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Image
06Sep
2025년 9월 7일 연중 제 23주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2025년 9월 7일 연중 제 23주일 아니마또레 평화기도 by 고인현 도미니코 신부 ofm 아니마또레(이태리어): '보듬어 주고 활력과 영감을 불어넣는 자'를 의미합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에서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한 성모님을 ‘평화의 모후’이시며 ‘모든 ...
Date2025.09.06 Category말씀나누기 By고도미니코 Reply0 Views33
---------------------------------------
오늘 독서와 복음을 면밀하게 살필 때
오늘의 주제는 잘 헤아려서 하라는 것인 것 같습니다.
덧붙인다면 무턱대고 하지 말고 잘 헤아려서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혜와도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무턱대고 하지 않고 잘 헤아리며 뭘 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복음의 주님께서도 “먼저 앉아서 헤아리지 않겠냐?”라고 말씀하십니다.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먼저 앉아서 따지는 시간이 꼭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면에서 저는 지혜로운 사람이 못 됩니다.
저는 무턱대고 하는 사람이지 잘 따지고 재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뜻이라고 생각되는 사랑의 일이라면 재지 않고 저지릅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이란 걸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오늘 지혜서도 이렇게 얘기하지 않습니까?
“어떠한 인간이 하느님의 뜻을 알 수 있겠습니까?
누가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을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저의 경우 저의 무모함을 보완하는 것이 주변 사람들입니다.
따지지 않는 저의 옆에서 따져주는 분들이 꼭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분이 없이 저지른 경우에는 실패한 뒤에 하느님 뜻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저와 같이 되지 않으려면 잘 헤아리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첫째로 잘 헤아려야 할 것이 바로 주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이에 대한 답이 오늘 지혜서에 있습니다.
“당신께서 지혜를 주지 않으시고 그 높은 곳에서
당신의 거룩한 영을 보내지 않으시면 누가 당신의 뜻을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저처럼 옆 사람에게 묻기 전에 주님께 지혜를 청하는 것이고 그것이 기도입니다.
앉아서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헤아리는 묵상도 하고,
거룩한 지혜의 영을 보내주십사고 청하기도 하는 것이 바로 기도이지요.
둘째로 그것이 하느님 뜻일지라도
내가 그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그것을 잘 헤아려야 합니다.
자기 능력을 헤아림, 주제를 알고 분수를 아는 것, 이것이 지혜이지요.
그런데 이것을 잘 헤아리고 안다는 것은, 그 일이 어떤 일인지
어떤 어려움이나 문제가 있는지 헤아리는 것과 밀접합니다.
내 능력으로 곧 내 힘으로 그것을 할 수 있는지 따지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잘 헤아려야 할 세 번째 것은 우리가 하려고 하는 일이
곧 내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인지 아닌지에 대한 것입니다.
오늘 주님이 예로 드신 것은 건물을 짓는 데 내 힘으로 질 수 있는지,
전투를 하는 데 내 병력으로 싸워 이길 수 있는지 헤아리라는 것이고,
당신을 따르는 일에서도 따를 수 있는 것인지 헤아리라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일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라는 것은 이의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주님을 따르려는 열망이 있을지라도
우리는 무턱대고 주님을 따라나서지 말고 그 어려움들을 헤아려야 한다는 겁니다.
어느 정도로 어려운 일이냐 하면
-부모와 형제와 자녀와 심지어 자신까지 미워해야 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하고,
-자기 소유를 다 버려야 하는 일입니다.
실제로 따르기 전 아직 열망이 있을 때는
그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열망이 클 경우에는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다 이겨내고 오히려 더 큰 열망을 불러일으키지만
열망이 작을 경우에는 어려움이 열망을 식게 하고,
열망이 식으면 조그만 십자가도 지지 못하게 되는 악순환이 일어납니다.
이는 마치 불과 물의 관계와 같습니다.
강원도 산불처럼 워낙 센 불은 물을 갖다 퍼부어도
꺼지지 않고 오히려 거세게 타오르게 되지만
불길이 작고 약한 불은 한 동이 물로도 꺼지지요.
그러니 우리는 따르고자 하는 우리 열망이 얼마나 큰지 잘 헤아려야 합니다.
그리고 열망이 그리 크지 않다면 주님 따르기를 포기할 것이 아니라
성령의 불을 청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