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목숨과 정신과 힘을 다하여.
전부를 다해 사랑한다는 것은 단지 열심한 신앙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분열되지 않은 존재를 요청합니다. 생각은 하느님께 향해 있으면서 마음은 세상 염려에 붙들려 있고, 입술은 사랑을 말하면서도 몸은 타인을 밀어내고, 신앙은 고백하면서도 일상은 두려움과 계산으로 굴러가는, 그런 찢어진 상태를 넘어서라는 부르심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내 존재의 한 부분만 떼어 봉헌하는 일이 아니라, 나의 기쁨과 상처, 열정과 피로, 기억과 희망, 판단과 선택, 능력과 한계까지도 모두 그분의 빛 안에 내어놓는 일입니다. 곧 내 전부가 사랑의 방향을 바꾸는 일입니다.
마음은 우리의 감정과 애착이 머무는 자리입니다. 목숨은 살아가려는 의지와 존재의 중심입니다. 정신은 무엇이 참되고 선한지 분별하는 내면의 눈입니다. 힘은 오늘을 살아내는 실제 행동과 에너지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은, 단순히 마음속 호감이나 종교적 감동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무엇을 갈망하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무엇을 옳다고 여기는지, 무엇에 나의 힘을 쓰고 있는지까지 묻는 말씀입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방향이고, 방향은 결국 삶 전체의 형태가 됩니다. 그래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따로 떨어질 수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눈앞의 사람을 차갑게 대할 수는 없습니다. 기도 안에서는 경건하면서 관계 안에서는 날카롭다면, 우리의 수직은 아직 참된 수평을 낳지 못한 것입니다. 반대로 이웃을 위한다 하면서도 하느님 안에 뿌리내리지 못하면, 사랑은 쉽게 자기과시나 소진, 통제와 실망으로 변질됩니다.
하느님께 닿는 사랑은 반드시 사람에게로 흘러가고, 사람을 살리는 사랑은 반드시 하느님께서 근원이 되십니다. 수직과 수평은 서로를 증명합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매우 중요한 한 축이 있습니다.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 이 말씀은 자기중심성을 허락하는 말이 아니라, 자기 존재의 존엄을 먼저 받아들이라는 초대입니다. 자신을 하찮게 여기고, 미워하고, 끝없이 정죄하는 사람은 타인에게도 결국 같은 방식으로 반응하기 쉽습니다.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은 타인을 향해서도 쉽게 비교하고, 시기하고, 판단하고, 지배하려 듭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내 욕망을 무조건 충족시키는 일이 아니라, 내가 하느님의 모상으로 지음받은 귀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일입니다. 상처 입고 모자라고 흔들리는 나일지라도, 하느님께서 포기하지 않으시는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이 받아들임이 있을 때 비로소 사랑은 바른 자리를 찾습니다.
나는 나를 우상처럼 섬기지 않으면서도 함부로 짓밟지 않습니다. 나는 타인을 두려움으로 붙들지 않으면서도 무관심으로 놓아버리지 않습니다. 사랑은 집착과 방임 사이의 길이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서로를 살리는 길이 됩니다. 그러니 전인적인 사랑은 아주 작은 곳에서 시작됩니다. 오늘 내 앞에 있는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일, 상처 난 마음으로 퉁명스럽게 굴고 싶은 순간 한 번 더 부드럽게 말하는 일, 바쁜 와중에도 잠시 멈추어 “주님, 지금 여기 계십니다” 하고 기억하는 일, 누군가의 부족함을 판단하기보다 그 사람이 지닌 고단한 삶의 무게를 헤아려 보는 일, 내 자신에게조차 채찍 대신 자비로운 진실을 허락하는 일. 사랑은 대개 이렇게 작고 조용한 모습으로 우리의 일상의 하루 안에 들어옵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삶의 중심을 그분께 드리는 일이고,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중심에서 흘러나오는 따뜻함으로 세상을 대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랑의 흐름을 막지 않도록, 하느님께서 빚으신 나의 존재를 감사로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사랑은 늘 “더 많이 하라”는 강박으로 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나뉘어진 너 자신을 하나로 모아, 전부로 살아라”는 부르심으로 옵니다. 마음도, 목숨도, 정신도, 힘도 따로 놀지 않게 하여, 존재 전체가 하나의 찬미가가 되게 하라는 초대입니다. 그때 우리의 일상은 더 이상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하느님을 기억하고 이웃을 품고 자신을 받아들이는 거룩한 자리로 변해 갑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마르코 12,30)이 말씀은 우리에게 더 많은 일을 하라고 재촉하는 명령이 아니라 흩어져 있는 우리 존재를 다시 하나로 모으는 부르심처럼 들립니다. 우리는 너무 자주 조각난 채로 살아갑니다. 생각은 하느님께 향한다고 말하지만 마음은 작은 인정 하나에 흔들리고, 기도하는 입술은 경건하지만 손은 쉽게 타인을 밀어내고, 사랑을 말하는 영혼은 일상의 사소한 관계 안에서 얼마나 쉽게 닫혀버리는지 모릅니다. 마음은 사랑하고 싶은 곳으로 흐르는 강물입니다. 목숨은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를 묻는 깊은 중심입니다. 정신은 무엇이 참되고 선한지를 알아보는 내면의 눈입니다. 힘은 오늘 하루를 실제로 살아내는 손과 발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단지 감동적인 기도를 드리는 일이 아니라 내가 무엇을 갈망하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무엇을 붙들고 있는지, 무엇을 위해 나의 힘을 쓰고 있는지까지 하느님 앞에 드러내는 일입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이 단순한 진실을 누구보다도 깊이 알았습니다. 그는 어느 날 자신의 삶을 붙들고 있던 많은 것들을 내려놓고 가난과 작음과 겸손의 거친 길 위로 걸어 나갔습니다. 작아진다는 것은 자신을 지우는 일이 아니라 사랑이 흐를 수 있는 빈 공간이 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빈 공간 속으로 하느님의 선이 조용히 흘러 들어옵니다. 그리고 그 선은 멈추지 않습니다. 하느님 사랑은 언제나 사람에게로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느님 사랑을 말씀하시면서 곧바로 이웃 사랑을 말씀하셨습니다. 수직의 사랑과 수평의 사랑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하늘을 향한 기도가 사람을 향한 자비로 흐르지 않는다면 그 기도는 아직 하늘에 닿지 못했는지도 모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결국 사람을 향해 걸어갑니다. 그리고 그 길 한가운데 또 하나의 중요한 진실이 놓여 있습니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 이 말씀은 우리가 먼저 깨달아야 할 사실을 말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존재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자신을 너무 쉽게 미워합니다. 자신의 약함을 부끄러워하고 자신의 상처를 감추고 자신의 부족함을 끊임없이 정죄합니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가혹한 사람이 되면 결국 타인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대하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기 욕망을 채우는 일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나를 여전히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무상성과 보편적 사랑으로 창조하신 모든 존재를 개별적으로 돌보십니다. 나는 사랑이신 하느님으로부터 내어주시는 사랑을 받고 있으며 내 믿음의 근원은 거기에 있습니다. 상처 입고 흔들리는 나는 그분의 손 안에서 사랑받고 있다는 자각이 성장하면서 응답하는 내 믿음도 커졌습니다.
사랑은 희생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사랑은 대개 일상의 아주 작은 자리에서 시작됩니다.아침 식탁에서 누군가의 피곤한 얼굴을 보고 조용히 따뜻한 말을 건네는 일, 바쁜 하루 속에서 잠시 멈추어 하느님을 기억하는 일, 누군가의 부족함을 판단하기보다 그 사람이 감당하는 무게를 헤아려 보는 일. 이 작은 순간들이 사랑의 시작입니다. 사랑은 대개 아주 작은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아침에 만난 사람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순간, 누군가의 서툰 말 뒤에 있는 그 사람의 피로와 두려움을 조금 더 이해하려는 순간, 분주한 하루 속에서 잠시 멈추어 하느님의 현존을 기억하는 순간.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이 작은 순간들이 사랑의 시작입니다.
하느님이 선이시라면 그 선은 반드시 흘러갑니다. 그리고 그 선은 언제나 가장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느님 사랑을 말씀하신 직후 곧바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 (마르코 12,31)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하늘을 향한 사랑이 사람을 향한 자비로 흐르지 않는다면 그 사랑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사랑입니다. 사랑은 추상적인 이상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삶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을 가능하게 하는 또 하나의 깊은 진실이 있습니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 이 말씀은 우리가 먼저 받아들여야 할 사실을 말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존재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자신에게 가장 가혹한 사람이 됩니다. 자신의 약함을 미워하고, 자신의 상처를 숨기고, 자신의 부족함을 끊임없이 정죄합니다. 그렇게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타인도 받아들이기 어려워집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과, 사람을 사랑하는 일과, 자신을 받아들이는 일이 사실은 하나의 강물이라는 것을. 그 강물의 이름은 자비입니다. 그리고 그 강물은 언제나 가장 낮은 곳을 향해 조용히 흐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