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때가 찼다는 말은 마르코 복음에만 나오는 표현이고,
매우 짧은 표현이지만 풍성한 뜻이 담긴 표현입니다.
때가 찼다는 말을 인격적이나 신앙적인 뜻에서 쓰지 않고,
물리적이고 시간적으로만 쓰면 더 기다리거나 미룰 이유가 사라진 때이며,
거사를 치를 때가 됐다고 하듯 중요한 또는 큰일을 벌일 바로 그때입니다.
그러나 오늘 마르코 복음에서 찼다고 하는 때는 그런 뜻만 있지 않습니다.
물론 복음 선포라는 거창한 일이 시작되는 그 순간이 왔다는 뜻도 있지만
인격적인 뜻의 때일 것입니다.
첫째로 누구는 사라지고 누구는 등장할 때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사라지고 주님이 등장할 때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얘기하지만 실은 하느님의 때입니다.
더 정확히 얘기하면 하느님께서 정하신 때이고,
하느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자 세례자 요한은 퇴장하고 주님은 등장하십니다.
그러나 신앙인이 아닌 역사가가 인간의 눈으로 보면
그때란 세례자 요한이 퇴장할 때가 예수께서 등장하실 때이기에
예수께서 세례자 요한이 붙잡힐 때를 노리고 있다가 나타나신 때이며
급하게 서두르지 않고 충분히 기다리다가 마침내 잡은 기회의 때일 겁니다.
흔히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고 하듯 큰 인물은
절대 서두르지 않고 자기 뜻을 천천히 이뤄간다는 뜻과 같은 것이겠습니다.
그러나 때가 찼다는 말을 신앙적으로 이해하면 하느님이 정하신 때가 되어
세례자 요한은 사라지고 주님께서 오실 때가 됐다는 말이요,
주님의 오심과 함께 하느님 나라가 올 때가 가까워졌다는 말일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하느님 나라가 오는 이 하느님의 때가 차고,
주님께서 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면 그것을 듣는 사람에게는
이때가 바로 회개해야 할 때이고 복음을 믿어야 할 때입니다.
그런데 오늘 제게는 왜 주님께서 하느님 나라가 왔다고 하지 않으시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하셨을까? 이 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흔히 우리 신학은 주님과 함께 하느님 나라가 이미 도래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도래한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있다는 것은 ‘아직 내게는’일까요?
그렇습니다.
이는 마치 하느님 나라가 우리 동네까지 이미 와있지만
아직 우리 집까지는 아니 온 것과 같은 뜻일 겁니다.
그러다가 우리가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면
가까이 온 하느님 나라가 마침내 내 집에도 오신다는 뜻일 겁니다.
이렇게 될 때 하느님의 때가 차고 나의 구원의 때도 차겠지요?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