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과 기도 1. 하느님께서 들어오시는 거룩한 여백
“당신이 그분을 사랑할 때 당신은 정결해지고, 당신이 그분을 만질 때 당신은 더 깨끗해지며, 당신이 그분을 마음 깊이 맞아들일 때 당신 안에는 아무도 소유하지 않은 맑고 비어 있는 방 하나가 생겨납니다.” (글라라가 프라하의 아녜스에게 보낸 편지) 그 방은 세상의 소음과 욕망을 피해 숨어드는 피난처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당신의 가난한 사랑으로 들어오시는 자리이며, 내가 나 자신으로 가득 차 있지 않기에 비로소 다른 이를 받아들일 수 있고, 내가 가진 것으로 나를 증명하지 않기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선물로 바라볼 수 있는 거룩한 여백입니다.
가난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상태가 아니라, 아무것도 자기 것이라고 움켜쥐지 않는 마음입니다. 가난은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 황량한 들판에 홀로 서는 일이 아니라,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나에게서 시작되지 않았음을 아는 것이며, 내가 숨 쉬는 호흡과 오늘이라는 시간과 곁에 있는 사람과 내 안에 아직 남아 있는 작은 선의까지도 모두 나보다 먼저 나를 사랑하신 분에게서 왔음을 고백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가난은 결핍의 이름이 아니라 감사의 다른 이름이고, 무력함의 표지가 아니라 은총이 흘러 들어올 수 있도록 자신을 열어 놓는 가장 깊은 자유입니다. 내가 가진 것이 나의 존재를 증명해 주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 나의 존재를 지탱하고 계심을 믿는 것이 가난입니다. 내가 무엇을 이루었기 때문에 소중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순간에도 여전히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물고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가난입니다.
어려운 시절을 함께 견딘 사람들은 압니다. 가난했던 날에는 먹을 것이 넉넉하지 않았으나 서로의 얼굴을 더 자주 바라보았고, 방은 좁았으나 마음은 서로에게 가까웠으며, 혼자서는 견디기 어려운 삶의 무게를 나누어 짊어지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약함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의 손을 빌리지 않고는 하루를 살아갈 수 없었기에 사람들은 비로소 “나는 당신이 필요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었고, 그 말은 가난이 사람을 낮추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낳고 관계를 살리며 서로를 한 몸처럼 묶어 준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나는 당신이 필요합니다.”라는 고백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가난하고도 가장 아름다운 기도입니다. 그 말 안에는 나는 내 생명의 근원이 아니라는 깨달음이 있고, 나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오래된 교만을 내려놓는 겸손이 있으며, 다른 사람의 도움과 선의를 받아들일 줄 아는 신뢰가 있습니다. 스스로 충만하다고 믿는 사람은 팔을 벌리지 않습니다. 자기 안에 모든 답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타인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으며, 자신이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사람은 사랑을 주고받는 관계보다 지배하고 통제하는 관계를 선택합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은 압니다. 나는 홀로 완전해질 수 없으며, 나에게 부족한 것은 누군가의 다름을 통해 채워지고, 내가 가진 것은 다시 누군가에게 흘러갈 때 비로소 선물이 된다는 사실을 압니다.
가난은 결국 내가 스스로 충만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 부족함은 부끄러움이 아닙니다. 부족함은 관계를 향해 열린 문이고, 다른 사람의 선물을 받아들이는 빈자리이며, 하느님의 은총이 머물 수 있는 공간입니다. 내가 모든 것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하고, 내가 모든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며,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형제와 함께 걸어갑니다. 나의 가난이 너의 선물을 받아들이는 공간이 되고, 너의 가난이 나의 사랑을 흘려보낼 길이 될 때, 우리는 서로에게 하느님께서 오시는 자리가 됩니다. 가난은 그렇게 하느님께서 들어오시는 빈방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