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이 빚어내는 생명의 미학
숨을 쉬는 생명들, 흐름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체온과 맥박이 살아나고 잠자던 세포들이 꿈틀거립니다.
어둠이 가만히 웅크린 새벽, 나는 나의 영혼을 들여다봅니다.
고요하기보다는 어딘가 막혀 있는 듯한,
흐름을 잃어버린 강물처럼 내 마음 한켠은 오래 머물러 있었습니다.
고인 마음의 냄새는 나조차 감당하기 어려워
숨을 깊게 들이마시면 스스로에게서조차 멀어지고 싶은 날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득, 아주 미세한 바람 하나가 지나가며
내 마음의 먼지를 흔들어 깨울 때, 나는 알았습니다.
은총은 거대한 파도로 오지 않고 먼저 작은 떨림으로 온다는 것을.
얼어 있던 마음이 미세한 금 가듯
열리는 그 틈 사이로 따뜻한 빛이 스며듭니다.
그 빛은 나를 비추기 위해 오지 않고, 내 안에다 무언가를 일으키기 위해 옵니다.
그때 나는 깨닫습니다. 생명은 정지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생명은 “흐르는 성질”을 가진 존재이며 흐름이 닿지 않는 곳에서는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다는 것을.
내가 빛을 소유하려 할 때 빛은 사라지고,
내가 사랑을 움켜쥐려 할 때 사랑은 흔들립니다.
내가 관계를 통제하려 할 때 관계는 오히려 멀어집니다.
그러나 손을 놓고 조용히 내어주면 지나가던 빛은 다시 머물고,
흐름은 멈추지 않고, 사랑은 두려움 없이 피어납니다.
나는 더 이상 나만의 중심에 머물러 살 수 없습니다.
중심은 이미 내 안이 아니라 내가 지나가며 남긴 작은 선,
누군가에게 전한 작은 평화, 조용한 위로의 발걸음 속에
옮겨가 있음을 압니다.
자유는 강물처럼 흐르는 순간 아름다워집니다.
나를 붙들고 있던 두려움을 내려놓을 때,
나는 비로소 가벼워지고,
그 가벼움은 누군가에게 또 다른 자유의 공간을 열어줍니다.
내어놓음이란 가난해지는 것이 아니라
막혀 있던 강물에 새로운 물길을 내어주는 일입니다.
그 물길을 통해 나 또한 다시 살아납니다.
내가 주는 만큼 빼앗기지 않고,
내려놓는 만큼 잃어버리지 않으며,
내어준 만큼 오히려 더 맑아지고 깊어집니다.
주님,
흐름으로 저를 흔들어주소서.
막혀 있던 곳이 열리게 하시고, 닫힌 마음이 빛을 허락하게 하소서.
누군가에게 생명이 되는 한 줄기 강물이 되게 하소서.
내가 스스로 빛나려 하지 않고,
누군가를 붙들어두려 하지 않고,
내 안의 흐름을 막지 않게 하소서.
흐름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생명이 돋아나듯,
저의 작은 하루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자리되게 하소서.
오늘도 새벽은 흐름을 배우라고 고요히 날 깨웁니다.
나는 그 흐름 속으로 다시 걸어 들어갑니다.
멈추지 않기 위해,
살기 위해,
사랑하기 위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