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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01 10:03

예수님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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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은 하느님의 아들이 인간 마리아와 요셉을 부모로 우리와 꼭 같은 인간으로 태어나심을 경축하는 축일이다. 그러기에 성탄을 통해 오신 예수님의 모습을 연상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다.


이것은 오늘도 개신교 신자들이 주장하는 십계명 중 둘째 계명에 해당하는 우상숭배라는 것의 편협한 해석의 이해에 도움되는 것이며 교회 역사에서 동방교회에서 꼭 같은 무지에서 연루된 갈등이 있었다.



성상파괴운동(聖像破壞運動) 또는 이콘 파괴운동(영어: iconoclasm)은 8-9세기 동방 기독교에서 성화상(이콘) 공경이 금지되고 성상을 파괴한 운동이다.



726년, 동로마 황제 레오 3세는 콘스탄티노폴리스의 대궁전 입구인 칼케에 장식된 그리스도의 대형 황금 성화를 파괴했는데, 이것은 예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것에서 출발한다면 너무도 비성서적인 광기로 볼 수 있다.



인간 사회에서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기들의 조상들이나 존경하는 사람의 사진을 모아두는 것이 인간 사회의 상식이라면 역사에 나타나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에 대한 확인도 신앙의 풍요로움을 더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우리는 폭 넓게 역사안에서 실재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예수님 모습 이해에 도움이 되는 것들을 보도로 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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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당시 유대 남성의 얼굴


영국의 예술에 조예가 깊은 의사이며 인류학자인 Richard Neave가 갈릴래아 지역에 살았던 1세기 유대인 남성의 실재 두개골을 바탕으로 근육과 피부 조직을 재현했다. 예수님이 사셨던 시대 장소와 같은 곳에서 발견한 두개골로 예수님의 모습을 추정 발견한 것이다.



이것은 오늘 우리들에게 너무 익숙한 전통적인 백인 서양인의 모습과 같은 예수가 아니라 중동의 태양 아래에서 노동으로 단련된 모습의 예수로 검개 그을린 피부 짙은 눈썹 덥수룩한 수염을 가진 전형적인 중동인의 모습인 예수상이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지금까지 서구 취향으로 그려 정착된 예수님은 백인의 모습이나 여기선 유색 인종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것은 이 작가의 취향이 아닌 인류 고고학적인 연구 방법으로 밝힌 것이다.



이것을 직접적으로 예수님의 모습과 연관시킬 수는 없는 것이나 1세기 유대인으로 탄생하신 예수님의 전체적 모습 이해에는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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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린의 성의


이태리 토리노(Torino)의 성 요한 세례자 성당에 보관된 이 유물은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으신 후 무덤에 묻히실 때 수의로 입힌 옷이란 전설로 남은 가로 4.4 세로 1.1 의 아마포 천으로 이 성의는 앞 뒷면에 한 남성의 전신 형상이 희미하게 새겨 진것인데 이 남성의 몸에는 가시관을 쓴 듯한 머리의 상처 발의 못자국, 옆구리의 찔린 상처등이 남아 있어 성서에 나타나고 있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일치하고 있는 것이다.



이 성의는 이태리 사보이 왕가가 보관하고 있었던 것으로 발견 연대는 미상이나 아마 십자군 전쟁 때 동로마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틴노폴에서 구해서 왕가에서 보관하던 것이었다.



그러나 너무 희귀한 것이라 이 성의가 진짜 예수님이 입으신 것인지 1988년 유럽의 몇 대학 연구팀이 측정한 결과, 이것의 생성 연대가 1260년에서 1390년 사이의 작품으로 밝혀 지면서 위작이라는 이론도 있었으나 이것으로 위작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란 견해가 오늘날 과학자들 사이에 생기고 있다.



오히려 사려깊은 과학자들은 이것이 위작이라는 이 결론 자체가 비과학적이란 주장을 하고 있다. 위작이라고 선언한 그 결과 자체가 현대 과학 수준에서 진위를 확인할 수 없는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 예수님의 성의에서 발견되고 있는 꽂가루 중 일부가 이스라엘 예루살렘 근처에서 오늘도 자라고 있는 식물의 것으로 밝혀지면서 이것의 위작 가능성을 반박하고 있는 처지이다. 교회는 신중하게 이것이 진품이다 가짜라는 판단을 내리지 않고 신자들에게 자유로운 마음으로 받아 들일 수 있도록 여유를 주고 있다.



이것을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기 좋은 성미술의 모델로 제시하고 있는 처지이다. 이것이 현대 과학으로는 진품인지 위작인지를 밝히기 어려운 부분이라는 현실을 교회는 제시하고 있다.



또한 성의에 나타나고 있는 남성의 상처는 중세적 방법이기 보다 로마식 형벌 방법에 더 어울림을 알리고 있다. 이 상처는 중세기 고문으로 생긴 상처가 아니라 로마 시대 채찍인 끝에 금속이나 뼈 뭉치가 달려 살을 도려내는 방식으로 받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는데, 이 성의에는 100군데 이상의 이런 상처가 남아 있음이 발견되면서 성서에 나타나고 있는 예수님의 수난과 맞아 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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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고통을 겪으시고 가시관을 쓰신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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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고통을 겪으시고 가시관을 쓰신 예수



오늘날 성당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모시고 있기에 십자가는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나 중세기 초까지 십자가의 죽음을 겪으신 예수를 십자가에 달고 있는 것은 신앙의 큰 수치로 여겨 피했다.



이유는 하느님은 승리의 하느님이신데 어떻게 그런 비참한 죽음을 맞을 수 있는가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비록 십자가를 만들 때라도 고통을 받는 예수님이 아니라 영광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모시는 것을 더 당연하게 생각하던 처지에 고통받는 십자가를 강조한 것은 전적으로 프란치스코회를 위시해서 탁발 수도자들의 설교 덕분이었다.



이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인간에의 사랑을 고통을 수용하는 것으로 설명했으며 이 고통과 희생은 하느님이 인간을 향한  행복으로 이해했기에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의 극렬한 표현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즉,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면서 그분이 겪으신 극심한 고통은 바로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표현되는 큰 행복으로 여겼기에 어떤 십자가는 오늘 우리의 시각으로도 너무 비참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 십자가는 이태리 시칠리아에서 17세기를 살았던 프란치스코회 인노첸시오 수사(Fra Innocenzo da Petralia)의 작품이다.

 

이 수사는 일생 동안 이 한 주제만 접근해서 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고통받는 예수의 모습을  너무 사실적이고 비극적으로 묘사한 십자가를 제작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는 처참한 고통의 순간만이 아니라 고통안에 품고 있는 너무 밝고 아름다운 희생을 통해 표현되는 고도의 행복과 사랑을 담았다.

 

십자가에서 주님께서는 인간의 구원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침에 대한 만족의 표현인 미소와 인간이기에 그가 겪어야 했던 고통, 그리고 이것을 거친 후의 죽음 등 한 십자가에 3개의 심오한 주제를 너무도 아름답게 종합 표현 함으로서 십자가를 음산하고 처참한 고통의 상징이 아닌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 얻을 수 있는 큰 기쁨과 영적 위로임을 드러내었다.

이런 십자가의 영향은 박해 당시 순교자들이 그 힘든 고문과 협박속에서도 신앙을 버리지 않고 평화롭게 순교의 현장으로 향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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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너 살먼(Warner Sallman : 예수의 초상(1940년) (1892~1968)


이것은 미국의 개신교 신자가 그린 것으로 거의 독자적인 인정을 받아 일약 세계적으로 유명한 것이 되었다. 작가는 독실한 개신교 신자로서 광고업자답게 미국인의 취향에 맞는 예수를 그렸는데, 이것은 성화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가 강한 개신교들에게 파격적인 인기를 얻어 거의 5억장이 복사되는 성공을 거두었다.



우리나라 개신교에서도 예수님의 초상으로는 거의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할 만큼 이 작가의 작품은 개신교의 심볼 마크처럼  사용되고 있다. 개신교 신자들 특히 미국 개신교도를은 성서에 나오는 우상 숭배라는 것의 편협한 이해로 신앙을 답답하게 만드는 안타까움이 있는데, 작가는 광고업자이기에 예수를 인기 상품처럼 답답한 미국 사회에 침투할 수 있는 방법으로 그렸다. 이것을 위해 그는 성서의 예수 보다는 경제대국 미국 사회에서 성공한 모델의 인간으로 예수를 부각시켰다.



이 모델은 영락없는 푸른 눈에 흰 피부, 곱게 다듬은 머리를 한 앵글로 섹션 꽃미남의 얼굴이며 미국인에게 선망의 대상인 전형적인 영국 남자의 모델이다.



미국을 시작할 때 이들은 다음과 같은 건국 이념을 세웠는데, 즉 WASP라는 것 미국은 백인의 국가요, 백인 중에서도 스페인이나 프랑스가 아닌 영국인이 주축이 된 국가이어야 하고, 종교적으로는 개신교가 되어야 한다는 성서와 전혀 무관한 허황한 목표를 세웠는데 이 예수는 이런 미국 개신교 신자들을 희극적인 예수의 모습에 무조건적인 열광을 불러 일으켰다.



헌데 지금 미국은 온 세계인들이 여러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모인 합중국이 되었으나 이런 편협한 이상에 도취된 인간들이 있으며 오늘 트럼프의 정책도 이런 것과 비슷한 방향을 보이고 있다.



이 작품은 특히 우리 나라처럼 광적으로 미국에 대한 열광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나라의 상징인 미국이 바로 예수 믿어 성공한 이상국가의 모델이라는 암시를 강하게 주게 만들면서 미국형 성공 모델로서의 예수를 전파하는데 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오늘 우리나라 우파 집회에서 개신교 신자들이 성서와 무관한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나오는 것은 바로 이런 사상적 뒷받침에 세뇌된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이땅의 대종 개신교 신자들이 만들고 있는 우파적 운동 방향은 한국 사회의 성장에 큰 암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데, 먼 차원에서 보면 이런 작품이 바로 이들의 광기를 부추기는 큰 역할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성서에 나타난 예수, 용모에 대해선 그리 자랑할 것이 없다고 표현된 이샤야 53장에 나타나는 예수의 모습과 거리가 먼 꽃미남, 오늘 젊은이들의 우상이 되고 있는 인기 연예인처럼 산듯한 모습의 예수 는 이제 성서를 신앙의 유일한 원천이라고 강조하는 교회에서 까지 열광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이사야 예언자는 예수님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그리고 있다.

“그에게는 우리가 우러러볼 만한 풍채도 위엄도 없었으며 우리가 바랄 만한 모습도 없었다. 사람들에게 멸시받고 배척당한 그는 고통의 사람, 병고에 익숙한 이였다. 남들이 그를 보고 얼굴을 가릴 만큼 그는 멸시만 받았으며 우리도 그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사 53,2-3)

이런 관점에서 볼 때 3번에 제시된 십자가의 예수의 모습이 얼마나 정확한 성서적 표현이며 가톨릭 교회가 표현하고 있는 예수상의 모습이 너무 심오하면서도 정확한 예수의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이 작품은 “종교 상품” 수준의 예수에 불과하며 이 작품이 일부 크리스챤이라는 사람들에게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오늘 일부 크리스챤들의 신앙의 현주소를 너무도 잘 표현하고 있다.



세계에서 유래를 보기 힘든 폭발적인 교세성장의 현실에서 성공신화를 창출하는 대형 교회의 위상을 통해 한국 교회의 심각한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이 예수상은 우리가 극복해야 할 보수성이라기 보다 너무도 왜곡된 예수상의 좋은 모델로 볼 수 있다.



같은 개신교라도 독일이나 프랑스 계통에서는 전혀 받아 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오늘 독일의 개신교회는 과거 가톨릭 성당을 자기들이 접수해서 쓰는 곳도 많이 있는데 이곳에는 성체를 모신 감실, 성모상 십자가 등 여러 성물이 있으나 그냥 보존하고 있는 곳이 너무 많은 처지에서 오늘 이땅에서 거의 유일한 것으로 환영받고 있는 이 작가의 작품이 품고 있는 허구성을 이해했을 때 이 작품은 제 기능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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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성심


가톨릭 교회는 역사안에서 깊은 신앙적 사색을 통해 예수에 대한 더 정확한 이해에 접근했으며 이것은 성미술을 통해 너무도 아름다우면서도 예수님의 참모습을 전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13세기 성 프란치스코 성인은 라 베르나에서 오상을 받으심으로 인간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을 극적으로 표현했는데, 여기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구심점으로 하는 신심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교회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새로운 영적 활력이 필요했을 때 그 근원지를 바로 예수 성심에서 찾게 된 것은 너무도 당연한 귀결이었다. 예수회 창설자인 성 이냐시오 성인도 영성수련을 통해 기성 수도회와 전혀 다른 철저히 개인적 선택과 책임감을 필요로 하는 예수회원적인 삶의 에너지원으로 예수 성심의 사랑을 제시하고 이것을 마치 예수회라는 수도회의 상징으로 표현한 것은 너무 당연한 귀결이다.

오늘날 예수 성심은 개인적 신심 차원을 넘어 사회정의와 평화를 위한 활동적 영성의 기틀을 마련하고 있다. 우리는 많은 순간 예수 성심을 개인적인 묵상의 좋은 주제 정도로 생각하는 것에서 탈피해서 통합적 영성, 가톨릭 영성의 균형잡힌 모습을 표현하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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