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표징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악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시면서 그들을
남방 여왕과 니네베 사람들과 비교하십니다.
요나 예언자의 표징이라고 주시는 것은
표징을 요구하는 것을 거부하지는 않으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표징을 받아들일 마음이 있는지입니다.
남방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 끝에서 그를 찾아왔습니다.
니네베 사람들은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습니다.
남방 여왕이나 니네베 사람들은 변화의 의지가 있었고
만남 이후에 변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표징을 요구하는 이 사람들은
변화의 의지가 있지는 않습니다.
변할 마음이 없이 단지 표징을 요구하는 것은
예수를 시험하겠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바뀌고 싶다는 것은
지금의 내 모습을 좋지 않게 보는 것이라고만
말할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아니기에 다른 것을 선택한다는 마음에서
변화를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다른 것을 선택한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의 모습도 좋지만
지금의 모습에 안주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내 모습을 부정적으로 볼 필요도 없지만
한편으로는 지금의 모습에 안주하는 것도
변화를 거부하는 하나의 이유가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안주는
자신도 바뀌지 않으면서
바뀌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좋지 않게 바라봅니다.
해도 안 될텐데 헛수고한다고
그들의 노력을 낮게 평가합니다.
그 마음은 오늘 복음에서 예수를 시험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런 사람들이 많을수록 공동체는 앞으로 나아갈 힘을 잃고
점점 무너지기 쉽습니다.
이 모습은 삶에 만족하고 기쁨을 누리는 것과는 다릅니다.
자신이 만족한다면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을 또한 응원할텐데
그들은 오히려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나의 모습은 어떠한지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