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7,1–2.10.25–30
예수님께서는 박해의 위험 때문에 한동안 공개적으로 다니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초막절이 되자 조용히 예루살렘에 올라가십니다.
사람들은 수군거립니다.
“저 사람이 아니냐? 왜 아무도 잡지 않지?”
또 어떤 이들은 말합니다.
“그를 안다. 어디서 왔는지도 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선포하십니다.
“너희는 내가 어디서 왔는지 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나 자신에게서 온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분이 참되시다.”
그들은 예수님을 잡으려 하지만
아직 그분의 때가 오지 않았기에 손을 대지 못합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안다”고 말하면서도
사실은 겉만 안다고 지적합니다.
출신, 고향, 소문은 알 수 있지만
그분의 근원(아버지께로부터 옴)은
겸손하게 열리지 않으면 알아볼 수 없습니다.
아우구스티노에게 신앙의 핵심은
예수님을 “정보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진리를 만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그분을 내 기준으로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내 기준을 넘어
나를 진리로 이끄시도록 허락하는 일입니다.
또한 “때”의 신비가 드러납니다.
사람들은 자기 시간표대로
예수님을 몰아붙이거나 제거하려 하지만,
예수님은 아버지의 시간 안에서 움직이십니다.
이것은 회피가 아니라
구원을 향해 가는 신적 질서입니다.
니사의 그레고리오가 말한 “끝없는 하느님 추구”처럼,
오늘 복음은 우리를 초대합니다.
겉으로 아는 데서 멈추지 말고,
예수님의 근원인 아버지께로
더 깊이 들어가라고.
문화 주간의 금요일,
주님은 묻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내가 다 아는 분”으로 만들고 있는가,
아니면
오늘도 더 깊이 만나야 할 분으로 찾고 있는가?
주님,
제가 겉만 아는 신앙에 머물지 않게 하소서.
당신의 근원인 아버지께로
저를 더 깊이 이끄시고,
제 삶이 당신의 때 안에서
차분히 자라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