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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값에 대한 이해 2.

서공석 신부님의 해석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마태 20,28)

 

그리스도교는 초기부터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인류의 구원 사건을 본다. 이것을 표현하는 단어가 속량 (贖良 redemptio)이다. 이 단어의 본뜻은 노예를 해방시키기 위해 몸값을 지불하는 행위를 말한다. 노예가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그 노예의 소유주가 보상을 받아야 한다. 그 보상이 속전(贖錢)이다. 예수는 그 속전을 지불했다고 복음서들은 말한다. “인자는...많은 사람을 대신해서 속전으로 자기 목숨을 내주러 왔습니다.”(마르 10,45) ‘속량이라는 표현은 구약성서 (출애 6,6. 이사52,3-6. 예레 50,33.35)에서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당신 백성으로 삼으셨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해 자주 사용되었다. 이것이 신약성서에 흘러 들어와서 발생시킨 표현이 속량이다.

여러분은 값을 내고 사들인 사람들입니다.” (1고린 6,20; 7,23)‘속량은 하느님과 함께 있는 처지가 되었다는 곳을 나타내는 성서적 표현이다. 이 단어가 그리스도교 역사 안에 사용되면서 그것이 지닌 논리가 확장하였다. 예수가 인류를 해방시켰다면 인류는 어떤 주인의 노예로 있었다는 말이고, 그 주인에게 예수가 몸값을 지불했다는 말이다. 고대 교회 신학자들은 마귀를 주인으로 하고 그리스도의 피를 몸값으로 하는 하나의 우화 (寓話)를 만들었다. 우리의 해방은 어떤 상거래의 결과와 같은 인상을 주게 되었다. 모든 신앙의 언어와 마찬가지로 속량도 하나의 은유이다. 은유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모르는 일에 대해 알아듣게 하는 화법이다. ‘속량에는 속전을 지불하는 사람이 있고 그 행위로 말미암아 자유를 얻는 사람이 있다. 예수의 어떤 행위로 인간은 하느님과 함께 있음을 얻었고 그것으로 인간은 참다운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로 인간의 상황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는 것이다. ‘속량자체의 논리를 확장 해석하지 말아야 한다.

 

중세에는 속량이 내포한 이 상거래적 요소가 더 철저하게 표현되었다. 안셀무스의 속죄론이 그것이다. 하느님의 의로우심은 원조의 범죄로 손상된 정의가 보상될 것을 바란다. 그러나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하느님의 정의를 보상할 수 없었다. 하느님의 자비하심은 인간이 할 수 없는 보상을 당신의 아들 예수가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이 이론은 하느님의 정의와 자비, 둘을 모두 충족시키려 하였다. 여기에 나타나는 하느님은 사람들의 잘못을 철저히 다스리는 정의로운 군주, 그러나 무자비하게만 보이지 않으려는 그 시대 군주의 모습이다. 군주의 정의는 어떤 방식으로라도 충족되어야 하지만 그것을 위해 백성들은 무력하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인간은 각자 자기 행위에 대해 책임을 져야하지만 사실은 그것을 할 수 없는 인간이라는 중세 유럽 사회의 인간 실태를 반영한 시대적 이론이다.

 

위와 같은 속량의 논리는 예수의 죽음을 요약하기에는 부족하다. 예수의 죽음은 그분의 부활과 연결해서 이해해야 한다. “예수는 우리의 범행들 때문에 넘겨지셨고 우리를 의롭게 하시기 위하여 부활하셨습니다.” (로마 4,25)라는 신앙고백이 말하는 것은 인간이 죄라는 죽음 안에 갇혀 있었지만, 예수의 죽음과 부활로 하느님 앞에 자유로워 졌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율법을 내세워 인간을 파괴하는 행위는 죄의 객관적 모습이다. 예수는 새로운 윤리를 가르치지 않았고 율법을 거스르는 것이 죄라고도 말하지 않았다. 그는 악에 대하여 전혀 달리 생각했다. 그 시대 유대인들은 악을 하느님이 주시는 벌이라 생각하였다. 예수는 하느님이 악의 원인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악을 퇴치하는 우리의 노력 안에 하느님은 일하신다고 믿고 있다. 배짜타 못의 반신불수를 고친 다음 예수는 내 아버지께서 일하고 계시며 나도 일하고 있습니다.”(요한 5,17)고 말한다. 예수는 성서가 말하는 두 개의 계명을 하나로 만드신다. 하느님을 인정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같은 것이다. 인간을 외면하고 하느님을 만날 수는 없다. “너희가 이 지극히 작은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에게 해 주었을 때마다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25,40) 따라서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인간을 외면하는 것이 죄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하느님의 일, 곧 돌보아주고 가엾이 여기는 실천을 한다. 예수는 사람들이 죄인이라고 외면하는 사람들 안에 하느님이 가까이 계심을 본다. 예수는 하느님의 예언자로서 하느님의 가까이 계심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거슬러 싸운다. 예수는 사람을 죽이는 힘이 세상에 만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당신들은 당신들의 아비인 악마에게서 났으니 그 아비의 욕망대로 행하려고 합니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였습니다.”( 요한 8,44 )사람들은 하느님마저 동원하여 이 죽이는 힘을 정당화한다.

 

사람을 죽이는 힘은 인류역사 안에 악순환을 낳는다. 아 힘은 얼마나 당당한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하느님까지 동원한다. 과거 교회사에서 볼 수 있었던 파문 관행과 종교재판은 사람을 죽이는 힘을 하느님의 이름으로 실천한 것이었다. 오늘 교회 안에도 이와 유사한 일들이 많이 있다. 예수는 새로운 담을 만들려고 오신 분이 아니라 있는 차별의 담을 헐어버리려 오신 분이었다. 예수는 우리가 만들어 놓은 우상인 하느님에게서 우리를 해방한다.

 

예수는 이 힘이 지닌 최종적 자기 정당화의 수단을 없애고 그 논리를 파괴하였다. 이 힘이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최종적 수단은 가상의 하느님을 동원하여 자기의 대상을 죽이는 것이다. 그 죽이는 힘 앞에 예수는 같은 죽임의 논리로 대적하지 않고 하느님께 신뢰하고 죽음으로써 죽이는 힘과 전혀 다른 논리가 있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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