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프란치스코의 파스카 800년의 울림, (옹이진 나무가 숲을 이루듯)
성프란치스코의 파스카 800주년을 맞이하여 그의 삶 속에서 발견한 몇가지 사건들을 묵상해보았습니다.
완전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늘 날카로운 칼날과 같아서, 우리 영혼의 작은 흠집조차 허용하지 않으려 몰아세웁니다. 그러나 800년 전, 아시시의 가난한 성인이 걸어갔던 길은 매끄러운 대리석 길이 아니라 거칠고 투박한 흙길이었습니다. 그는 스스로를 '완성'하려 애쓰는 대신, 자신의 부족함을 하느님의 자비로 채우기 위해 기꺼이 비워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에게 죽음은 끝이 아닌 '자매'였습니다. 라 베르나의 차가운 바위 위에서 새겨진 오상의 고통조차 그는 완전함의 증거가 아니라,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려는 사랑의 흔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우리가 덧없는 완벽주의의 감옥에 갇혀 오늘의 선을 놓칠 때, 그는 부서지고 깨진 것들 사이로 흐르는 빛을 보라고 나지막이 속삭입니다. 햇살은 구부러진 나뭇가지 위에도 공평하게 내리쬐고, 들꽃은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존재함으로 찬미의 노래를 부릅니다.
완전함은 선의 적이요, 자비의 걸림돌이 될 때가 많습니다. 이제 우리는 매끈한 거울 같은 삶이 아니라, 갈라진 틈 사이로 생명이 돋아나는 옹이진 나무가 되어야 합니다. 성인의 마지막 숨결이 대지에 스며들어 평화가 되었듯, 우리의 서툰 사랑과 불완전한 시도들이 모여 비로소 이 세상은 조금 더 따뜻한 집이 될 것입니다. 비워진 손바닥 위에 내려앉는 햇살 한 줌,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800년 전 그가 찬미했던 '태양의 노래'는 지금 여기, 완벽하지 않은 우리들의 일상 속에서 비로소 완성되고 있습니다.
태양의 노래에서
이 시는 프란치스코가 육체적으로 가장 고통스러울 때(실명에 가까운 눈병과 병고에 시달릴 때) 쓰였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철학적 전환이 일어납니다. 태양, 달, 바람, 불을 '도구'나 '대상'으로 보지 않고 '형제'와 '자매'라고 부릅니다. 이는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서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 질서 안에서 모든 피조물과 동등한 위치에 있음을 선언한 것입니다. 시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는 '육신의 죽음'조차 자매라고 부릅니다. 죽음을 공포나 극복의 대상이 아닌, 삶의 완성으로 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인 파스카(건너감)의 신비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에게서 배운 진리
성프란치스코가 예수님에서 배운 진리는 자기비움이라는 가난(내려가고 내려놓고)과 겸손(허용하고 놓아주는)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물건뿐만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 '자신의 옳음'조차 소유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내가 완벽해지려 노력할수록 '나'라는 자아가 커지기 때문입니다. 그는 스스로를 '작은 형제'라 불렀습니다. 완벽함은 높은 곳을 향하지만, 프란치스코의 선은 낮은 곳을 향합니다. 내가 작아질 때 비로소 타인이 들어올 공간이 생기고, 그 빈 공간이 곧 '선(善)'이 머무는 자리가 됩니다.
라 베르나의 오상에서
1224년, 그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몸에 새기는 '오상'을 받습니다. 이는 800주년 기념의 핵심 사건 중 하나입니다. 프란치스코에게 완덕은 고통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 온전히 공감하여 그 고통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상태였습니다. 그는 몸에 지울 수 없는 상처(오상)를 받았을 때 가장 평화로웠습니다. 이는 인간의 불완전함과 상처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며, 오히려 사랑의 통로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나환자와의 만남에서
유언에서 고백하는 나환자와의 만남은 ‘혐오가 자비로’ ‘쓴 것이 단 것으로’ 회개의 의미를 설명합니다. "내가 죄 중에 있었을 때에는 나병 환자들을 보는 것이 내게는 너무나 비위 상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주님 친히 나를 그들 가운데로 인도하셨고 나는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었다. 그들을 떠나올 때, 전에는 비위 상하던 바로 그것이 내 영혼과 육신에 감미로운 것으로 변해 있었다." 여기서 '감미로움'은 감상적인 기쁨이 아닙니다. 자신의 가장 추악한 편견과 두려움이 깨진 자리에서 맛보는 영적 해방감이었습니다. 완전함을 추구하던 그가 '가장 불완전하고 버림받은 존재' 안에서 하느님의 얼굴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 사건은 프란치스코 영성의 두 가지 핵심을 보여줍니다. 첫째, 자기 부정은 자신의 감각과 판단(혐오감)을 거스르는 용기였습니다. 나를 죽여야만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둘째, 성벽 안(부유층, 건강한 이들)에 머물던 그가 성벽 밖(소외된 이들, 나병 환자 수용소)으로 '건너간' 사건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가 보여준 진정한 의미의 파스카였습니다
굽비오의 늑대이야기에서
굽비오의 늑대 이야기는 공포를 형제로 바꾸는 힘의 이야기입니다. 이 일화는 단순히 동물과의 소통을 넘어, 우리 마음속의 '야수성(분노, 공포)'과 어떻게 화해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줍니다. 폭력은 더 큰 폭력을 낳지만, 상대의 고통(배고픔)을 이해하는 자비는 원수조차 형제로 만듭니다.
나환자들과의 공동체로 시작된 작은 형제들의 삶
나환자들과의 만남 이후, 프란치스코를 따르는 제자들이 생겨나면서 초기 공동체(작은 형제회)의 기틀이 잡힙니다. 그들의 생활 방식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습니다. 리보또르토에서 프란치스코는 형제들에게 "나병 환자들 가운데 거주하며 그들을 섬기는 것을 기뻐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는 단순히 구제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삶을 완전히 공유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형제들은 노동을 하거나,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할 때는 다른 이들의 도움을 청했습니다. 이는 나환자들이 구걸로 생계를 잇던 비참한 현실에 스스로 동참함으로써, 소유를 포기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절대적 자유를 실천한 것입니다.
800주년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오늘날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하고, 완벽한 스펙을 쌓고, 결점 없는 이미지를 전시하며 삽니다. 프란치스코는 800년의 시간을 건너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당신의 깨진 틈으로 빛이 들어옵니다. 완벽해지려 애쓰기보다, 그 틈으로 곁에 있는 형제의 손을 잡으십시오.” 프란치스코의 죽음은 우리에게 "어떻게 죽을 것인가가 곧 어떻게 살 것인가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완전하기를 고집하며 움켜쥐는 삶이 아니라, 부족한 대로 나누고 마지막 순간에 모든 것을 기쁘게 놓아줄 수 있는 삶. 그것이 바로 그가 800년 전 맨땅 위에서 보여준 파스카의 참뜻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