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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현실의 변곡점, 추락에서 만나는 참된 부활

 

인간은 누구나 높은 '이상'을 꿈꾸지만,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곳은 늘 비루하고 나약한 '현실'입니다. 신앙의 여정 또한 이 두 지점 사이의 끊임없는 갈등과 화해의 과정입니다. 성경의 인물들과 성인들, 그리고 오늘을 사는 우리 역시 '자만'이라는 이름의 높은 말 위에서 떨어져 '겸손'이라는 낮은 땅바닥에 닿을 때까지 추락에서 죽음을, 죽음에서 부활을 경험하면서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고 사랑하고 용서하는 법을 배웁니다.

 

베드로의 현실 : 장담에서 배반으로

베드로는 언제나 열정적인 이상주의자였습니다. "주님과 함께라면 죽는 자리까지라도 가겠습니다"라고 호기롭게 장담했습니다. 그의 이상 속에서 자신은 주님을 끝까지 지키는 영웅이었습니다. 그러나 닭이 울기 전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던 그 추운 새벽의 현실은 그를 처참하게 무너뜨렸습니다. 자신의 나약함을 직시한 베드로의 눈물은 단순한 후회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나의 힘으로 지키는 사랑'이라는 이상이 깨지고, '주님의 자비에 기대는 사랑'이라는 현실로 들어가는 회개의 시작이었습니다.

 

바오로의 현실 : 박해의 말에서 떨어짐

사울은 자신의 신념이 하느님의 뜻이라는 확신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는 교회를 박해하기 위해 다마스쿠스로 향하며 위풍당당하게 말을 달렸습니다. 그의 이상은 율법의 완벽한 수호였습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비친 강한 빛은 그를 말 위에서 떨어뜨렸고, 눈먼 장님으로 만들었습니다. 말에서 떨어진 바오로의 현실은 암흑이었지만, 그 암흑 속에서 그는 비로소 참빛이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자신의 시력을 잃었을 때 영적인 눈이 떠진 것입니다. 자아의 추락은 곧 사도로서의 새로운 탄생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참되고 숭고한 지식때문에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려 했던 자신의 신념을 쓰레기로 버렸습니다.

 

프란치스코의 현실 : 역겨움에서 포옹으로

청년 프란치스코는 기사가 되어 귀족의 영광을 누리는 화려한 이상을 꿈꿨습니다. 그에게 나환자는 피해야 할 혐오스러운 현실의 상징이었습니다. 어느 날 길에서 마주친 나환자를 보고 본능적인 역겨움을 느꼈지만, 그는 말에서 내려 그 나환자에게 다가가 입을 맞추고 껴안았습니다. 가장 피하고 싶었던 현실을 가슴으로 받아들였을 때, 그에게는 '쓴 것이 단 것으로' 변하는 신비가 일어났습니다. 나환자의 일그러진 얼굴 안에서 고난받는 그리스도의 얼굴을 발견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현실 : 죽음으로 얻는 생명을 가르쳐 주신 사랑

가장 위대한 이상과 가장 처참한 현실이 만나는 곳은 바로 십자가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가장 높은 '이상'이 인간의 죄를 대신해 죽어야 하는 가장 낮은 '현실'과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영광의 길이 아닌, 생명을 내어놓는 죽음의 길을 택하셨습니다. 그분은 고통스러운 죽음이라는 현실을 피하지 않고 온몸으로 받아내심으로써, 사랑이란 관념적인 이상이 아니라 '자신을 내어주는 구체적인 행위'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도 섬김이라는 리더십으로 식탁에서 시중들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면서 몸으로 증명하셨습니다.

 

나의 현실 : 자만심에서의 추락과 위로부터의 탄생

우리 역시 스스로의 의지와 능력으로 신앙을 지키려 할 때가 많습니다. "나는 남들과 다르고 내가 너 보다 낫다라는 우월감속에서 나의 은근한 자만심은 우리를 교만의 높은 말 위에 앉혀 놓습니다. 그러나 삶의 예기치 못한 시련과 실패는 우리를 그 말 위에서 사정없이 떨어뜨립니다. 추락의 고통은 뼈아프지만, 바닥에 닿았을 때에야 우리는 하늘을 바라봅니다. 내 힘이 아닌 성령의 힘으로, '위로부터 다시 태어나는' 은총은 내가 아무것도 아님을 인정하는 그 현실의 밑바닥에서 시작됩니다.

 

다시 시작하는 회개의 여정

우리의 삶은 늘 장담과 배반, 박해와 추락, 역겨움과 외면 사이를 오갑니다. 그러나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자만심에서 떨어질 때,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나의 현실이 아무리 초라할지라도, 그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발견할 때 우리는 매일 조금씩 '위로부터'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 환호 속에서 흔들리던 푸른 가지가 이제는 불에 타 재가 되어 우리의 이마 위에 십자가로 돌아옵니다. 영광은 사라지고, 환호는 잦아들고, 남은 것은 한 줌의 재. 그러나 바로 그 자리에서 우리는 진실을 배웁니다.

 

우리는 너무 오래 스스로를 단단한 존재라 착각해왔습니다. 성과, 명예, 인정, 영향력, 손에 쥔 것들이 나를 증명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재는 속삭입니다. “너는 쥔 것보다 더 깊은 존재다. 너는 소유가 아니라 관계로 존재한다.” 따르는 길을 선택하고 그 길을 걷는 우리에게 이 재는 특별히 또렷한 초대가 됩니다. ‘도구적 존재로 살고자 했던 다짐, 흐름이 막히지 않도록 나를 비워 그분의 자비가 흘러가게 하려던 처음의 마음을 재는 다시 불러냅니다.

 

욕심의 찌꺼기들이 타오른 자리에는 비어 있음이 남습니다. 그 빈자리야말로 복음의 씨앗이 뿌려질 자리입니다. 기도는 마음의 창을 닦는 일, 단식은 영혼의 허기를 깨우는 일, 내어주는 몸은 굳은 손을 다시 펴는 일. 사순은 무언가를 더 얻는 계절이 아니라 덜어내는 계절입니다. 내가 중심이 되려는 고집을 태우고, 내 말이 옳음을 증명하려는 열기를 식히고, 상처받았다는 이유로 굳어버린 관계의 벽을 허무는 시간입니다. 재는 말합니다. “너는 아직도 타지 않은 것은 아직 붙잡고 있는 것이다.”

 

재는 죽음을 상징하지만, 그 십자가는 동시에 부활의 방향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흙으로 돌아가지만, 사랑 안에서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죽음을 기억하는 사람만이 사랑을 서두르지 않습니다. 상대를 지배하려 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사순은 죽음을 준비하는 시간이 아니라 사랑을 배우는 시간입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이 외침은 도덕적 압박이 아닙니다. 존재의 방향을 바꾸라는 부드러운 손짓입니다. 회개는 내가 틀렸다는 고백 이전에 나는 사랑받고 있다는 깨달음입니다. 이 깨달음 안에서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내가 먼지라는 사실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먼지를 빚어 숨을 불어넣으시는 하느님의 손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칸의 길은 가난하고 겸손하게 작아지는 길입니다. 재는 우리를 작게 만듭니다. 작아진 만큼 그분이 머무를 공간이 넓어집니다. 우리의 이마에 그려진 그 십자가는 자유의 표지입니다. 쥐고 있던 것을 내려놓은 사람만이 두 손을 펼 수 있습니다. 두 손을 펼친 사람만이 이웃의 손을 다시 잡을 수 있습니다. 오늘, 그 차가운 재가 우리의 이마에서 서서히 식어가더라도 그 의미는 식지 않기를, 먼지에서 시작하여 사랑으로 돌아가는 길. 그 흔적 위에서 우리의 삶이 조용한 복음이 되기를, 이상과 현실의 변곡점, 그 추락에서 만나는 참된 부활이 우리의 미래를 밝혀줄 것입니다.

 

2026, 2, 18 재의 수요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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