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원에 핀 흑장미 (성스테파노 순교 축일 묵상)
아무것도 아님으로 피어나는 이름, 우리는 아무것도 아님을 두려워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죽음이 두렵다. 죽음은, 우리가 나라고 불러왔던 모든 것, 그토록 붙잡고 증명하고 보호하려 했던 모든 것이 사실은 나 자신이 아니었음을 한순간에 드러내는 사건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죽음은 빼앗음이 아니라 폭로다. 이름과 역할, 성취와 기억, 사랑받기 위해 쌓아 올린 수많은 방어들, 영구히 중요하고 본질적일 것이라 믿었던 것들이 침묵 속에서 무너져 내리는 자리. 그래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한다. 아무것도 남지 않을까 봐. 그러나 그 아무것도 아님이야말로 실은 우리가 평생 갈망해 온 보물이고 자유다. 아무것도 입증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 아무것도 지키지 않아도 되는 자리, 아버지의 품 안에서 “내가 나로서 이미 충분하다”는 사실을 몸으로 아는 자리. 그 진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 기쁨과 영광으로 계시되었다. 부활은 죽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죽음 안을 통과해 아무것도 아닌 자리에서 새 생명이 어떻게 피어나는지를 보여준다.
참된 거룩함은 그래서 거룩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죽는 것처럼 느껴진다. 무언가를 잃고 있는 듯한 감각, 내가 나를 하나씩 내려놓고 있다는 체험. 그리고 실제로 그렇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마다 내 안의 어떤 부분은 죽기로 동의한다. 사랑은 언제나 자기 보존의 본능을 넘어서는 요청이기 때문이다. 그때 죽는 것은 나의 참자아가 아니라 나의 거짓 자아다. 영구히 존재할 것처럼,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처럼 어리석게도 믿어왔던 허상. 사랑은 그것을 붙들지 말고 놓아버리라고 요청한다. 나는 안다. 이 일을 내가 혼자 해내는 것이 아님을. 내 안에서, 나와 함께 주님의 영께서 조용히 그 일을 하신다는 사실을. 그래서 나는 잃어버린 것이 내게 꼭 필요했던 것이 아니었음을 조금씩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웃을 수 있게 된다. 사실 그것은 나를 살게 하던 것이 아니라 진실로 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던 장애물이었다.
아무것도 아님을 받아들이는 순간, 나는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는 믿음 안에서 더 이상 나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으로 조용히 서게 된다.그 자리는 성스러운 긴장이 아니라 깊은 평화다. 그 평화 속에서 죽음은 끝이 아니라 통과가 되고, 사라짐은 상실이 아니라 헌신이 되며, 거룩함은 위로부터 내려오는 광채가 아니라 사랑을 위해 기꺼이 사라질 줄 아는 용기가 된다.
아무것도 아님.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하느님 안에 머문다. 우리가 아무것도 아님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우리는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는 믿음 안에 머무른다. 그 믿음에서 자유가 태어나고, 기쁨이 흘러나온다. 성 스테파노가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본 눈은 바로 그 자유의 눈이었다. 그에게 하늘은 보상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진실이었고, 그 진실은 자신의 생명과도 기꺼이 바꿀 수 있는 가장 값진 보물이었다.
스테파노의 죽음은 끝이 아니었다. 돌이 날아오르던 그 순간에도 하늘은 닫히지 않았고, 땅은 피를 삼키며 새로운 씨앗을 품었다. 스테파노는 쓰러지며 무언가를 남겼다. 말이 아니라 숨으로, 주장이 아니라 내어줌으로. 그의 몸은 길 위에 남겨졌고그 자리에 복음은 더 깊이 뿌리내렸다. 사람들은 그를 침묵시켰다고 생각했지만 그날부터 교회는 더 크게 말하기 시작했다. 예루살렘의 돌담 안에 갇혀 있던 말씀은공포를 타고 흩어졌고 흩어짐은 곧 파견이 되었다. 그의 마지막 기도는 패배자의 탄식이 아니었다.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그 한 문장은 증오의 연쇄를 끊고 미래를 살려 두는 문장이었다.
돌을 던지던 손들 사이에서 한 젊은이가 그 얼굴을 보았다. 하늘을 닮은 얼굴, 저항하지 않는 빛. 그 빛은 그날 즉시 열매 맺지 않았지만 사울의 가슴 깊은 곳에 오래 남아 썩지 않는 씨앗이 되었다. 스테파노는 설명하지 않았다. 증명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는 다만 자기 생명을 내어주며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주었다. 죽음이 이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을 교회는 그날 처음 배웠다. 힘이 아니라 신뢰로, 논리가 아니라 사랑으로, 살아 있음보다 더 강하게 죽음이 증언할 수 있음을. 스테파노의 피는 복수를 부르지 않았다. 그 피는 길이 되었고 그 길 위에서 수많은 발걸음이 태어났다. 그래서 우리는 안다. 하느님께 맡겨진 죽음은 사라짐이 아니라 번져감이라는 것을. 끝이 아니라 열매라는 것을.
설원이 핀 흑장미!
스테파노는 그렇게 새하얀 육화의 현장에 피로물든 한송이 장미로 피어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