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이 자기 집 종들을 맡겨 제때 정해진 양식을
내주게 할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는 어떻게 하는 사람이겠느냐?
행복하여라, 주인이 돌아와서 볼 때 그렇게 일하고 있는 종!”
우리는 어제에 이어 오늘도 행복한 종의 비유를 복음에서 듣습니다.
그런데 어제는 주인을 깨어 기다리는 종의 행복 얘기를 들었다면
오늘은 주인이 없을 때도 맡겨진 일을 충실히 하는 종의 행복 얘기를 듣습니다.
그러니까 마르타와 마리아, 일과 사랑, Doing과 Being에서
어제는 주님 사랑 안에 머문 마리아의 행복 얘기라면
오늘은 주님 사랑 까닭에 주님 일을 충실히 하는 마르타의 행복 얘기입니다.
그런데 오늘 종의 비유 얘기에서는 종의 불행 얘기도 합니다.
주님의 일을 충실히 하는 지혜로운 종은 행복하지만
그렇지 않은 어리석은 종은 불행하다는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불상사가 일어났습니까?
그것은 집사가 아닌 단순한 종이었으면 이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어제의 종은 주인과 종 사이에 아무도 없고 아무 일도 없어서
그저 주인님만을 위해서 잘 깨어 기다리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종은 단순한 종이 아니라 집사 신분의 종이고,
주인님과 자기 사이에 다른 종들이 있으며 맡겨진 일이 있습니다.
주인님께는 자기도 종이지만 종들에게는 지배인(manager)입니다.
그런데 주인님의 종이기에 맡겨진 일을 정해진 대로 하면 되는데
차츰 지배인이라는 위치를 이용하여 종들을 지배하고 억압합니다.
주인님의 집사(Steward)요 지배인이 주인님 자리를 차지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당신 대신 사랑을 베풀라고 자녀를 맡겼는데
집사에 불과한 아비 어미가 자녀를 학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당신 대신 사랑을 행하라고 형제들을 맡겼는데
집사에 불과한 본당 신부와 수도회 장상들이 제 맘대로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집사라는 지위를 선용하지 않고 악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집사직의 나를 돌아보고 마음가짐을 다시 한번 새롭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악용하지 말고 선용해야 할 것은 집사라는 지위뿐이 아닙니다.
우리의 은총 지위도 악용하지 말아야 하고 선용해야 합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은총 아래 있으니 죄를 지어도 좋습니까?”
“죄가 여러분의 죽을 몸을 지배하여
여러분이 그 욕망에 순종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어제 죄가 많은 곳에 은총도 풍부하다고 했는데
우리가 아무리 죄를 지어도 하느님 은총은 풍부할 것이라고
은총을 악용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동시에 선용하라고 권고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회개한 죄인에게는 하느님의 은총이 풍부하지만
은총을 악용하는 죄인에게도 은총이 풍부하지는 않습니다.
얼마간 참아주시기는 해도 마냥 참아주시지는 않으십니다.
천지불인(天地不仁)이라는 노자 도덕경의 말을 마음에 새겨야겠습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