 말대로 하느님은 우리가 당신 아들인데도 같은 뜻에서 시련을 주십니다.
우리가 진정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시련을 받을 때 인간이 준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를 통해 주신 것으로 받아들일 것이고,
설사 하느님이 아니라 그가 준 것일지라도 주님께서 구해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진정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하느님 없이 시련받지 않을 것이고,
하느님이 주신 시련을 값없이 낭비하지 않고 단련의 기회로 달게 받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