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를 받기 위해 요르단으로 가셨던 예수님께서는
다시 갈릴래아로 돌아오십니다.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기 시작하신 곳은
예루살렘이 아니라 갈릴래아라는 것을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볼 수 있습니다.
마태오복음은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곳도
비록 유다 지방이긴 하지만
수도 예루살렘이 아니라고 전하며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신 곳도
이스라엘의 중심지인 유다가 아니라
변방인 갈릴래아라고 전합니다.
하느님의 선택은 중심 혹은 위가 아니라
바깥쪽 혹은 아래임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모습은 이어지는 구절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만나신 사람들은
왕도 아니고 사제도 아니었으며
오히려 군중들, 그것도 병자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시는데
빠르고 큰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사회에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반대로 행동하십니다.
당신께서 알려지시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당신을 만나는 이들이
하느님 나라를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기에
하느님 나라를 원하는 사람들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먼저 가신 것은 아닌가 생각됩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드러내신 이유도
당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을 받아들이라고
유다인의 왕으로 떠받들라고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그저 하느님 나라를 원하는 이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오셨고
그렇게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하느님의 모든 초점이 우리를 향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우리의 어려움을 이사야 예언서를 통해
어둠이나 죽음의 그림자라고 표현하지만
그것은 이제 빛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와 함께하시면서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 하느님을 통해
기쁨과 희망으로 바뀔 것입니다.
계속해서 우리를 바라보시고 우리를 향해 오시는 하느님께
우리도 마중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어려움, 우리의 약함을 고백하면서
주님의 사랑을 누릴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