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부터 사울은 다윗을 시기하게 되었다."
사울이 다윗을 시기하기 시작한 오늘, 시기에 대한 나눔을 하고자 하는데
시기를 인간적인 시기와 신앙적인 시기로 나눠도 될까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인간적인 시기란 하느님 없이 순전히 인간끼리의 시기를 말함이고,
신앙적인 시기란 누구를 시기하되 왜 하느님께서 그를
더 사랑하고 더 잘되게 해주셨냐고 시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적인 시기는 괜찮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지금까지 이런 지론을 가지고 있습니다.
화가 나면 하느님께 화내라고
그러면 화내는 것도 기도가 된다고 말입니다.
언젠가 길을 가는데 일반 음식점에 달마대사 그림이 걸려 있고,
그 밑에 ‘사람에게 ㅇㅇㅇ 않는다’는 액자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같이 가던 사람과 무얼 않는다는 말일지 서로 나눴는데
저는 이런 말일 것이라고 제 나름대로 이렇게 때려 맞췄습니다.
곧 ‘나는 사람에게 화내지 않는다.’로 말입니다.
사실 우린 시시하게 사람에게 화내지 말고 하느님께 화를 내고
그럼으로써 화를 냄과 화풀이가 기도가 되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시기 질투란 주님을 시기 질투하는 것이라는 말이 되고
시기 질투도 주님께 하면 기도가 되고 괜찮은 것이 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시기도 그렇고 질투도 근본적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놓고
시기 질투하는 것이라는 말은 신앙인에게 맞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신앙인이란 모든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그래서 프란치스코도 시기에 관해 이렇게 얘기합니다.
“누구든지 주님께서 자기 형제 안에서 말씀하시고 이루시는 선을 보고
그 형제를 시기하면, 모든 선을 말씀하시고 이루어주시는 지극히 높으신 분
자신을 시기하는 것이기에 하느님을 모독하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믿음은 잘못된 것이 아니고 합당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사람에게 다르게 주신 선이
사랑의 차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믿음입니다.
각기 다른 은총을 주신 것이고 각기 다른 은사를 주신 것이지
사랑을 많이 주고 적게 주신 것이 아니며
만일 다르게 주신 선을 악이라고 한다면 그것이 악이며
그로 인해 하느님 사랑을 의심한다면 그것이 악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주님께서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 적이 있지요
한 탈렌트 받은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적게 받은 것 때문에
하느님을 주지도 않고 걷어가기만 하는 모진 분이라고 한 종을 악하다고 하셨지요.
이것은 또한 하느님께서 내게 주신 선을 보지 못하는 악이기도 하고,
내가 가진 많은 것은 적게 보고 남이 가진 적은 것은 많게 보면서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이기에 가련함이기도 합니다.
이것을 깨달아 아는 우리라면 남과 비교하지 않고,
하느님께서 내게 주신 많은 은혜를 그저 감사하고,
마냥 누리고 사람들과도 나누는 오늘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