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심층에서 드러나는 하느님 아버지의 완전성에 대한 묵상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태 5,48)
해와 비의 공평함 아래에서 배우는 완전함,
하늘은 매일 아무런 차별 없이 열립니다. 아침이 오면, 해는 질문하지 않습니다. “너는 오늘 선한 일을 했느냐?” “너는 나를 배반하지 않았느냐?” 해는 묻지 않고 비춥니다. 비도 따지지 않고 내립니다. 악인의 지붕 위에도 같은 빛이 떨어지고, 의인의 밭에도 같은 빗방울이 스며듭니다. 이 무차별성은 무관심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긍정하는 하늘의 방식입니다. 하늘은 행위를 먼저 보지 않고 존재를 먼저 받아들입니다. 그분의 사랑은 평가의 결과가 아니라 존재를 향한 원초적 긍정입니다. 우리는 관계 안에서 늘 조건을 만듭니다. 나에게 따뜻했던 사람에게만 마음을 열고, 나를 인정해준 사람에게만 웃음을 건네며, 나를 이해해준 사람에게만 시간을 내어줍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우리의 상처는 안전한 곳을 찾고, 우리의 마음은 자신을 보호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 경계를 넘어서 계십니다. 그분은 당신을 외면했던 사람 위에도 빛을 멈추지 않으십니다. 당신을 오해했던 사람 위에도 비를 거두지 않으십니다.
완전함이란 흠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사랑이 멈추지 않는 상태입니다. 완전함이란 상처받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상처 때문에 사랑을 중단하지 않는 상태입니다. 완전함이란 모든 것을 통제하는 능력이 아니라, 사랑이 흐르는 것을 막지 않는 자유입니다. 우리 안에는 두 개의 태양이 있습니다. 하나는 조건이 충족될 때만 떠오르는 태양입니다. 이 태양은 계산 속에서 떠오르고 실망 속에서 쉽게 집니다. 다른 하나는 존재 자체를 향해 떠오르는 태양입니다. 이 태양은 상대의 반응에 의해 결정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근원에서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완전함은 도덕적 완벽성이 아니라 존재를 향한 무조건적 개방성입니다. 그분은 나를 사용할 수 있을 때만 사랑하지 않으십니다. 내가 올바를 때만 가까이 오지 않으십니다. 내가 넘어졌을 때에도 당신 위에 빛을 거두지 않으십니다. 관계의 현장에서 이 완전함은 매우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나를 무시한 형제에게 마음의 문을 완전히 닫지 않는 순간, 당신을 오해한 자매를 내면에서 완전히 지워버리지 않는 순간, 나를 힘들게 한 사람을 존재 자체로는 거부하지 않는 순간, 그 순간 내 안에서 하늘의 태양이 떠오릅니다.
완전함은 하느님처럼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흐름을 막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주님의 영이 내 안에서 사랑하는 것이며 내가 누군가를 용서할 때 내가 아니라 영의 활동이 내 안에서 비를 내립니다. 그러므로 완전함은 명령이 아니라 초대입니다. “완전하여라”는 말은 스스로 완전해지라는 요구가 아니라, 아버지의 완전함이 관계 안에서 흐르도록 허용하라는 초대입니다. 오늘도 해는 떠오릅니다. 내가 충분히 선해서가 아니라, 그분이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 해는 내 안에서도 떠오르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완전함은 무상성과 보편성안에서 드러납니다
존재를 조건 없이 긍정하시는 사랑의 본질에 대한 묵상에 마음을 열면 하느님의 완전함은 결핍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아무 조건 없이 자신을 내어주시는 충만함이라는 사실에 눈을 뜹니다. 그분은 계산하지 않으십니다. 먼저 저울을 꺼내 들고 우리의 자격을 달아보지 않으십니다. 먼저 공로를 확인한 뒤에 사랑을 결정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의 사랑은 언제나 먼저 옵니다. 우리가 아직 응답하기 전부터, 우리가 아직 돌아서기 전부터, 우리가 아직 그분을 알기 전부터, 그분의 해는 이미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무상성입니다. 무상성은 값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값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분의 사랑은 대가가 없기 때문에 값싼 것이 아니라, 대가로 환산될 수 없기 때문에 무상입니다. 하느님은 사랑하신 다음에 기다리십니다. 사랑받을 자격이 증명되기를 기다리지 않으시고, 사랑이 열매 맺기를 기다리십니다.
그분의 완전함은 보편성 안에서 드러납니다. 그분은 일부만 선택하여 사랑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의 사랑은 경계를 알지 못합니다. 선한 이에게만 머물지 않고, 악한 이에게서도 물러나지 않습니다. 의로운 이에게만 흐르지 않고, 넘어진 이의 자리에도 동일하게 스며듭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대상에 의해 결정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분의 본질에서 흘러나옵니다. 우리는 선택적으로 사랑합니다. 우리의 사랑은 반응에 의해 움직입니다. 환대받으면 열리고, 거부당하면 닫힙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완전함은 닫히지 않습니다. 거절 속에서도 멈추지 않고, 배반 속에서도 철회되지 않으며, 침묵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무상성과 보편성은 하느님 사랑의 두 흐름입니다. 무상성은 사랑의 시작이 우리에게 있지 않음을 드러내고, 보편성은 사랑의 범위가 제한되지 않음을 드러냅니다. 이 완전함은 우리에게 도달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우리 안에서 계속 흐르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누구를 판단하기 전에 그 존재를 먼저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가 사랑받을 만한 이유를 찾기 전에 먼저 사랑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 순간 하느님의 완전함은 우리 안에서 형태를 얻습니다. 완전함은 흠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사랑이 조건을 갖지 않는 상태입니다.
완전함은 모든 것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줄 수 있는 자유입니다. 하느님은 완전하시기 때문에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시기 때문에 완전하십니다. 그리고 그 완전함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안에서 무상으로, 그리고 모든 이를 향해 조용히 흐르고 있습니다. 너와 나 사이에, 모든 피조물과 나 사이에 한결같이 흐르는 거대한 사랑의 강물입니다. 그리고 이 강물을 막지만 않는다면 성전 오른편에서 흘러나오는 물처럼 그 물이 닿는 곳마다 온갖 생명이 만발하게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