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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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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메시아적 사명과 우리의 사명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이 구절은 이사야서 61장에 나오는 예언으로, 예수님께서 자신의 공적인 복음선포의 삶을 시작하시며 선포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곧 예수님의 메시아적 사명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이 말씀에 예수님의 사명이 담겨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명은 사회에서 소외되고 고통받는 이들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을 실현하는 것이었습니다. 구체적인 사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가톨릭교회는 이 구절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기름 부음 받으시고 메시아로서 자신의 사명을 공식적으로 선포하신 것으로 해석합니다. 이 사명은 단순히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는 것을 넘어, 하느님 구원의 신비를 완성하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사야서의 예언을 당신 자신에게 적용하심으로써, 당신이 바로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시는 메시아이심을 드러내셨습니다.

 

성령으로 기름 부음 받으심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께서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오신 사건은, 그분이 진정으로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받아 구원 사업을 시작하셨음을 의미합니다. 이 기름 부음은 그분을 왕, 사제, 예언자로 삼는 메시아적 직무를 상징합니다.

 

복음 선포의 완성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라는 말씀은 하느님 나라의 복음이 모든 사람에게, 특히 사회에서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에게 가장 먼저 선포되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이는 복음이 단순히 윤리적 가르침이 아니라, 죄와 죽음으로부터 인류를 해방시키는 하느님의 능동적인 구원 행위임을 보여줍니다.

 

영적 해방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고,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며,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냄"은 단순히 육체적 구원을 넘어선 영적 구원의 차원을 내포합니다. 이는 죄의 속박, 무지와 어둠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하느님 자비의 결정체입니다. 예수님은 성사를 통해 이 해방의 은총을 구체적으로 전달하십니다.

 

희년의 선포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는 말씀은 구약의 희년(모든 빚이 탕감되고 노예가 해방되는 해) 개념을 영적으로 완성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십자가 희생과 부활을 통해 인류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새로운 구원의 희년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가톨릭 신자들은 세례성사를 통해 예수님께서 받으신 삼중직(, 사제, 예언자)에 참여하며, 그분의 사명을 계속해서 이어받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는 개인적 차원을 넘어 교회 공동체 안에서 실현됩니다.

 

교회의 사명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그분께서 시작하신 구원 사업을 이 세상에서 계속해서 수행하는 주체입니다. 따라서 교회의 모든 활동, 즉 성사 집전, 말씀 선포, 봉사는 예수님의 사명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것입니다.

 

개인의 실천

신자 개인은 각자의 자리에서 이 사명에 동참합니다. 예언직, 하느님 말씀에 대한 지식과 증언을 통해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삶을 삽니다. 사제직, 일상의 삶을 봉헌하며 기도와 희생을 통해 "하느님께 찬미를 바치는" 영적 제사를 드립니다. 왕직, 자신을 다스리고 이웃에게 봉사하며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키는" 사랑의 실천에 동참합니다.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

가톨릭교회는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새롭게 세우신 백성으로서, 성령의 인도로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사명은 곧 모든 사람을 하느님의 자비에로 이끌어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증언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가톨릭적 관점에서 예수님의 사명은 그분의 몸인 교회를 통해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으며, 모든 신자들은 이 거룩한 사명에 동참하여 세상에 하느님의 사랑과 구원을 증거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프란치스칸 관점에서

프란치스칸 영성에서 루카 복음 418-19절은 예수님의 삶과 성 프란치스코의 삶을 연결하는 핵심적인 구절로 해석됩니다. 프란치스코는 이 말씀을 단순한 예언이나 사명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살아가야 할 예수님 삶의 방식 그 자체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실천하며, 그 자신이 가장 가난한 이들 중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프란치스칸적 해석은 이 구절에 나타난 예수님의 사명을 철저한 가난과 겸손의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너와 피조물 안에서 발견하는 하느님 나라의 현재를 보여줍니다.

 

가난한 예수님 따르기

프란치스코는 '가난한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사명의 출발점으로 삼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가장 낮은 자리에 오셨듯이, 프란치스코는 세상의 부와 권력을 완전히 포기하고 작고 가난한 가난뱅이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프란치스칸에게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은 그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그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삶을 통해 이루어져야 함을 의미합니다.

 

진정한 해방으로서의 가난

프란치스칸 영성에서 가난은 단순히 물질적인 결핍을 넘어, 세상의 속박과 집착으로부터 해방되는 자유를 의미합니다. 프란치스코는 재물과 명예에 대한 욕심이야말로 인간을 억압하는 가장 큰 족쇄라고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하신 것은 바로 이러한 세속적인 욕심과 탐욕으로부터의 해방을 포함합니다.

 

삶으로 전하는 복음

프란치스칸 사명은 말로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닙니다. 프란치스코는 "항상 복음을 선포하고, 필요할 때만 말을 사용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이는 곧 가난하고 소박하며 겸손한 삶 자체가 복음 선포가 됨을 의미합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들과 함께 살며, 그들의 필요를 몸소 나누는 것입니다.

 

모든 피조물과의 형제애

프란치스칸 영성은 모든 가난하고 소외된 존재, '가난한 이들'에 대한 깊은 연민과 형제애를 강조합니다. 이는 사람뿐만 아니라 자연과 동물, 모든 피조물에게까지 확장됩니다.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는" 사명은 곧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의 아름다움과 그 안의 모든 형제자매를 다시 볼 수 있는 영적 시력을 회복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오늘날 프란치스칸의 사명은 바로 이러한 예수님의 삶을 따르기 위하여 가난과 겸손, 작음과 형제애 속에서 복음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는 가난한 이들과 하나가 되어 그들의 고통과 기쁨을 함께 나누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사회적 불평등과 억압에 맞서 싸우며, 하느님의 평화와 사랑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실질적인 복음선포는 일상의 관계 안에서 표현되는 선으로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건네는 말, 억양, 눈빛, 표정, 겸손과 작음 안에서 표현되는 태도와 평화롭고 온순하며 온몸으로 발산하는 기쁨에 찬 모습으로 예수님을 닮아가는 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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