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Skip Navigation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한국관구, 프란치스코회, 작은형제회, 성 프란치스코, 아씨시, 프란치스칸, XpressEngine1.7.11, xe stylish

말씀나누기
김명겸요한 2016.01.31 08:28

연중 제4주일

조회 수 594 추천 수 0 댓글 0
매일미사 말씀 보기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No Attached Image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놀라워하면서도 예수님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기적을 통해서 예수님의 능력을 보아야 예수님을 인정하겠다는 마음이지만, 그런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은 기적을 행하지 않으십니다. 믿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기적 조차도 순수하게 예수님의 능력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다른 곳에서 예수님께서는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셨는데, 그것을 지켜보던 사람들 중에서 몇 명은, 예수가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고 말하였습니다.

 이렇듯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것을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물은, 내가 너를 안다는 선입견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를 요셉의 아들이라고 부릅니다. 마태오와 마르코의 동일 구절을 보면, 사람들은 예수의 가족들을 자세히 알고 있습니다. 형제들의 이름까지도 언급되는 것을 보면, 예수님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즉 내가 본 예수의 어린 시절 모습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의 변화된 모습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은 것입니다. 즉 내가 너를 안다는 선입견은 현재의 상대방의 모습을 가려서 보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그것에도 정당한 이유는 있습니다. 상대방에 대해서 매번 새롭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려 한다면, 우리는 그것에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야 합니다. 매번 새로운 사람을 만나듯 모든 사람을 대한다면, 사람을 만나는 그 자체가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올 것입니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 그 사람에 대한 기초 지식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이 더 효율적입니다.

 문제는 한 번의 노력으로 얻은 그 사람의 모습에 대해서 두 번 다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에 대해서 얻은 모습, 그 틀 안에 그 사람을 가두어 놓고 변하지 않을 것처럼 생각합니다. 심지어는 자신이 생각했던 틀에서 벗어나는 모습에 대해서, 그것은 네 모습이 아니라고 오히려 화를 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결국 그것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의 마음이 없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입니다.

 성경에서 이름을 지어준다는 것은 그 대상에 대해서 안다는 것이고, 그 대상은 이름을 지어준 존재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그렇기에 구약에서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상대에 대해서 안다는 생각은, 상대방을 내 지배 아래에 둔다는 생각과 연결됩니다. 즉 내가 너를 안다는 선입견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없애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사람은 숨쉬고 움직이는 존재입니다. 즉 매순간 변화하는 존재입니다.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렇기에 이미 죽음 존재, 화석과 같은 존재가 되었음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른 사람의 변화를 열린 마음으로 대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상대방의 다른 모습도 알아갈 수 있고,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조금 더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상대방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상대방을 알면서 그를 내 지배 아래에 두려고 하기 보다는, 서로 존중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서비스 선택
<-클릭 로그인해주세요.
댓글
?
Powered by SocialXE

말씀 나눔

매일미사 독서와 복음, 그리고 성 프란치스코의 글 묵상나눔

  1. No Image 01Feb

    연중 4주 월요일-생활관상

    “주님께서 다윗을 저주하라고 하시어 저자가 저주하는 것이라면, 어느 누가 ‘어찌하여 네가 그런 짓을 하느냐?’ 하고 말할 수 있겠소?” <생활관상>   우리는 오늘 또 다윗의 놀라운 신앙을 보게 됩니다. 인간의 행위를 그저 인간의 행위로만 보지 않...
    Date2016.02.01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369
    Read More
  2. No Image 31Jan

    연중 제4주일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놀라워하면서도 예수님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기적을 통해서 예수님의 능력을 보아야 예수님을 인정하겠다는 마음이지만, 그런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은 기적을 행하지 않으십니다. 믿는 마음...
    Date2016.01.31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명겸요한 Reply0 Views594
    Read More
  3. No Image 31Jan

    연중 제 4 주일-덮어줄까, 까발릴까?

    어제 말씀드린 대로 예언자는 하기 싫어도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하도록 배속에서부터 성별되고 파견된 존재가 예언자이기 때문입니다. “태중에서 나오기 전에 내가 너를 성별하였다. 민족들의 예언자로 내가 너를 세웠다.”   그러므로 우...
    Date2016.01.31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159
    Read More
  4. No Image 30Jan

    연중 3주 토요일-이미 지은 죄보다 큰 죄들?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소.”   어제 강론 끝에 말씀드린 대로 나단 예언자는 다윗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합니다. 싫고 괴롭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예언자의 소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하는 것보다 그런 말을 듣는 것이 더 싫겠...
    Date2016.01.30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483
    Read More
  5. No Image 29Jan

    연중 3주 금요일-죄가 죄를 부른다.

    “우리야를 전투가 가장 심한 곳 정면에 배치했다가, 그만 남겨 두고 후퇴하여 그가 칼에 맞아 죽게 하여라.”   죄가 죄를 부른다. 이것을 저는 오늘 강론의 주제로 삼았습니다. 자기의 죄를 인정하고, 끊어버리지 않는 한 무릇 모든 죄는 또 다른 죄, ...
    Date2016.01.29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836
    Read More
  6. No Image 28Jan

    연중 3주 목요일-모양대로, 크기대로 담기는 하느님의 사랑

    “주 하느님, 제가 누구이기에, 또 제 집안이 무엇이기에, 당신께서 저를 여기까지 데려오셨습니까?”   오늘 이 말씀은 시편 8편을 생각나게 합니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5절)   ...
    Date2016.01.28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544
    Read More
  7. No Image 27Jan

    연중 3주 수요일-주는 것도 받는 것도 다 사랑이신 하느님

    “나는 너를 목장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웠다. 또한 네가 어디를 가든지 너와 함께 있으면서,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물리쳤다.”   오늘 사무엘기의 얘기는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평안을 찾은 뒤 자기는 좋은 궁전에서 사는데 하...
    Date2016.01.27 Category말씀나누기 By김레오나르도 Reply0 Views1652
    Read More
목록
Board Pagination ‹ Prev 1 ... 835 836 837 838 839 840 841 842 843 844 ... 1314 Next ›
/ 1314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