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오늘 주님께서는 불의한 사람과 불의한 재물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불의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바로 알겠는데
불의한 재물이란 어떤 재물인지 쉽게 그 뜻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재물 그 자체가 불의하다는 뜻인지
아니면 불의한 행위로 조성한 재물이라는 뜻인지.
전체 맥락에서 보면 재물이란 그리 좋은 것은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우리가 하기 나름이라는 뜻도 있는 것 같고,
그러니 나쁜 것도 선용할 수 있다는 뜻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에 따라 재물은 인간이 모은 것이기도 하고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기도 합니다.
물론 하느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모든 재물은 자기가 애써 모은 것이고,
많은 경우 욕심의 산물이며 불의하게 모은 것들이고 숭배의 대상입니다.
그래서 이들에게는 돈이 곧 신입니다.
돈이면 뭐든 다 할 수 있다고 믿는 뜻에서 말입니다.
돈이면 뭐든 다 할 수 있다는 것은 돈이 전능하다는 뜻이고,
그에게는 돈이 전능하신 신이거나 동급이고
그래서 돈을 가지고 뭐든지 자기 맘대로 함으로써
마치 자기가 신처럼 되고 물신이 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무신론자와 물신주의자(物神主義者)와 달리
우리 신앙인은 재물도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으로 믿으며
그렇기에 재물을 하느님께서 주신 뜻대로 쓰지 섬기지는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재물은 우리가 쓰는 것이지 섬김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리고 쓸 때 내가 재물의 주인인 것처럼 쓰지 않고
하느님 뜻대로 씀으로써 재물의 주인이 내가 되지 않고
하느님이 되실 뿐 아니라 재물을 선용하게 되는 겁니다.
이것이 오늘 주님께서 불의한 재물로라도 친구를 만들라는 뜻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재물을 모을 때는 하느님을 믿지 않았기에
하느님께서 주신 것도 아니었고 하느님 뜻대로 쓸 것도 아니었지만
하느님을 믿게 된 뒤엔 하느님 뜻대로 선용하게 된 것이겠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는 것 이상이고,
재물을 모을 때는 불의하게 모아 불의한 재물이었지만
하느님을 만난 뒤에는 회개하고 하느님 뜻대로 쓰게 된 것입니다.
즉시 떠오르는 복음의 인물이 있습니다.
자캐오입니다.
주님을 만나고 주님을 모신 뒤에는 그렇게 악착같이 모은 재물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고 횡령한 것은 네 곱절로 갚겠다고 합니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어쨌거나 재물은 쓸 것이지 섬길 것이 아니고,
쓰되 잘 써야 하는데 그것이 우리 신앙인에게는
하느님 뜻대로 이웃 사랑을 위해 쓰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요즘 저는 많은 생각과 고민 같은 것을 하고 있고 나누고 싶습니다.
이주민 자녀들을 위한 장학금을 마련하기 위해 전에는 바자회를 했는데
이번에는 음악회를 하기로 했고 문제는 푯값이 3만 원이라는 거금이라는 것입니다.
고민스러웠던 것은, 아무리 좋은 목적이어도 저의 욕심이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푯값이 3만 원이라는 것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듭니다.
우리 신앙인은 세속 사람들과 달라야 하지 않는가?
그들은 유명 가수 공연에는 몇십만 원 주고도 아까워하지 않지만
우리는 이웃 사랑에 아까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오늘 가르침이 아닐까요?
이 얘기를 할까 말까 고민되고 망설였는데
저의 요즘 생각과 고민을 나누는 차원에서 했습니다.
양해해 주시길 바라며 얘기 나온 김에 주위에 대금 연주자 계시면
이번 공연에 재능 기부해주시도록 그분을 제게 소개해주시기를 청합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