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원수 사랑하라는 주님 말씀을 모르는 이 없고
원수 사랑을 하려고 애쓰지 않는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무진 애를 썼지만 원수 사랑이 쉽지 않아
원수 사랑을 하려고 하지 않았던 때보다 더 괴로웠던 경험이 다 있을 것입니다.
원수를 미워하는 고통에다 원수 사랑에 실패한 고통이 더해지는 경험 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쉽지 않고 고통스러운 원수 사랑을 왜 굳이 해야 합니까?
주님의 명령이기에 억지로라도 해야 하는 건가요?
주님께서는 이 고통스러운 원수 사랑을 왜 하라고 하셨을까요?
주님께서 혹시 불가능한 것을 하라고 명하신 것은 아닐까요?
그러므로 우리는 억지로 할 것이 아니라 하라고 하신 그 뜻을 알고 해야겠습니다.
먼저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것은 우리를 위해서임을 알아야겠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원수가 있으면 내가 불행하고,
원수를 미워하면 내가 고통스럽잖습니까?
원수를 미워하고 원수에게 복수하려고 복수의 칼을 가지고 다니면
원수에 대한 미움이 나를 먼저 괴롭게 하고 복수의 칼이 먼저 나를 찌르잖습니까?
그러니 원수가 없게 되거나 원수를 사랑하게 되면
원수가 아니라 내가 행복하게 되는 것이고,
그러려고 우리는 원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원수 사랑은 어렵지만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원수 사랑은 불가능한 것이 아니며 불가능한 사랑을
주님께서 하라고 하셨을 리 없다고 믿는 것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그러나 원수가 원수인 한에는 사랑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실제로 나를 불행하게 만든 것이 원수이고 그래서 미워하는 것인데
어떻게 원수인 그를 원수인 채로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원수였던 자가 원수가 아닌 사람으로 바뀌어야 하는데
원수의 개과천선으로 그리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그걸 바라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걸 바라는 것이니 내가 바뀌어야겠지요.
어떻게?
프란치스코의 가르침을 참고삼으면 될 것입니다.
“형제들이여, 우리는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주어라.’ 하신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시다. 우리가 발자취를 따라야 할 우리 주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넘겨준 사람을 벗이라 부르시고 기꺼이 자신을 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괴로움과 모욕을 당하게 하는 이들이 바로 우리의 벗들입니다.
그것들로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기에 그들을 극진히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원수를 벗으로 여기면 되는 것입니다.
원수 때문에 불행했는데 원수 때문에 행복해지면 되는 것입니다.
원수 때문에 불행했는데 하느님 사랑 때문에 원수를 발판, 디딤돌, 계단 삼아
원수 사랑이라는 하느님의 완전한 사랑에까지 도달할 수 있다면
원수는 더 이상 원수가 아니고 벗이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원수들은 우리가 이루어야 할 완전한 사랑,
원수까지 사랑하는 하느님의 그 완전한 사랑에까지 올라가게 하는 계단들입니다.
원수의 등급을 매긴다면 1등급의 원수는 제일 밑의 계단이고,
2등급, 3등급, 4등급의 원수들을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계단 삼아 올라가다가
마침내 99와 100등급의 원수까지 사랑케 되면 우리는 하느님께서 사랑에 있어서
100% 완전하신 것처럼 완전한 사랑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원수까지 사랑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자녀가 되고,
하늘의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완전한 사람이 되는 꿈을 꾸는 오늘 우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