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 승천하신 저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
오늘 사도행전에서 주님께서 오르신 하늘을 제자들이 쳐다보고 있는데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고 천사가 나무람 조로 말합니다.
이에 대해 ‘그럼, 쳐다봐야지 아니 쳐다보면 되겠냐?’ 하고 반문할 것이고,
또 그렇게 반문해야 마땅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도들도 우리도 제자라면 주님 가신 하늘을 봐야 하는데
왜 하늘을 봐야 합니까? 보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것은 우리 인생의 갈 곳 곧 목적지를 잃는 것이요,
그러기에 우리 인생의 희망을 잃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감사송도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올라가신 하늘나라에
그 지체인 저희의 희망을 두게 하소서.” 하고 기도하고 감사송과 바오로 서간도
일관되게 하늘을 봐야 하고 거기에 희망을 둬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하늘을 보는 사람은 희망을 보는 사람입니다.
자기만 보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을 수 없습니다.
자기에게 무슨 희망이 있습니까?
그리고 자기만 보지는 않지만 본다는 것이 고작 다른 인간을 보는 사람도
희망 없기는 마찬가지인데 그 인간에게도 희망 없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좌우지간 하늘을 봐야만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고,
그러기에 하늘 보기 곧 승천 관상을 그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늘을 봐야 하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희망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희망 때문에도 하늘을 봐야 하지만
우리의 사랑 때문에 하늘을 봐야 한다는 말입니다.
바늘 가는 데 실 가는 것처럼
머리이신 주님이 가는 곳이 지체인 우리가 가야 할 곳이요,
내 사랑이신 주님이 가는 곳이 사랑하는 우리가 가야 할 곳입니다.
그런데 ‘가야 할 곳’은 주님이 가신 하늘인데 ‘있어야 할 곳’은 땅입니다.
미래에 가야 할 곳은 주님이 가신 하늘이지만
지금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은 땅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이제는 하늘만 보지 말고 땅도 봐야 합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하늘을 보고 땅을 보고,
하늘도 보고 땅도 봐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아직은 이 세상을 살아야 하고,
더 큰 이유는 아직은 우리가 이웃도 사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우리가 대신해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을 우리가 대신하기 위해
하늘 보기 ‘승천 관상’을 해야 합니다.
강론하셨는지 비교하면 더욱 풍성한 내용을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