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오늘 주님 말씀을 얼핏 들으면 거부감이 들기 딱 좋습니다.
누구를 능가하라고 하시는 말씀도 거부감이 들고,
의로움 면에서 능가하라고 하시니 더 거부감이 듭니다.
그러나 이것은 경쟁적으로 누구를 꼭 이겨 먹으라는 것이 아니지요.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하고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왜 능가하라고 하십니까?
그것은 이 말씀 바로 전에 율법을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다고 한 것의 연장선상입니다.
그들의 의로움 정도로는 의로움을 완성할 수 없으니
누구를 이겨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완성하기 위해서이고,
완성해야지만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경쟁적인 비교 우위가 목적이 아니라
완성과 하느님 나라의 입성이 목적인 것입니다.
이 점은 그럭저럭 이해하겠는데 왜 하필이면 의로움입니까?
왜 사랑이 아니라 의로움을 능가하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그들은 자기들만 의롭다거나 자기들이 더 의롭다고 하는데
더 의롭다고 하는 그들보다 더 의로워야 한다고 하시는 것입니까?
사실 이렇게 자기가 더 의롭다, 자기 말이 더 옳다고 생각하기에
남을 깔보고 서로 더 의롭다고 하다가 싸우고 미워하게 되잖아요?
그러므로 주님께서 그들의 의로움을 능가하라고 말씀하실 때
그 의로움 곧 능가하는 의로움은 실은 의로움이 아니라 사랑이고,
굳이 의로움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사랑의 의로움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능가하는 의로움은 사랑이어야만 합니다.
사랑이야말로 의로움의 완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비단 의로움뿐이 아닙니다.
가난이고 순종이고 겸손이고 모든 덕의 완성이요 최고봉은 사랑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가난을 잘 실천하는데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가난은 불완전한 것이거나 아예 가난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순종한다면서 사랑으로 순종하지 않고 억지로 순종한다면
그것은 불완전하고 순종이라기보다는 복종 또는 굴종입니다.
어쨌거나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의 의로움을 능가하는 것으로
주님께서는 성내지 말고 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는 성내고 욕한다는 얘기지요.
그렇다면 그들이 의롭더라도 성내고 욕하는 의로움인 겁니다.
저의 경우 운전을 거의 하지 않지만 운전할 때
운전을 잘못하는 사람을 보고 성내고 욕합니다.
정치인들의 불의를 보면서는 더 성내고 욕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그것이 무의식적이고 습관적이며
그러고 나면 기분이 매우 더럽고 찝찝합니다.
저의 저 밑에 교만이 있는 것이고
속속들이 사랑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칠게 또는 미숙하게 운전하는 사람을 볼 때
‘저 나쁜 놈!’ 하지 않고 ‘요 예쁜 놈!’ 할 때
제 사랑은 속속들이 사랑이고 의로움을 능가하는 사랑일 것입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