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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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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은 버리고 사랑만 가지고 떠나자는 생각을 저는 오늘 합니다.

내게 욕심이 없는 것 같지만 욕심과 사랑이 내 안에서

아직도 싸우는 것을 보면 내 안에 욕심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의 욕심이란 것이 어제 봤듯이 재물 욕심이 아닙니다.

그건 형제들이 내 맘에 들기를 끊임없이 바라는 그런 것입니다.

 

옛날에 비교하면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아직도 저의 형제들이 저에게 만족을 주기를,

만족을 줄 수 있을 만큼 저의 형제들이 훌륭하기를,

그래서 제가 형제들을 사랑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족을 줘야 사랑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자기중심적인 사랑이요 소유욕적인 사랑일 뿐이고

그래서 사랑이 아니고 실은 애욕 곧 사랑 욕심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기서 두 가지를 성찰하고 반성코자 합니다.

저의 자기중심적인 문제와

인간에게서 만족을 찾는 문제.

 

저의 자기중심적인 문제란 남을 내 만족의 도구화하는 잘못입니다.

아주 극단적으로 바꿔 말하면 내 <기쁨조>가 되라고 요구하는 겁니다.

 

그는 흰옷을 좋아하는데 내가 빨간색을 좋아하니 빨간 옷을 입으라 하고,

그는 수수하고 털털한 사람인데 내가 깔끔한 것을 좋아하니

깔끔하고 정확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제가 반성해야 할 것은

그는 기쁨조가 아니라 존중받아야 마땅한 존재인데 그렇게 대하지 않은 점과

기쁨조가 되라고 요구할 권한이 저에게 있는 것처럼 그렇게 교만했던 점입니다.

 

 

사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가 저의 만족을 위한 기쁨조가 되는 것이

얼마나 자존심 상하겠습니까? 그리고 이 얼마나 큰 폭력입니까?

 

사실 내 맘에 들기를 바라고 요구하는 것은 심리적 정신적 폭력입니다.

물리적 폭력만 폭력이 아니지요.

원치 않는 것을 억지로 하게 하면 그것이 다 폭력 아닙니까?

 

그런데 그가 스스로 제게 만족을 주려고 할지라도

저는 그에게서 만족을 찾지 말아야 합니다.

 

만족이란 누가 주는 것이 아니고 내가 만족하는 것이며

만족할 줄 알 때 만족하는 것이며 사랑할 때 완전히 만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만족할 줄 알아야 만족을 하고,

사랑할 줄 알아야 만족할 줄 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행복은 만족함이 없고 하느님만이 우리를 만족하게 합니다.

그렇지만 내가 만족할 줄 모르면 하느님도 실은 우릴 만족하게 할 수 없습니다.

 

버릴 줄 알아야 받을 수 있다는 얘기와 함께

받을 줄 알아야 받을 수 있다는 얘기를 하려다가

이렇게 얘기가 많이 옆길로 갔습니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니 저희는 무엇을 받겠습니까?” 하고 베드로는

우리를 대표하고 대신하여 질문을 던집니다.

 

이 질문을 성찰한 우리는 보물이 아닌 재물은 버릴 줄 알아야 하고,

사랑과 구원은 받을 줄 아는 슬기로운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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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홈페이지 용서받은죄인(성체순례자) 56 분 전
    신부님의 말씀을 같은 전례시기에는 어떻게 묵상하고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

말씀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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