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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과 공현과 세례의 만남 안에서 

 

만남 속에 흐르는 거룩한 숨결 : 성령의 활동

신앙의 여정은 '만남'의 연속인 관계입니다.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은 홀로 계신 분이 아니라, 끊임없이 인간에게 다가와 관계를 맺으시는 '친교의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만남의 중심에는 사랑의 끈이자 일치의 원리이신 성령께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성탄과 공현, 그리고 주님 세례의 사건을 통해 우리 삶의 세 가지 층위에서 일어나는 성령의 활동을 묵상하고 이를 프란치스칸 감성으로 바라보았습니다.

 

1. 하느님과 나의 만남 : 성탄, 내면의 구유에 오시는 성령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루카 1,35) 성탄은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시어 우리 곁에 오신 '겸손한 만남'의 사건입니다. 성령께서는 동정녀 마리아의 태중에서 강생의 신비를 이루셨듯이, 오늘날에도 우리 영혼 안에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시도록 일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마음의 완고함을 허물고, 작고 무력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시는 하느님을 영접하게 하십니다. 하느님과 나의 만남은 거창한 곳이 아니라 나의 가장 가난하고 부끄러운 '내면의 구유'에서 일어납니다. 성령은 우리가 자신의 나약함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안에서 우리를 안아주시는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하게 하는 통로가 되십니다. 성탄의 성령은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마라"고 속삭이시며, 하느님을 '멀리 계신 심판자'가 아닌 '나와 함께 계신 임마누엘'로 만나게 하십니다.

 

2. 사람과 사람의 만남 : 공현, 경계를 허무는 보편적 사랑

"민족들이 복음을 통하여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공동 상속자가 되고..." (에페 3,6) 공현은 아기 예수님이 이스라엘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동방 박사들로 대변되는 온 인류에게 드러나신 사건입니다. 이는 '나와 너', '우리와 그들' 사이에 그어진 선을 지우는 성령의 활동을 보여줍니다. 성령은 다름을 틀림으로 보지 않게 하십니다. 동방 박사들이 별의 인도를 따라 낯선 길을 떠났듯이, 성령께서는 우리를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타인'이라는 별을 향해 나아가게 하십니다. 진정한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하느님의 모상을 발견할 때 완성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환대의 영'을 불어넣으십니다. 낯선 이, 소외된 이 안에서 주님의 얼굴을 알아보게 하시며, 인종과 계층, 종교의 벽을 넘어 모든 인간이 한 형제임을 깨닫게 하는 일치의 일꾼이 되게 하십니다.

 

3. 피조물과 나의 만남 : 주님 세례, 성화된 물질과 생태적 영성

"하늘이 열리고 성령께서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분 위에 내려오셨다." (루카 3,22)

예수님께서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께서는 물 위에 내려오셨습니다. 이는 단순히 예수님의 신성을 드러내는 것을 넘어, 물이라는 물질, 즉 온 피조 세계가 성령의 손길 아래 성화(聖化)되었음을 선포하는 사건입니다. 성령은 모든 피조물 안에 깃들어 있는 '생명의 숨결'입니다. 주님 세례 사건에서 성령은 인간뿐 아니라 물과 흙, 공기와 모든 생명체가 하느님의 창조 은총 안에 머물고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피조물을 단순히 '이용 대상'으로 보는 오만을 버리고, 함께 하느님을 찬미하는 '공동의 집'의 구성원으로 만나게 하십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이는 한 포기의 풀과 흐르는 강물에서도 창조주의 흔적을 발견합니다. 피조물과의 만남은 곧 생태적 회개로 이어지며, 만물 안에서 일하시는 성령의 현존을 느끼며 세상을 아끼고 보살피는 태도를 갖게 합니다.

 

만남속에 깃든 선물

성령은 우리를 고립시키지 않으시고 언제나 '밖으로' 이끄시는 분입니다. 성탄의 성령을 통해 하느님과 깊은 일치를 이루고, 공현의 성령을 통해 타인을 형제로 맞이하며, 세례의 성령을 통해 피조 세계와 조화를 이루는 삶. 이 세 가지 만남이 우리 삶에서 선순환할 때, 우리는 비로소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신앙인이 됩니다. 오늘도 우리 곁에 머물며 모든 만남을 거룩하게 변화시키시는 성령께 마음을 열어 드립시다. 그분은 만남의 신비를 통해 우리를 진정한 사랑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만남의 신비를 프란치스칸 감성으로

세상의 모든 존재는 서로를 향해 열려 있는 문입니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 서로의 영혼이 마주치는 그 찰나의 공간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거룩한 바람이 붑니다. 성령은 홀로 계시지 않고 언제나 '사이'에 계시며, 낮아지고 가난해진 마음의 틈새를 찾아 '만남'이라는 신비를 빚어내시는 거룩한 도공이십니다.

 

그렉치오의 말 구유에서

성령은 우리를 지극히 작아지게 함으로써 지극히 높으신 분을 마주하게 하십니다. 저 옛날 베들레헴의 마구간에서, 그리고 프란치스코가 재현했던 그렉치오의 차가운 외양간에서 성령은 '가난'이라는 언어로 하느님을 우리에게 번역해 주셨습니다. 성탄은 하늘이 땅으로 내려온 사건을 넘어, 성령의 숨결로 우리 영혼이 낮아져 하느님의 겸손과 눈높이를 맞춘 사건이라 할 수있습니다. 내 안의 가장 비천하고 부끄러운 구석, 그 마른 짚풀 같은 마음 위에 성령께서 이슬처럼 내리실 때, 나는 비로소 부유함을 버리고 가난하게 오신 나의 하느님을 만납니다. 그분은 나의 업적이 아니라 나의 텅 빈 손을 잡으시며, 성령은 그 빈 손바닥 위에 '임마누엘'이라는 뜨거운 인장을 새기십니다.

 

공현의 별빛, 타인의 얼굴에서 피어나는 형제애

성령은 우리를 가두고 있던 인과응보의 틀과 '자아'라는 성벽을 허물고 낯선 거리로 등을 떠미는 빛의 인도자이십니다. 동방의 박사들을 별빛으로 이끌어 아기 앞에 무릎 꿇게 하셨던 그 성령은, 오늘날 우리를 '타인'이라는 땅으로 초대하십니다. 프란치스코가 나병 환자의 일그러진 얼굴에서 그리스도의 광채를 보았을 때, 그것은 인간의 시력이 아니라 성령의 안목이었습니다. 공현은 먼 곳의 하느님이 드러나신 사건일 뿐 아니라, 내 곁의 형제자매가 사실은 하느님을 담은 보물상자임을 깨닫는 사건입니다. 성령이 우리 사이에 흐를 때, 피부색과 언어와 사상의 장벽은 투명해지고, 우리는 서로의 발을 씻겨주려는 마음으로 '작은형제'가 되어 만납니다. 타인의 고통이 내 살갗의 아픔이 되고, 타인의 기쁨이 내 영혼의 찬미가 되는 그 기적 같은 공감은 오직 만남의 영이신 성령께서만 피울 수 있는 꽃입니다.

 

요르단 강가에서,

성령은 만물 위에 머물며 생기를 불어넣으시는 거룩한 생명력이십니다. 주님께서 요르단 강물 속에 온몸을 담그셨을 때, 성령은 비둘기처럼 내려와 물과 흙과 공기, 이 땅의 모든 물질을 축복하셨습니다. 이제 세례의 신비 아래서 자연은 우리와 함께 숨 쉬는 혈육이 됩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누나인 물'의 정결함을 가르쳐 주시고, '형제인 태양'의 따스함에서 하느님의 자애를 느끼게 하십니다. 작은 벌레의 꿈틀거림에서도, 바람에 흔들리는 들풀의 군무에서도 성령의 지휘를 듣는 이는 더 이상 세상을 지배하려 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 모든 피조물과 손을 잡고 "찬미받으소서"라고 노래하며, 만물과 내가 한 뿌리에서 나온 하느님의 숨결임을 고백하는 우주적 만남을 이룹니다.

 

도구로서 길을 걸으며

성령은 우리를 고립된 섬으로 두지 않으시고, 끊임없이 ''를 건너 ''에게로, 그리고 '세상'에게로 흐르게 하십니다. 성탄의 가난으로 하느님을 품고, 공현의 빛으로 형제를 껴안으며, 세례의 은총으로 온 세상 피조물과 화해하는 삶.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비로소 프란치스코가 꿈꿨던 '평화의 도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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