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4,43–54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로 가시며 말씀하십니다.
“예언자는 자기 고향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한다.”
그리고 카나에 이르셨을 때
한 왕실 관리가 찾아와 간청합니다.
“제 아들이 죽게 되었습니다. 내려와 주십시오.”
예수님은 바로 달려가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표징과 이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는다.”
그러나 곧 이어
“가거라. 네 아들은 살아 있다.” 하십니다.
그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돌아가며,
길에서 아들이 낫고 있음을 듣습니다.
오리게네스는
이 장면에서 믿음의 핵심을 이렇게 봅니다.
참된 믿음은 “내가 보고 확신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 때문에 걷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기적은 믿음을 만드는 재료가 아니라,
이미 믿음의 길을 걷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은총의 표징입니다.
왕실 관리는 처음엔
“주님이 내려오셔야 한다”는 방식에 매여 있었지만,
말씀을 듣는 순간
자기 방식에서 벗어나 주님의 방식을 받아들입니다.
그는 “증거”를 붙잡지 않고
말씀을 붙잡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그의 집 전체를 살리는 생명이 됩니다.
문화 주간의 오늘, 복음은 묻습니다.
나는 하느님께 무엇을 요구하며 믿고 있는가.
내가 정한 방식이 이루어져야만 믿는가,
아니면 말씀 자체가
내 길을 바꾸게 하는가.
오리게네스는 우리를
‘눈으로 확인하는 신앙’에서
‘말씀을 따라 걷는 신앙’으로 옮겨 놓습니다.
믿음은
주님을 “내 손 안의 해결사”로 두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이
나를 “살아 있는 사람”으로 빚어 가도록 허락하는 것입니다.
주님,
제가 표징을 요구하며 머뭇거리기보다
당신의 말씀을 믿고 걸어가게 하소서.
보이지 않아도
당신이 이미 일하고 계심을 신뢰하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