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파드레 피오) 사제 기념일
루카 9,1-6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파견하십니다.
먼저 ‘힘과 권한(마귀를 쫓고 병을 고치는)’을 주시고,
이어 뜻밖의 명령을 하십니다.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 지팡이도, 보따리도, 빵도, 돈도, 여벌 옷도.”
먼 길인데 도리어 ‘빈손’으로 떠나라 하십니다.
왜일까요? 제자들이 ‘자기 것’에 기대지 않고
오직 ‘그분께 받은 힘’에만 의지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빈손일수록, 하느님께서 일하실 자리가 커집니다.
오늘 기리는 파드레 피오가 이 말씀을 그대로 살았습니다.
그는 가진 것 없는 가난한 카푸친 작은형제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빈손’에 주님께서 놀라운 것을 채우셨습니다.
무려 오십 년 동안, 그의 손과 발과 옆구리에
그리스도의 상처(오상)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수난이 그의 몸을 통해 ‘비쳐 나온’ 것입니다.
성 나지안조의 그레고리오가 삼위일체의 사랑을 노래했듯,
파드레 피오의 상처는 ‘사랑이신 하느님’의 표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가장 큰 일은 ‘고해소’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는 하루에도 열 시간 넘게 고해소에 앉아,
죄로 하느님과 멀어진 영혼들을 다시 그분께 이끌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그 앞에서 눈물로 회개하고,
하느님과, 그리고 교회와 ‘다시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는 또 병자들을 위해 큰 병원
(‘고통 경감의 집’)을 세웠습니다.
복음의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쳤듯’,
그도 영혼과 몸을 함께 고쳤습니다.
그의 좌우명은 이러했습니다.
“기도하고, 희망하고, 걱정하지 마라.”
일치의 눈으로 보면
파드레 피오의 삶은 ‘화해가 곧 일치’임을 보여 줍니다.
갈라진 교파를 잇는 큰일도 소중하지만,
일치는 ‘흩어진 한 영혼을 자비로 다시 모으는’ 데서 시작됩니다.
오늘 복음의 열두 제자가 ‘한 사명’으로 파견되었듯,
교회는 하나이며, 그 사명은 흩어진 이를 모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조용히 묻습니다.
나는 ‘내 것’에 기대는가, ‘그분께 받은 힘’에 의지하는가?
나는 빈손이 되어 하느님께서 일하실 자리를 내어 드리는가?
나는 흩어지고 멀어진 이를 ‘자비로 다시 모으려’ 하는가?
나의 상처(고통)에서도 그리스도의 사랑이 비쳐 나오는가?
주님,
‘내 것’을 내려놓고 당신 은총만 의지하게 하소서.
파드레 피오처럼 자비로 흩어진 이를 다시 모으게 하시고,
제 상처에서도 당신 사랑이 비쳐 나오게 하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